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포산 미스터리-8
재린과 은영은 밥을 먹고 자리를 옮겼다.
“아 맞다 재린아 니 그거 들었나 나 현대고 나왔잖아. 거기 뒤에서 백골 사체 나왔대.”
재린은 뒷덜미에 닭살이 돋았다.
그저 한 번씩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남들보다 특별하다고 느껴지곤 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이 공주라는 걸 느꼈다.
평범할 수 있는 일상도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러기 위해 특별할 수 있는 양념을 칠 줄 아는 것도 모두 자신이 공주이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린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 은영에게서 자신의 고향이자
친구가 다녔던 고등학교 뒤에서 백골사체가 나왔다는 얘기는
어쩌면 재린에게 또 하나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되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백골 되려면 진짜 몇 년은 지나야 하는거 아냐? 진짜 소름이더라.
아니 사실 우리 고등학교에 자살한 사람들도 좀 있었거든.“
은영은 조잘조잘 얘기했다.
“아 그리고 자살은 아닌데, 왜 중학교 때 니랑 같은 여중에서 전학 온 언니 있잖아.
왜 니랑 같은 영어학원 다니면서 특목고 가겠다고 했던 언니.“
“수인언니?”
재린은 수인과 있었던 학원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름을 말했다.
“어어. 수인이었나? 몰라 난 안 친해서 이름은 모르겠는데, 그 언니 막 청운고 합격했다는 둥
외고 합격했다는 둥 이러면서 졸업했잖아. 재린이 니 외고 합격했다 했을 때도 연락 왔다며. 근데 현대고 가니까 그 언니 있더라?
어이 없제 ㅋㅋㅋㅋㅋ 진짜 개 허언증. 근데 그 언니도 나중에 자살했다는 소문 돌았다?“
“뭐???”
재린은 듣던 중 가장 충격적인 말에 큰 소리로 물었다.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던 언니는 먼저 졸업하며 당당히 특목고 어딘가를 합격했다며 학원을 그만 뒀다.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았고, 재린이 외고에 합격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축하문자를 보내왔었다.
[재린~ 외고 합격했다며. 축하해!]
사실 자주 만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사이가 서먹해지기도 했고,
공부 이야기 외에는 수인과 따로 나눌 이야기가 없었던 터라 그 후로 재린은 연락을 끊었고
서서히 수인도 일방적인 연락이 멈추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각자 살아갈 줄로만 알았다.
사실 대학교에 가면서까지도 재린의 기억 속에서 수인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자살했다고?? 왜? 어디서?”
“아 근데 자살했다더라 뭐 이런건 아무도 정확히 본 적은 없고 그냥 루먼데,
그냥 수능 앞두고 갑자기 학교를 안 나왔대. 근데 그 언니 중학교 때도 좀.. 뭐라 그러지?
이기적이었잖아 엄청 공부 집착하고. 근데 고등학교에서도 그랬나봐.
그래서 걍 울 학교에 자살한 애들 좀 나오고 이러니까 그 언니도 자살했다더라~ 뭐 이렇게 소문 난 듯?“
재린은 그 소문이 거짓일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재린이 알던 수인은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았으나,
그 욕심으로 인해 더 악착같이 살아갔으면 살아갔지 절대로 자살을 할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린은 은영과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울산 현대고등학교 백골]
신원 미상인데다 크게 유명한 학교나 지역도 아닌지라 2~3개 기사가 전부였다.
어쩌면 고등학교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사체일 수도 있지만
은영이 해준 이야기들이 괜히 이 기사에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었다.
괜히 인스타그램을 켜서 ‘이수인’을 검색해보았다.
흔한 이름이라 딱히 수인으로 보이는 계정을 찾기는 어려웠다.
고등학교 때부터 끊긴 인연이니 지금에서야 찾으려 해도 찾기 어려웠다.
인스타그램에 DM 알림이 와 있었다.
알림을 켰다.
[여어~젤리젤리 잘 지내냐?]
강훈의 DM이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새해도 아니고 다들 오랜만에 뭔 일들이래.“
재린과 강훈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강훈은 식통의 말을 듣고 스치듯 재린을 떠올렸다.
강훈이 서부초등학교를 다녔을 때, 복도식 아파트의 1층에 살았다.
강훈의 아파트는 한 층에 10호까지 있는 복도식 아파트였는데
1호와 2호가 붙어 있고,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건너서 3호부터 10호까지 이어져 있는 구조였다.
강훈은 101호, 바로 옆 102호에 재린이 살았다.
재린 역시 강훈과 같은 초등학교였다.
정확히 몇 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었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바로 옆집에 사는 친구와 같은 학교를 다니니, 늘 엄마들이 둘이 함께 학교를 보내곤 해서
거의 같은 반 친구처럼 붙어서 등교를 했다.
재린의 침실 창문이 복도 쪽으로 나 있었는데,
가끔 창문을 열고 재린과 몰래 사탕과 장난감을 교환하는 등
물물거래를 하곤 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늦게 하교 했는데,
재린이 아파트 현관에 서서 강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젤리 뭐하냐?”
강훈은 재린에게 젤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정강훈 빨리 따라와 봐.“
재린은 대뜸 강훈의 책가방을 끌고 아파트 뒷편 화단으로 끌고 갔다.
집에서 베란다로 내다 보면 바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재린은 101호와 102호 베란다가 붙어있는 화단으로 강훈을 데려 가더니,
갑자기 잔디를 헤집기 시작했다.
“아 뭐 찾는데.“
재린은 강훈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열심히 무언가를 찾더니
‘찾았다!’는 비명과 함께 강훈의 목덜미를 잡고 본인이 찾은 것의 방향으로 강훈의 머리를 돌렸다.
재린이 보여준 곳엔 강훈의 주먹보다 조금 더 큰 수박이 있었다.
“헐! 새끼수박이다!”
감귤만한 크기에 나름 수박답게 줄무니가 선명히 나 있는 것이 귀여웠다.
“야 정강훈 내가 할머니랑 수박을 먹고 베란다로 씨를 버렸거든?
근데 할머니가 수박이 자랄 거니까 잘 지켜보라는거야. 그래서 내가 며칠 동안 여기 와서 찾아봤거든.
근데 진짜로 수박이 났어!“
“엥? 수박에 있는 씨 심으면 수박이 나?”
재린은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야 아무튼 이거 니만 알고 있어. 이거 니한테만 보여준 거임. 이거 수박 키워서 나중에 먹고 또 씨 뱉어서 심자.“
재린은 강훈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듯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재린과 헤어지고 나서, 강훈은 몰래 다시 나와 미니 수박을 똑 잘라서 집으로 가져가 버렸다.
딱히 재린을 곯려주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저 작은 수박이 너무 귀엽고
신기했다. 내일 몰래 친구들에게 가져가서 보여주고 싶었다.
다음 날 재린과 등교를 하려는데, 재린이 강훈에게 물었다.
“야 수박 니가 가져갔지.”
강훈은 딱히 거짓말하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당황해서
“아니?”라고 답을 했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도둑질을 했다는 것을 느꼈다.
”수박 없어졌나?“
강훈은 이왕 발뺌한 김에 계속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어. 아침에 얼마나 자랐는지 보려고 갔는데 없어졌어. 니한테만 말해준건데, 니가 가져간 거 다 안다.”
강훈도 재린의 말대로 범인은 자신 밖에 없음을 알았지만,
이제 와서 거짓말 했다고 밝힐만큼 용기가 있지는 않았다.
그 나이대에 가장 두려운 것은, ‘엄마한테 다 일러.’였다.
“이재린, 니네 아줌마한테 말할 거가?”
강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재린은 생각보다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의외로 재린이 크게 화를 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같은 나이대 여자친구들의 카랑카랑한 따짐을 듣기에는 강훈은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야 맞다, 그게 너무 작아서 니가 못 찾았을 수도 있다 아니가. 이따 같이 다시 찾아보면 되지.“
그 후에 재린이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저 재린의 말이 가관이었기에 어린 나이의 강훈에게 재린은 큰 인상을 남겼다.
“추방시킬거야. 나는 범인을 무조건 잡을 수 있거든. 공주니까.”
강훈은 말없이 조금 더 걷다가 결국 참을 수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야, 이재린. 니 애들한테 다 말해~~ 이재린 공주병이래요~~”
그리고 강훈은 학교로 뛰어 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미니 수박을 보여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린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강훈이 수박 범인이었음은 확실해졌다.
하지만 강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재린이 수박에 큰 흥미가 없어 보였고, 강훈에게 화를 낸다면 강훈 역시 재린이 공주병이라고
친구들에게 소문을 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재린은 그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다시는 재린과 함께 등교를 하는 일은 없었다. 학교나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쳐도,
재린은 딱히 강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훈도 조금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터라 괜히 재린과 서먹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근데 묘하게 그 후로 여자애들이 둘 셋 씩 모여, 강훈이 지나가면 수군거렸고,
강훈이 여느 그 나이 또래 남자애들이 그렇듯이, 여자친구들에게 장난을 걸려고 하면
‘흥’하는 표정과 함께 강훈에게 거리를 두었다.
강훈은 아직 이성에게 관심이 있던 나이가 아니어서 다행히 큰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몇 학년이 지나서 어렴풋이 재린이 주변 여자 친구들에게
’옆집에 사는 강훈이 도둑질을 했다.‘는 소문을 퍼뜨렸음을 알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몇 년이 지나도록 강훈이 그 소문을 몰랐던 것과,
소문을 들은 여자친구들이 수군거린 것 말고는 딱히 강훈을 따돌리거나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큰 문제 없이 강훈은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저 몇 년 뒤, 재린이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이사 가는 날 서로 인사를 하고 있는 엄마들 사이로
재린에게 눈짓을 보냈으나, 재린은 샐쭉한 표정으로 강훈을 쳐다보지 않고 이사를 가 버렸다.
재린은 이사를 갔지만 딱히 전학을 가진 않았으므로 학교에서 계속 볼 수는 있었는데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이 되지 않았기도 하고,
이제 옆집도 살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이가 멀어졌다.
다만 6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둘 사이에는 서먹했던 감정마저 없어지고 그저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가 되어
재린도 자연스럽게 강훈과 눈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가 되며 졸업을 했었다.
스치듯 지나간 추억이니, 식통이 ‘공주’라는 말을 했을 때도
스치듯 재린이 떠올랐다.
중학교를 다른 중학교를 간 것 말고는 이후 소식을 들을 일이 없었지만
여전히 세이클럽 친구였고, 미니홈피가 생겼을 때는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친구들과 일촌을 맺으면서
재린과도 일촌을 맺었다.
그 후 페이스북이 생기면서 자동 추천되는 재린과 친구를 맺었고,
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가면서 역시나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 친구가 되었다.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시점에서 딱히 재린에게 무얼 물어볼지는 몰라도
그냥 오랜만에 연락을 던져볼 수 있는 가벼운 소재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딱히 넓지 않은 울산 동구에서 자신을 ’공주‘라고 말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고,
그것도 자신의 주위에 둘이나 있었는데 어쩌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린의 계정을 들어가 메세지를 보냈다.
[여어~젤리젤리 잘 지내냐?]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읽었다는 표시가 떴다.
[엥 ㅋㅋㅋ 오랜만이네~]
재린에게서 답장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