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안부] - 백수린
나를 위해 너의 편지를 전해준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며칠 더 살 수 있게 했듯이,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눈부신 안부 / 백수린 / 문학동네
(색깔로 강조된 부분은 제가 표시했습니다.)
지난 24년, 6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며 일 년을 보냈다. 190일이라는 시간이 내 위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내 온 몸을 훑고 통과해 지나간 듯 느껴진다.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살았던 기억이 내 안에 진한 나이테로 남았다.
한 줄의 나이테가 새겨질동안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려준 이야기는 '다정함'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을 하게 하거나 반대로 하지 않게 하는 것이 나의 이익이나 타인의 이익을 넘어설 때,
그 마음을 다정함이라고 부를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지 다같이 경험해보길 원했다.
서로의 다정함을 격려하고 내 안의 다정함을 실천하며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이들이 보여준 다정함 덕분이었다. 그야말로 로또당첨의 기운을 대신 쏟아부은 것 처럼 어여쁜 아이들을 만나 일년 내내 다정한 마음을 목격하고 교실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 작은 증거 하나를 손에쥐고 아이들과 헤어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다정한 마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지 아이들을 통해 확인하고싶었던것 같다.
하지만 학교는 매년 새롭게 재편되는 곳이 아닌가. 만나게 될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보호자도 매번 바뀌고, 함께 고분분투할 동료교사나 맡은 업무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바뀌기 마련이다. 교과서나 교육과정도 구성원에 맞춰 늘 재구성해야하며 교실환경과 학급경영방법도 학년에 따라 변화되는 부분이 생긴다. 25년에도 아이들과 다정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작년 말 새학년 신청기간, 고민끝에 5학년을 신청했다. 이번 5학년은 생활지도가 매우 어려운 아이들,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 교권침해와 학교폭력 사안을 반복적으로 일으켰던 아이들이 몰려있어 다들 피하고 싶어하는 학년이었다. 게다가 관리자를 포함해 온 학교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A도 있다. 이미 저학년때부터 기물파손, 폭력, 상대를 가리지 않는 욕설등, 여러 문제행동을 보였고, 비협조적이며 무책임한 부모때문에 더 어려운 아이다. 때문에 5학년은 학교안에서 기피학년이 되었고,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처럼 내색하지 않지만 누가 담임을 맡게될까 조심스러운 분위기마저 생겼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아이를 맡아야만한다. 조심스레 내가 맡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작년에는 부장으로 봉사했으니 올해는 힘든 아이를 품고 온전히 아이들에게만 집중해보면 어떨까.
그 아이와 부딪혀 보내는 일 년을 상상해 보았다.
마침 나와 가장 가까운 후배선생님도 5학년을 맡게 되었다. 여리고 순하지만 어떤 아이들을 만나도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 사람, 이 사람과 함께라면 충실하고 보람찬 1년을 꾸릴 수 있겠다는 믿음을 주는 사람, 후배지만 늘 배울거리가 넘쳐나는 선생님이다. 이 사람이 내 옆반이 된다니 아무리 아이가 힘들게 하더라도 잘 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올라왔다. 한 번 마음을 정하고나니 부담과 갈등이 사라졌다. 만용이라해도 좋았다.
하지만 아이에겐 나보다 더 좋은 인연이 있었다. 어떤 인연, 혹은 어떤 기운, 어쩌면 어떤 섭리로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해주고 기다림으로 품어줄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A는 내 옆 교실, 후배선생님네 반이 되었다.
"이상하게요, 저는 제가 담임이 될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내 마음을 읽은 양,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어디서 읽은 구절인데, 이 맘때면 항상 떠올라요. 학교는 누구를 환대해야하는가...... 이제 준비해야죠."
연하게 마음을 간질이던 물결이 깊고 진한 깨달음이 되어 크게 출렁였다. 환대, 먼저 다가가고 먼저 내어주는 그이의 다정함, 이 다정한 마음이 환대가 아니면 무얼까. 이토록 생생한 다정함이야말로 현대철학자들이 말하고는 환대다. 죽어가는 선자이모를 위해 이모의 첫사랑 찾아나서고, 아이들이 전해준 편지가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마음 덕분에 며칠을 더 살 수 있었다고 편지에 쓰고, 그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난 뒤 사랑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해미가 우리를 구원할 다정함이고 환대다.
올해도 분명 이 다정한 마음들이 모여 서로를 물들이고 더 큰 무늬를 그리며 멀리멀리 나아갈거다. 그이와 A,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의 다정함도 함께 퍼지겠지. 내게 주어진 몫은 눈부신 안부를 닮은 기도다.
ps - 개학전에 써두었던 글을 개학 후 첫 금요일에 발행합니다. 부디 평온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