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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07. 2021

언제 어른이 된다고 느낄까?

소녀같은 어른이 되고싶다


사람은 언제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까? 어떤 순간에 나이가 들었다고 실감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처음 나이들었다고 느꼈던 때는 6학년 겨울 무렵이다. 떡볶이인줄 알고 입속에 집어넣은 대파가 달게 느껴졌을 때, 처음으로 어른이 된듯한 뿌듯함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어른들이나 먹는 매운 파를 달게 먹을 수 있게 된 내가 정말 어른이 된 것 처럼 느껴졌다. '나 쫌 멋진걸?'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물론 파 하나 먹는다고 어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선 그 후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법적인 성인이 되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고, 스물 아홉을 넘겨 서른이 되었어도 나이만 들었지 어른이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도 딱히 마찬가지였다. 그저 물리적인 나이만 먹어갈 뿐, 진짜 나이들었다는 실감은 하지 못했더랬다. 시댁과의 갈등, 직장에서의 문제처럼 내 뜻과 다르지만 따라야하는 상황을 여러번 겪으면서 조금씩 나도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고 느끼기는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 행동을 스스로 설명할 수 없었다. 사회적인 관습과 타성에 젖어 싸울 생각도 못하고 살 때였다. 그건 그저그런 기성세대가 되었다는 자조였다. 진정한 사회의 어른이라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다 나이가 들었다고 실감을 한 건 의외의 상황에서였다. 


결혼하고 육아하며 소식이 뜸했던 친구의 이혼 소식을 들었다. '아, 나는 지금  결혼이라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나이를 통과하고 있구나!'라는 작은 깨달음이 왔다. 한 사람과 생을 함께하겠다는 자신의 선택을 계속 이어갈지 아니면 매듭을 짓고 새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나이. 그 결정이 결혼과 이혼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일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이혼한 친구의 용기와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했었다. 친구들이 먼저 줄줄이 결혼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자각이었다. 



그 뒤로는 살면서 순간순간 바람 불듯 나이듦을 깨닫는 순간이 훅 끼쳐오는 것 같다.


 사십 문턱을 넘어가자 친구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한 분씩 한 분씩 부모님이 우리 곁을 떠날 때 '내가 나이들었구나'하고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내 차례가 돌아왔다. 퉁퉁 부운 눈으로 시어머님을 보내드리던 날, 찾아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왜 상주가 맞절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와주시고 위로해주시는 분들 한 분 한 분이 참으로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지고 함께 기도해주신 분들께 감사했다. 사람은 부모를 잃고서야 어른이 되나보다 싶어 오래도록 마음이 저려왔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다.


슬슬 내 몸 여기저기서 파란 불이 노란 불로 바뀌고 있다. 빨간 불이 되고도 시간이 더 흐르면 곧 모든 신호가 차례로 꺼지는 날이 온다. 조금이라도 노란 불의 시간을 오래 유지하려면  빨간 불로 바뀌기 전에 약도 챙겨 먹고 운동도 시작해야한다. 각종 텔레비전 건강 프로그램에 전보다 다른 집중력으로 보게 되는 때, 비슷한 또래끼리 모이면 내시경이니 관절이니 용종이니 하는 내용의 대화를 시작하는 때, 올해 내 또래의 부고를 접했다. 


그렇구나. 이제는 기운이 조금씩 수그러드는 때이고 누군가에게는 이미 다할 수 있는 나이로구나....... 

암이라고 했다. 뒤늦게 발견해 늦었다고. 알지 못하지만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기원하며 내 주변을 돌아보았다. 가까이에서 친구와 친구 남편 둘 다 갑상선 암으로 치료를 받았고 건너 팀의 선생님 한 분은 유방암으로 휴직을 하셨다. 한 번 의식을 하기 시작하자 생각보다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리 가는 건 순서없다지만, 이렇게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으니 어른이 된 건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나이듦을 자각하게 되는 건 사실 조금 서글프고 안타깝다. 나 자신의 성숙으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기는 커녕 타인의 부고를 듣고 내 생존을 확인하는 방식이라니, 지나치게 저열한 것은 아닌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이제는 누가봐도 나는 어른이다. 주름진 손과 목, 얼굴도 그렇고 경력도 그렇고 굳어진 사고방식까지 ‘어른’의 범주에 확실히 들어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철없는 소녀이고 싶다. 손해볼 것을 알면서도 도전하고 싶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감히 아니라고 외치고 싶고, 작은 것들에 얼굴 붉히며 두근거려보고 싶다. 어른의 성숙을 갖추되 어린 아이의 호기심과 순수함을 잃지 않고 싶다. 대파를 깨물며 새로운 맛을 깨달았던 때처럼 여전히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몸에 새기고 싶다. 소녀같은 어른으로 나이들어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것이 내 삶의 후반부를 앞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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