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포산 미스터리-10
재린은 은영 외에 중학교 친구와 연락하고 있지 않아서 수인의 근황을 알 수가 없었다.
강훈에게서 들은 수인의 이야기는 재린이 생각했던 것보다 놀라웠다.
수인에게 스치 듯이 했던 공주 이야기를 그 언니가 하고 다녔다는 것과 학원 다닐 때도
꽤나 공부에 욕심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고등학교에서도 승부욕이 더 센 나머지 교우관계가 틀어진 것,
한 동안 잊고 지내다가 갑작스럽게 듣게 된 지인의 이야기가 어질어질했다.
강훈과는 종종 연락하고 지내자는 인사를 끝으로 재린은 연휴 끝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종종 일을 하다 옆을 돌아보면 여전히 요정충신이 나른한 눈으로 재린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미친걸까.’
재린은 한 번씩 생각해보긴 했지만 최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 이후 부쩍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
아무에게도 자신이 진짜 공주라는 걸 말하지도 않았고 들킨 적도 없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도 이게 그저 허무한 망상인 걸 알아서 주변사람들에게 말하지 못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 동구 백골 사체]
강훈과 헤어진 이후 매일 검색해보았다.
새롭게 쏟아지는 자극적인 기사에 백골에 관련된 관심은 빠르게 묻혔고 최근 기사도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정말 그것이 수인일까.
재린은 불안했다. 설령 수인이었다고 해도 재린이 불안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녀의 승부욕에, 그녀의 집착에 자신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사뭇 불안함이 느껴졌다.
강훈은 수인도 자신이 공주라고 했다는 얘기를 전하며 재린이 강훈에게 공주라고 말했던 에피소드를 전했었다.
재린은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강훈에게는 20년 가까이 지난 일을 꺼낼만큼 인상이 깊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재린은 강훈에게 물었다.
“만약에 수인 언니가 자살한 게 맞으면 그게 내 영향도 있을 것 같아?”
강훈은 잠깐 멈칫하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 내가 오해하게 말했네. 영향을 받고 말고가 니한테 중요한가? 니 잘못도 아닌데.”
재린은 잠시 안도했지만 다시 생각할 수록 찝찝했다.
물론 재린이 고의로 누군가를 해칠 마음이 없었지만 그래도 어디선가 재린도 모르게 누군가가 재린으로 인해서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리고 재린이 그 사실을 안 이상 과연 아무 걱정도 없이 지내도 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강훈의 얘기를 듣고 재린은 표정이 많이 안 좋아졌다.
아무튼 백골 사체의 신원은 아직 모르고, 수인이 자살했다는 것도 소문이라고, 자퇴한 것만 확실하다고 말하며 재린의 표정을 살폈다.
재린은 그것이 자기 때문일 것 같냐는 질문을 했고 순간 강훈은 자신이 너무 취조하듯이 말한 건가 아차 싶었다.
오해를 풀려고 변명을 하긴 했는데 너무 횡설수설 말해서 자신이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재린이 서울로 가고 나서도 종종 연락이 왔다.
주로 사건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연락이었다.
강훈은 그저 말해줄 수 없다고만 했지만 사실 거진 신원미상으로 처리완료된 것이나 다름 없는 사건이었다.
학부모들의 민원도 점차 줄어들었고, 형사과 내부에서도 조금씩 관심이 줄어들었다.
한 번씩 잊고 있던 민원이 들어오거나, 재린이 물어볼 때면 강훈도 슬그머니 사건 기록을 조사해볼 뿐이었다.
증거가 없지만 강훈도 사실 그 백골이 수인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동창 예린의 부친상 부고장이 왔다.
사실 강훈과는 연락을 안 한 지 오래됐지만 식통을 통해서 부고소식을 듣게 되었다.
강훈은 식통과 같이 장례식장으로 갔다.
예린은 강훈과 식통을 보자마자 울먹거리며 와 주어 고맙다고 했다.
사실 예린이 자신을 기억하는지도 애매했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식통과 밥을 먹고 있는데 끊임 없이 조문객이 왔다.
“은영아 와 줘서 고맙다 진짜“
멀리서 낯익은 이름이 들렸다. 강훈이 아는 은영은 아닌 듯 했고 어쩌면 재린의 친구라던 그 은영인가 싶었다.
곧이어 은영이라는 그 친구도 밥을 먹으러 왔다.
예린이 은영이 밥 먹는 곳에 같이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소리에 강훈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예린아 내일 아버님 잘 보내드리고. 니도 기운 내고... 오늘 원래 지민이 같이 온다고 했는데 일이 있어서 못 왔다. 대신 말 잘 전해달래.“
“안 그래도 연락 왔더라. 가까운 곳도 아니고 마음만으로도 너무 고맙지... 아 맞다 예전에 들은 건데 지민이 회사 선배 중에 와이프가 우리학교 동창이래. 세상 진짜 좁지 않냐?“
“아 진짜?? 누구?? 지민이 아는 사람인가?“
“아는 사람이면 결혼할 때 연락하지 않았을까? 지민이도 회식하다가 고향 얘기하면서 들었다는데. 그래서 선배가 이름 얘기해줬는데 모르는 사람이었대.“
“와 그래도 대박이다 건너건너지만 뭔가 내적 친밀감 생길 듯? 그 회사 선배는 어디 사람인데?“
식통은 강훈을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야 박지민 얘기 아니가? 와 나 걔 아는데“
강훈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박지민이라는 친구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식통에게서 연락이 왔다.
[강훈이 대박. 나 박지민한테 연락했는데 어제 지 얘기 맞대. 그래서 내가 그 회사선배 얘기도 물어 봄.]
[ㅋㅋㅋ 대박이네. 뭐라던데? 누구라 함?]
[모르는 사람인데 같은 학년 아닐 수도 있대. 그래서 울 학교 뒤에 백골사체 나온 거 아냐고 물어보라 하니까 자기 몰랐다면서 오늘 물어본대.]
강훈은 이 얘기를 재린에게 할 지 고민이 되었다.
그 때 동료 진성이 말했다.
“아 맞다 형님. 그 현대고 백골 사건요 명찰 감식해봤는데, 청운고 명찰 같대요.“
“청운고? 현대고가 아니라?”
“예 그니까요. 그래서 일단은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명찰이 백골이랑 관련 없을 수도 있고. 아무튼 걍 조용히 지나갈까봐요. 너무 뜬금 없잖아요.”
강훈의 머리가 다시 지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