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포산 미스터리-7
재린과 은영은 오랜만에 여의도에서 유명하다는 콩국수 집에서 만났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드문드문 연락은 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각자 생활이 너무 바빠, 연락을 거의 하지 못 했다.
재린이 오랜만에 연락해서 거의 5년 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야 이재린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나?"
은영은 공부도 잘 해서 서울 명문대학을 갔는데,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대학생활을 하고 바로 회사를 다녔는데도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
"난 그냥 뭐 늘 똑같지~ 너도 잘 지냈어?"
"아 이재린 니는 진짜 사투리를 안 쓴다~"
"난 이제 서울사람 다 됐지 뭐"
재린의 능청에 둘은 낄낄거리며 콩국수를 먹었다.
은영이 이렇게 말을 할 법도 한 것이, 재린과 은영은 울산의 중학교 동창이었다.
은영이 재린을 위해 괴롭힘을 막아준 이후로 둘은 부쩍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운이 좋게 2학년, 3학년이 되면서도 같은 반에 배정 받아,
서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많은 추억도 공유할 수 있었다.
재린이 전학가기 전 친했던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기는 했으나,
점점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에게 적응하며 이전 학교에서 친했던 친구들과는
서서히 연락이 끊겼다.
재린이 전학 온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2학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2학기를 앞두고 3학년에 재린과 같은 여자중학교에서 전학 온 선배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재린과 마찬가지로 전학 왔다는 선배에 대한 소문은 한 학년 아래인
2학년까지도 자자했다.
여자를 좋아한다더라, 학교 폭력으로 강제전학을 온 거라더라,
전학을 오면서 얼굴을 싹 뜯어고쳤다더라, 재벌집 딸이라더라 ...
소문을 듣고 당시 재린에게 은영이 물었었다.
"니랑 같은 학교 선배던데 아는 사람이가?"
재린은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 전 학교에서는 선후배 간의 교류도 거의 없었기에
한 학년 위 선배와 친해질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소문이 사실이었다면, 그 전 학교에서도 유명했을테니 모를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소문은 모두 거짓이다.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재린이 중학교를 다니던 때는 한창 특수목적고등학교, 특목고 입시가 열풍이던 때였다.
재린의 부모님도 재린을 특목고에 진학시키기 위해 여러 사교육을 시켰다.
그 중에서도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재린을 영어학원 특목고 입시반에
입학시켰다.
재린은 그 학원 입시반에서 같은 여중에서 전학왔다던 그 소문의 선배를 만날 수 있었다.
친화력이 좋은 재린은 같은 반이 된 그 언니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둘은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학교에서 돌던 소문은 모두 거짓이었다. 그 언니는 평범한 집의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만 삼남매 중 둘째라, 욕심이 많았다.
그저 부모님이 시켜서 학원을 다니는 재린과 달리, 그 언니는 뚜렷하게 원하는 목표가 있었고
승부욕도 넘쳐서, 단어테스트라도 보는 날에는 같은 반 친구들의 성적을 묻고 다니며
성적을 비교하곤 했었다.
그 덕에 그 언니는 항상 성적이 높은 편이었고, 재린에게 종종 영어에 대한 조언도
해 주고는 했었다.
한 번은 학원에서 새로운 게임을 하겠다고 했다. 영화 매트릭스의 일부 장면을 보여주고,
대사를 듣고 자막의 빈 칸을 채워넣는 게임이었다.
재린은 어학에 기본 이상의 역량을 보이고 있어,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테스트에 임했지만,
그 언니는 새로운 유형의 게임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언니 원래 잘 하잖아~ 이것도 다 맞출 것 같은데?"
재린은 게임 시작 전, 격려를 해 주었다.
그러나 격려가 무색하게 대사가 끝나고 한 명씩 얼마나 맞췄는지를 체크하니,
재린이 가장 많이 맞춰 가장 크게 득점을 했고, 그 언니는 평균보다도 적게 맞추었다.
그 때부터 그 언니의 재린을 향한 집착이 시작되었다.
재린이 책을 읽으면 바로 따라서 책을 사거나, 재린이 다른 학원 문제집을 풀고 있다면
똑같은 문제집을 사서 풀곤 했다. 쉬는 시간마다 재린에게 어떻게 공부하는지, 어떤 필기구를 쓰는지 등등도
물어가며, 재린의 모든 방식을 따라하려고 했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재린은 이걸 크게 불편하게 여기지 않아, 묻는 대로 상세히 답해주고,
자신을 따라하는 언니와 모든 공부를 함께 하며 오히려 더 친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재린아 니는 어떻게 안 외웠는데 스펠링을 다 맞춰?"
재린은 꾸준히 자신에게 공부방법을 묻는 언니에게 '그냥 이건 느낌으로 맞췄다.'라고 답해도
믿지 않기에, 어떻게 외우지 않고도 스펠링을 다 맞추느냐는 질문에 충동적으로 답을 했다.
"언니, 사실 나는 공주거든."
수인은 잠시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재린을 바라보았다.
재린은 푸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잠시 침을 삼키고 다시 말했다.
"농담이고. 근데 나는 진짜 스펠링은 잘 모르겠어. 그냥 단어 많이 외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아는 것 같은데?"
썩 만족하지 못 한 표정으로 그 언니는 본인의 단어장에 집중했다.
재린은 그 때까지도 알 지 못 했다. 그 당시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자신에게 집착하던 그 언니에게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강훈은 오랜만에 식통이와 포차에서 만났다.
"강후이, 우리 중학교 때 몇 반인지 모르겠는데 키 크고 농구 잘 하던 애 있다 아니가?
태엽인가, 금마 요 앞에 파스타집 차렸다대."
식통은 여전히 모르는 게 없었다.
"니는 모르는 게 없다 진짜 금마가 누군데, 난 기억도 안 남"
"관심 좀 가지고 살아라 우리 고등학교 뒤에 백골 나온 거 알제? 그거 니 조사 중이다 아니가."
강훈은 목덜미에 닭살이 돋았다. 식통이가 나중에 강훈의 신점을 봐주겠다고 해도
덜컥 믿어버릴 만큼 그의 정보습득력에 휘말릴 뻔 했다.
사실 강훈이 오랜만에 식통이에게 연락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식통이라면 고등학교 3학년에 허언으로 자퇴를 했다던 선배에 대해서도 분명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야 그 조사 어케 되가는데? 그거 사람 백골 맞나?"
"몰라, 그냥 신원미상에 자살로 종결될 것 같긴 한데 살짝 찝찝하다."
"와씨 우리 알던 사람이었으면 소름이겠다 설마 그 때 자살한 금마 시체 거기 묻은 거 아이가"
둘 중 누구? 강훈은 식통의 철없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그 당시 자살했던 친구 중 누구 시체?
라고 속으로 반문하는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꼈다.
"둘 다 장례 치뤘다 했는데 아니겠지."
식통의 예민한 정보습득력에 쉽게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자칫하면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해
보안이 새어나갈 수도 있고, 이는 강훈을 향한 질책 사유가 충분했다.
"야 근데 우리 학교에 우리학년 말고도 자살한 사람 더 있던 거 알제?"
답답함에 술만 들이키던 강훈에게 정신이 번쩍 들도록 식통이 운을 띄웠다.
"우리 학년 말고? 다른 학년에? 누구?"
"아니 3학년 중에도 수능 끝나고 자살한 사람도 있고, 또 왕따 당해서 자살한 사람도 있다 했음"
식통의 말에 따르면, 자신들보다 한 학년 위에, 수능이 끝나고 성적을 비관하며 자살했다는 선배들에 대한
소문도 돌았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식통과 같이 축구를 하며 친해진 선배의 말에 의하면
그 선배의 반에 공부도 꽤 잘 하고 학급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이 어느 순간 허언증이 심해지면서, 점차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허언이었다고 했다.
이를테면 수행평가 전 날, 공부를 많이 하지 못 했다.라고 하며 수행평가 만점을 받고
알고 보니 전 날 밤을 새며 공부를 했다던가,
집이 엄격해서 시내에도 못 놀러 나가게 한다고 했지만 그저 놀러 안나가고 공부하고 싶어
핑계를 댄 것이라던가 등등
이런 허언이 점차 빈도도 잦고 스케일도 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집에서 성차별이 심해서 여자인 자신에게는 어떤 지원도 해 주지 않는다.
라고 했지만, 사실 학교에 부모님이 오거나 수학여행, 수련회 등을 갈 때 보면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는 평범한 부모님이었다.
자신은 원래 특목고를 갈 만큼 성적이 좋았는데, 부모님이 집 근처 학교를 다니라며
학비 싼 인문계를 보냈다. 라고 했으나, 사실상 현대고등학교도 사립학교라
학비가 싼 편이 아니었으며, 특목고를 갈 만큼의 성적이 아니었다는 게
같은 학원 출신 친구들을 통해 알려졌다.
허언증과 더불어, 수능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부터는 친구를 골라사귀기 시작했다고 했다.
모의고사 성적이 좋았던 친구나, 자신이 성적이 잘 안 오르는 과목을 잘 하는 친구들을
골라 사귀면서, 이득에 따라 친구를 사귀다 보니, 점점 친구들 사이에서 말이 돌고
신뢰를 잃었다고 했다.
강훈은 식통에게 물었다.
"그 사람 이름도 아나?"
"모르지, 그 때 그 형이 이름도 말은 했는데 기억 안 남. 어차피 나랑 상관 없다 아니가."
"그럼 그러다가 자살한거가?"
"모름. 그 형이 그 때 말해줬을 때는 걍 점점 왕따 당하다가 어느 날 걍 갑자기 안 나왔다 했는데
같이 다니던 친구들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고 선생한테 물어봐도 딱히 아무 말 안 해서
걍 다들 자살했다더라 이렇게 소문 났다 하던데."
강훈은 자신의 빈 술잔을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혹시 그 학생 이름 '이수인' 아니었나?"
"어!! 어 맞다 야 니 어케 아는데? 맞다맞다 내가 그 형한테 이름 듣고 '인순이요?'이러면서 장난 쳤거든.
와 씨 설마 백골 그 사람이가?"
강훈은 목덜미에 다시 한 번 소름이 돋으며 털이 솟는 걸 느꼈다.
"아니 나도 그 때 들은 거 같아서 말해 본 거임."
식통이에게는 대충 얼버무렸으나, 어서 서로 복귀해서 '이수인'에 대한 행적을
조사하고 싶었다.
"야 강훈이. 근데 그 사람 진짜 골 때리는 게 나중에는 무슨 거짓말까지 했는지 아나?"
강훈은 술잔을 잡고 술잔을 바라 보던 자세 그대로 눈만 올려 식통이를 바라 보았다.
"지가 공주라고 했대."
강훈은 순간적으로 숨이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강훈이 수인의 생활기록부에서 봤던 글자가 눈 앞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
[자신을 공주라고 하는 등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같은 허언으로 인한 교우 관계에 문제가 생김.
정신과 진료를 위해 통원 치료를 다님.........자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