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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보여주는 방학일기

봐달라고 조르는 일기라지요 -_-;;;;;;;

by 피어라

20250118


어제 늦게 잔것도 있고해서 8시 알람을 끄고 더 잤다. 잠시 뒤 작은 아이가 침대로 들어왔다. 녀석도 거실에 둔 핸드폰 알람을 끄고 비몽사몽이었다. 둘이 꼭 껴안고 두 시간을 더 잤다. 몇 달 전까지만해도 나보다 작았는데 이젠 내가 아들 팔베개를 하고 눕는다. 푹 자고 아들과 같이 일어났다. 포근한 늦잠이다.


20250124


경기가 어렵고 자영업자들의 대출은 역대 최고며 폐업속출이라는 뉴스를 거의 매일 보게 된다. 입주 5년 차가 되어가는 우리 아파트 상가도 다 차지 않았고, 맞은편 상가들도 새로 개업하는 곳보다 폐업하는 곳이 더 많다.


집앞에 있던 이디야 매장이 문을 닫은 지 근 1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공실이다. 사거리 코너 1층, 양편 통창에 아담한 평형, 도로 맞은 편으로 학교와 아파트단지가 있는 입지조건이면 카페운영이 무난할 것 같은데 컴포즈나 메가커피 같은 저가커피 매장사이에서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


지나면서 볼때마다 크기가 위치나 저 자리에 동네 책방을 차리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하곤했다. 중학교 근처니 문제집도 좀 가져다 두면 매출에 도움이 될테고, 내 취향의 서가를 꾸민다음 여러 형태의 독서토론모임, 글쓰기모임, 그림책 모임을 만들어 햇살 가득한 책방 안에서 두런두런 대화하는 상상을 할때마다 행복했다.


어제는 문득 임대료가 얼마나될까 싶어 당근과 네이버 부동산을 뒤져보았다. 이디야자리 그대로 부동산매물로 등록되어 있었다. 상세정보를 눌러서 확인하니 한달 월세만 350만원이었다. 세상에,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 자리에 책방을 못 차리겠구나. 새삼스레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고 낭만적인 책방주인의 꿈에서 깨어났다. 서점은 부자들이 차리는거라던 우스갯소리를 실감했다.



20250201


설연휴를 게으르고 느긋하게, 다정하고 상냥하게 잘 보냈다.

열심히 쓸고 닦고 음식준비하고 먹고 치우고. 꼬박 이틀은 장보고 음식하고 차리는데 애썼는데, 막상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십 분? 그거면 충분했다. 잘 먹어서 뿌듯하고 보람있기보다 허무하고 의미없게 느껴져서 역시 나는 요리를 싫어한다는 걸 재확인했던 시간이었다.


피곤했던 몸과 마음을 쉬게하며 금요일을 보내고 저녁에는 느글거리는 속을 달래려 김치찜을 해먹었다. 묵은지 세 쪽을 꺼내 살살 털어 냄비에 돼지고기와 함께 차곡차곡 담는다. 쌀뜨물과 코인육수, 설탕을 적당히 넣고 들기름을 들들들들 붓는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무조건 팔팔 끓인다. 센 불에 끓이다 고기가 다 익으면 중불로 줄여서 30분 정도 맛을 입힌다. 숭덩숭덩 썰은 파도 넣고 팽이버섯도 살짝 넣어 주며 김치가 부드럽게 쭉 찢어질 때까지 졸인다. 아삭하던 김치가 부드럽게 입안에서 짓물러질 정도가 좋다. 김치와 돼지고기, 들기름이 조화를 이룬 향도 기가막히지만 빛깔도 만만치않다.


얼른 불을 끄고 통채로 식탁위에 올렸다. 가위질도 필요없다. 쭉쭉 찢어서 고기랑 같이 밥 위에 얹으면 한 그릇이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다 비운다. 거기에 친정엄마가 손수 재서 구운 김을 곁들이면 매콤달콤짭짤고소, 부족한 맛이 없다. 갓지은 밥은 왜이렇게 김치와 잘 어울리는지.


분명 나는 요리를 싫어하는데 이때는 신이나서 끓였다. 도대체 왜 인지를 모르겠다. 오늘 점심에도 한솥 끓여놓은 김치찜에 계란 프라이에서 먹을 생각으로 푸근한 내가 이상하다.



20250202


이 좁은 땅덩이, 이 적은 인구의 나라에서 뛰어난 가수를 뽑는 경연프로그램이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신기하다. 그보다 더 신기한 건 그 프로그램들을 통해 매번 빛나는 보석, 혹은 원석들이 나온다는 점이고.


이번에 넷플릭스로 언더커버라는 오디션프로를 봤다. 유튜브나 SNS가 발달하면서 자기가 부른 커버곡 영상을 올리고 인플루언서가 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 커버곡 가수들이 펼치는 보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출연자중에는 나도 아는 유명 커버가수들, 이전에 다른 오디션에 참가했던 실력자들도 많았다. 원곡을 재해석하면서 자신의 매력을 더해 노래부르는 참가자들에 감탄하며 봤다. 동시에, 저렇게 잘 하는 사람들도 가수로 데뷔해서 자기노래를 알리고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수들은 도대체 얼마나 잘하는 사람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싱어'와 '스타'는 다른 차원일 수 있겠지만,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분명 무언가 다른 '한끗'을 지닌 사람들일거다.


매력있는 커버곡들을 듣다보니 원곡의 아우라를 다시 느껴보고 싶어졌다. 자연스레 원곡을 찾아 들으면서 한 소절 한 소절을 음미해봤다. 부르는 사람의 사연을 몰라도, 음악적인 지식이 없어도 절로 목소리 자체에 빠져든다. 이럴 때 클래식은 영원하다 하고,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 하는 거겠지. 오리지널의 힘을 새삼 느꼈다.



20250205


화장품이 떨어져서 손가락만한 샘플을 쓰고 있었다. 마침 친정엄마가 스킨로션을 사달라하셨고 화장품담당인 동생이 주문해서 배송을 보내겠다고 했다. 나도 사달라고 하니 동생이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할매들이나 스킨 로션 쓰는거야, 요즘 누가 스킨, 로션을 발라. 젊은 애들은 그런 이름도 모를걸?"


세상에, 그럼 도대체 얼굴에 뭘 바르는거냐고 물었더니, 토너, 세럼, 에센스 딱 요렇게 정리해준다.

잠시 뒤에 내거는 따로 사준다며 2주 정도 기다리라는 톡이 왔길래 '쌉가능'이라고 적어 보냈다.

스킨로션 바르는 세대가 쌉가능이라는 말도 안다는 말 아래로 웃는 이모티콘이 떴다.

세상이 요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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