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공주인 걸 들키지 마.

염포산 미스터리-6

by Ann

재린이 전 날 밤 일방적인 공격을 당한 것이 무색하게 다음 날 아침이 화창히 밝았다.

가기 싫은 몸을 이끌고 학교로 향했다.

옆에서 요정충신은 힐끗힐끗 재린을 바라보며 눈치를 봤다.


말로만 듣던 학교폭력 대상이 내가 되면 어떡하지,

학교에 갔는데 내 책상에 낙서가 되어 있거나 내 사물함에 쓰레기를 넣어놓은 건 아닐까.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10분 거리 동안 재린은 오만가지 상상을 했다.


다행히 교실에 들어서자 아무 일도 없었다. 어제 재린을 괴롭혔던 애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다른 친구들도 딱히 재린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야! 이재린 화장실 가자~"

재린과 친해진 은영이 화장실에 가자고 했다.

재린과 은영이 복도에 나서자, 맞은편에서 어젯 밤 재린에게 욕을 퍼부었던

양휘연과 민하, 그리고 그 친구들 서너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재린은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벽 쪽에 붙어서 가고 있었다.

[퍽.]

맞은 편 무리 중 한 명이 기어이 재린의 어깨를 치고 갔다.


"뭐야?"

은영은 뒤를 돌아보며 발끈했지만, 재린이 만류했다.

복도 창가에 앉아 있던 요정충신이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화를 참자. 재린은 실수로 친 것이라 생각하며 은영과 화장실에 가던 길을 갔다.


[퍽.]

이 번엔 뒤에서 한 번 더 그 무리가 재린의 어깨를 치고 갔다.

누가 봐도 일부러 친 것이 확실하도록 은영과 재린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재린의 어깨를 치고 간 것이었다.


"아 씨발."

어깨를 치고 간 휘연은 재린에게 욕을 했다.

재린은 다시 한 번 머리가 차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앞에서 그 무리가 욕을 하는 것도,

은영이 황당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것도 흐릿하게 보였고, 모든 말소리도

귓가에서 웅웅거리고 있었다.

요정 충신은 창가에서 벌떡 일어나 안절부절하며 재린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쩔까. 재린이 정신을 잃을 듯이 멍을 때리고 있을 때 갑자기 은영이 휘연의 머리채를 잡고

복도 신발장 쪽으로 밀어버렸다.


"니 뭔데 시비 거냐고?"

재린은 빠르게 머리게 피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아, 역시 나는 공주였다.

이유를 묻지도 않고 자신의 편에 서서 대신 싸워주는 친구가 있다.

그것도 전학온 지 한 달 만에!


그 뒤로 재린을 괴롭히던 무리들은 괴롭힘을 멈추었다.

그저 재린이 지나가면 수근덕 거리며 작게 욕을 할 뿐이었다.

은영이 아니었다면 재린은 직접 들이박을 뻔 했다.


재린은 오랜만에 은영에게 연락했다.

[은영~~ 잘 지내? ㅋㅋㅋㅋㅋ]




강훈은 교무실에서 10여 년 전 자퇴했다던 여학생의 생활기록부를 받아왔다.

2010년 자료였고, 당시 강훈도 현대고등학교에 재학중이었다.

학교에 갔을 때는 이미 당시 재직 중이시던 선생님들은 없었다.


강훈은 사무실에 복귀해서 천천히 생활기록부를 읽었다.

이수인. 고등학교 3학년.

[세심하고 조용한 편]

모든 해에 공통적으로 적혀있는 특징이었다.

성적은 대부분 우수했다. 목표로 하고자 한 것이 있으면 끝까지 성취하는 성향이라고 되어 있었다.

교우관계도 원만한 듯 했다.


강훈은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했다.

1학년 때는 꽤나 활발하게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분위기도 시끌벅적 했던 것 같은데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다들 입시 준비, 진로 고민 등이 생기면서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학습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다.


1학년 때 입학 후 첫 모의고사를 쳤을 때였다.

강훈의 같은 반 친구였던 경식이 교실문을 벌컥 열며 소리쳤다.


“헐 야 3반에 자살한 애 있단다!”


경식은 별명이 소식통이었다. 경식의 식, 소식통의 식통을 따서 대부분 ‘식통이~’라고 부르곤 했다.

식통이가 전해준 충격적인 소식에 강훈과 반 친구들 모두 멍해졌다.

자살했다는 친구는 특목고인 청운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싶었지만 떨어져서 현대고등학교로

진학했던 친구였다.

평소에도 성적에 대해 욕심이 많았기도 하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부모님도 학업에 대해 엄격하다고 했다.


성적비관으로 인한 자살.

이런 건 뉴스나,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이거나, 다른 특목고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다.

바로 옆반 친구의 자살 소식은 빠르게 퍼졌고, 한 동안 그 교실의 빈 책상 위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놓아둔

흰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자살한 친구의 짝은 여학생이었는데 당일 충격을 받고 실신했다고 했고,

다음 날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선생이 자리를 바꿔주었다고 했다.

강훈이 살면서 겪은 첫 충격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2학년이 되고 나서 강훈도, 강훈과 친하게 지낸 친구들도 모두 공부에 전념했다.

2011학년도 수능이 끝나고 난 후,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복도가 웅성웅성해서 소란스러운 반으로 가 보니, 1반이었다.

몇몇 여학생들은 얼굴을 가리며 울고 있었고, 남학생들은 시끌시끌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야, 축구 잘하던 애 있다 아니가, 금마 자살했단다.”

종종 강훈과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던 친구였다. 얼굴이 하얗고 잘생겼었고

축구도 잘하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성격이 조금 허세가 있어서 친구가 많지는 않았었다.


강훈이 겪은 두번째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자살한 이유는 사귀던 3학년 여학생이 수능이 끝나고 헤어지자고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충격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강훈은 문득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에서 이렇게 쉽게 목숨을 잃는 일이 두 번이나 생기고 나니,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고,

공부를 하고 있는 게 의미가 있는지도 알 수 없게 느껴졌다.

자신이 이렇게 주변 환경에 영향을 잘 받는 지도 처음 알게 되었다.


멈칫.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면서 수인학생의 생활기록부를 읽던 강훈은 한 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허언으로 인한 교우 관계에 문제가 생김. 정신과 진료를 위해 통원 치료를 다님.

........자퇴.]


수인은 고등학교 3학년에 자퇴를 했다고 되어 있었다. 정신과 진료를 받은 기록도 있고, 증상은 허언이었다고 한다.

2학년 때까지는 없던 기록이었다.

강훈은 이 학생에 대해 조금 더 조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52-xxx-xxxx. 행정실에서 받아온 수인의 연락처로 전화를 해보았다.

역시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미 10년이 넘었으므로 이사를 했을 수도 있고, 전화번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강훈은 오랜만에 식통에게 연락을 했다.

식통은 지금 울산에서 축산집을 하고 있었다.

식통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오~~ 강후이~~ 오랜만~ 잘 지내냐?”


“나는 뭐 똑같지. 간만에 술이나 한 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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