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가님, 시는 모르죠?
뜨끔. 항변하듯 말한다.
맞아요. 제가 시는 전혀 몰라요. 그동안 글을 쓰면서도 시의 은유와 비유가 그렇게 오글거릴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 대학원에서 시창작 과목을 듣는데. 그래서 머리 깨질 거 같아요. 아주, 죽겠어요.
그러니까요. 조작가님 글에는 시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글은 쥐뿔도 모른다고 말하던 도수치료사의 말이다.
자꾸 왼쪽 허벅지 뒤쪽이 땡기는 느낌이 들고 걷거나 뛰면 너무 아파서 결국 정형외과에 갔다가 시작하게 된 도수치료는 치료보다 대화가 더 흥미로웠다. 환자에 맞춰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걸어주는 40대 후반의 남자 도수치료사는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저를 가르친 교수가 있어요. 외국에서 박사까지 받고 교수로서는 훌륭하긴 하지만 임상치료는 전혀 안 하고 있거든요. 근데 그분이 책을 내서 유명해졌어요. 그래서 나도 책을 좀 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단 말이죠.”
그가 그런 이야기를 먼저 꺼냈기에 나는 그에게 내가 낸 책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가 잡지 기자를 했고, 편집을 했고 그리고 10년간 아팠다가 요양원 부주의로 생을 마감하게 된 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쓴 책 <그런 엄마가 있었다>를 썼다는 사실에 대해 말해주며 한 권 가져다주겠다고 했더니 그가 대꾸한다.
에이, 책은 사서 읽어야죠.
원래 인생 철칙이 그러한지 아니면 고객 감동을 위한 멘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는 내 책을 사서 읽은 감상의 첫 마디가 이러했다.
조작가님, 시는 모르죠? 글에 시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이제 작가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조작가님!
외국어를 전공한 나는 패션 잡지 기자로 일을 했었고 결혼 후에는 육아와 교육을 다루는 잡지기자로 일했다. 어쨌든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쓰는 일을 하고 한 달에 10꼭지가 넘는 기사를 쳐내면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했을 당시, 나는 시적인 글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그저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할까, 좀 더 세련되고 유행하는 문장을 써내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며 글을 써 왔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본분이라 여겼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겼었다.
엄마의 투병기를 담은 책을 내고 나서 뭐가 부족한지 잘 몰랐다. 왜 책이 안 팔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물론, 투병기라는 우울한 장르적이 특성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 전에 나에게는 문학적인, 시적인 표현력이 부족했다. 아니, 아예 없었다.
물론 시적인 표현을 쓰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러지 않은 것이라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나는 시적인 것이 싫었다. 그래, 오글거렸다. 왜 A를 A라 말하지 않고 각종 수식어와 은유에 기대어 말하는가. 그것을 그렇다 말하지 못하고 뜬금없는 비유를 들이대는 것은 오류라 여겼다. 그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라 여겼다.
그런 생각은 한참을 갔다. 참고가 될만한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그러한, 즉, 비유와 은유가 가득한 문학적 표현으로 채워진 글을 보면 도저히 못 견디겠다며 책장을 덮어버렸다. 읽으면서도 그러는데, 차마, 쓰면서는!
나는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쓰는 것을 쓰기의 최대 덕목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렇게, 엄마의 10년 투병기를 썼다. 쓰고 나서, 책으로 출간되고서야 알았다. 이런 사실적인 내용은 내가 옆 사람에게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도 충분하다는 것을. 굳이 타자질을 해댈 시간과 종이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분명 내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했으나 그럼에도 책을 사서 소유하고 물리적으로 들고 읽기 위해서는 그 내용에 대한 문학적이고 시적인, 작가 특유만의 표현법이 있어야 함을.
이후 도수치료 선생에게 가서 말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걸 듣고, 대학원에서 시창작을 들으며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그가 말했다.
에효, 제가 그 말을 해놓고 많이 후회했어요. 내가 글을 뭘 안다고. 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씀드린 거 같아서.
흠. 그의 판단을 믿었던 것은 옳았나 아닌가.
나는 시에 대한 열등감을 지우지 못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시창작 수업을 들었고, 창작시 3편을 써서 내라는 기말고사를 위해 1일 1편의 시를 쓰며, 아니 용을 쓰며 꾸역꾸역 시를 만들어갔다.
결국 나의 시창작수업 점수는 100점 만점에 98.8이다.
이런 점수라면, 내가 써낸 3편의 시를 당당히 소개해도 되지 않을까?
<겹벚꽃>
https://brunch.co.kr/@atoi02/378
<연명 치료>
https://brunch.co.kr/@atoi02/374
<12월, 어느 밤>
https://brunch.co.kr/@atoi02/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