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라 Nov 08. 2021

마흔이 넘었나요?
리모델링을 준비하세요.

지성의 감퇴를 극복하는 세계관의 재구축

  출산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 몸에 여러 변화들이 나타났다. 눈치채지 못하다가 남이 얘기해줘서 알게 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내가 먼저 알아챘다. 늘어진 뱃살, 처진 가슴, 눈 밑의 다크서클같은 소소한 내 몸의 변화부터 요실금, 관절염같은 질병까지 예전과 다른 내 몸을 충격과 체념의 과정을 거쳐 받아들여갔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 속에서 주변인들이 먼저 전해주는 변화도 있었다. 흔들리는 옆구리 살보다 훨씬 속상하고 안타까운 이 변화는, 지성의 감퇴였다.


 아이 떼어놓고 어렵게 가진 모임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들은 말이 있었다.

“너 왜이렇게 총기가 흐려졌니?”

우스갯소리로 건네는 말이긴 했지만, 이 말 속에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단어와 개념을 잃어버리며 사건을 이해하는데 느린 내 모습이 들어있었다.


                                                                                        나보다 남이 먼저 알아챈 것이다.



  단순히 뇌세포가 노화되었다거나 육아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다른 부분은 뇌에서 지워져버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집중하면서 사회와 삶의 다른 영역들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거나 사라져버린 느낌, 정확히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에너지  부족으로 인한 지성의 감퇴였다. 정치도 그랬고, 예술도 그랬다. 음악이며 영화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보기도 어려웠고, 최신 유행을 파악하며 음악을 듣는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육아와 살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동안 그저 적당히 뉴스 헤드라인만 보고 지나가며 어떤 상황인지만 파악해두는 정도가 남은 에너지로 쓸 수 있는 최대치였다.


 갈등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아이와 실랑이하느라 다른 사람과 다툴 마음의 여력이 없었다.  조금 커서는 또 큰 만큼 기관에 적응시키고 친구들 관계 신경쓰느라 타인과의 갈등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왠만한건 덮어버리게 되었다. 초등 입학 이후부터는 학교생활과 학습에 내 에너지가 다 들어가다보니 늙어가는 내 지성, 추락하는 내 두뇌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남편과의 갈등도 대화로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회피하며 에너지를 덜 쓰는 길을 택했다. 대화와 타협보다 몸이 조금 힘든 것이 차라리 더 편했으니까.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는데 나는 세상을 쫓아가기는 커녕, 아이 옆에 그대로 멈춰있는 것 같았다. 깊이 있는 독서도, 내 의견이 들어간 대화도 하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의 연속으로 아이를 키우며 정작 나 자신은 성장하지 못한 채 십 여년이 훌쩍 지나갔다.


 


 어느 덧 40대 후반. 

젊은이로 산 시간보다 노인으로 살 시간이 더 많은 나이가 됐다.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며 쌓아올린 세계관이 여전히 그대로인 부분이 많다. 취향도 사고도 젊을 적 그대로인 채 몸만 물리적인 시간을 건너왔다. 변하는 세상, 변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변해야하는데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지나왔다. 건물도 50년이 지나면 재건축에 들어간다. 사람도 비슷하다. 마흔이 넘으면 한 번쯤 리모델링이 필요해진다. 삶의 명확한 기준이 되는 뼈대도 더 단단히 보강하고 외관도 새로 단장도 해야한다. 앞으로 몇 십 년을 더 살기 위해 적당히 확장하고 더 편안하게 수리 해야하지 않을까? 그래야 성숙한 중년, 지혜롭고 여유있는 노년을 맞이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비탈길에서 미끄러지고 있는 내 '앎'이지만, 새로운 세대의 '앎'과 충돌하며 섞이고 확장되어 더 유연해지면 좋겠다. 조금 오글거리지만, 50대 이후의 ‘청춘’은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완고한 꼰대가 아니라 푸른 꼰대가 될 수 있을것이다.


그렇게 나이들어 간다면, 그때도 나보다 타인이 먼저 내 변모를 알아채주면 좋겠다. 흐려진 지성, 잃어버린 뇌세포를 복구하기 어렵더라도, 그만큼 여유와 지혜가 생겨났다고 말이다. 낡아가는 집이지만 햇살과 바람이 잘 드나드는 문과 창이 많은 집이 되었다고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전 02화 언제 어른이 된다고 느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