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명상 Oct 16. 2020

거북이 사장님은 잘 지내시죠? (3)

바리스타는 에스프레소가 주문 들어오면 평소보다 더 신경써서 커피를 추출하는 경향이 생긴다. 아무래도 그렇다. 뭐, 평소에도 다들 열심히 만드시겠지만 그래도 바리스타에게 에스프레소는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는 메뉴다. 모든 커피의 시작 중 하나이기도 하고 작은 잔에 아메리카노와 같은 가격을 지불하며 주문하는 마음에 이미 가성비 같은걸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될테니까.


아무튼 카페에 들어온 남자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는 주방과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거북이는 꽤 신경써서 커피를 추출했고 남자에게 가져갔다. 그 때 남자는 예상치도 못한 질문을 했다.


"사장님. 왜 커피가 이 시간에 떨어진거에요?"


'그게 무슨 질문이람? 커피가 왜 그 시간에 떨어졌는지 왜 물어보지? 원두를 열심히 쳐서 포터필터에 담아냈고 신경써서 꾹꾹 커피를 눌렀고 버튼을 눌러서 세팅되어있는대로 추출했는데.' 아마도 거북이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질문에 재대로 대답을 하지 못해 내내 그 순간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거북이는 그렇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자신을 모른척 지나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뻔히 보이는 바쁜 프랜차이즈 카페를 찾아가서 커피 추출의 시간을 세고, 그걸 질문하는 사람도 어떤 의도였을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그 때의 거북이는 아마도 스스로에게 더 충격이 컸던 것 같다. 그런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이 작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 날 유유하게 헤엄치던 거북이는 먹이를 물고 턱을 닫았다. 시간이 지났고, 이제 거북이에게 커피를 질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느낀다. 단단한 등껍질 가득 커피가 꽉 차있다는걸.


아무튼 거북이는 나에게 커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나 역시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고 두 세달 동안 수업을 진행했다. 분노와 함께 시작한 공부는 거북이에게 꽤 커다란 동기부여를 만들었다. 나도 거북이와의 수업을 위해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모은 나의 지식을 텍스트로 정리하고 여기저기 자료를 모아서 수업 교재를 만들었다. 수업을 하기 위해 나는 수업을 하지 않는 날에 또 공부를 했다. 그게 지금의 <일상적 커피>의 바탕이 된 시작이기도 하다. 그렇게 부족하고 엉망이었을 나의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서도 거북이는 혼자서도 지식을 쌓았다. 열심히 커뮤니티를 찾고 다른 과정들을 수료했다.


나의 첫 커피 제자였던 거북이는 이제 내가 궁금한게 생기면 가장 먼저 전화하는 든든한 커피 동행자가 되었다.


여의도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거북이는 시간이 지나서 이제 문정동에서 카페를 두개나 운영하는 <거북이 사장님>이 되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일상적 커피>를 진행하는 커피 선생님이기도 하다. 거북이의 커피 지식은 어마어마하다. 궁금한게 생기면 가장 먼저 거북이에게 전화를 한다. 그럼 웬만한 답은 다 나온다. 거북이에게 5-6년 전 그 사건은 그렇게 거북이를 거북이 사장님으로 만들어냈다.


벌써 나에게 커피수업을 받고 지나간 사람들이 세자릿수가 넘어간다. 더 이상 커피를 수업하고 가르치는 건 나에게 떨리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나 역시 늘 새로운 이슈를 탐구하고 주변에게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를 전달해드리는게 커피 수업을 하는 목적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커피와 관련해서 그 '새로운 이슈'를 나에게 전하는 동반자는 나의 첫 제자 거북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 나와 친한 사람들은 항상 내 안부를 물은 뒤에 하는 질문이 있다.


"거북이 사장님은 잘 지내시죠?"

매거진의 이전글 거북이 사장님은 잘 지내시죠?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