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포산 미스터리 마지막화
어느덧 22년 새해가 되었고, 재린은 3월 이직을 했다.
코로나 시기라 면접을 볼 때마다 코를 찌르며 조마조마했고, 그 때마다 요정충신에게 자신이 얼마나
이직 기회를 간절히 바라는지 하소연하며 빌었다.
재린은 압구정 한 카페 1층 창가자리 테이블에 앉아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재린의 앞에는 수인이 앉아 있었다.
강훈과 추석에 만난 이후 재린은 가끔씩 강훈에게 백골사체에 관련해서 진전된 게 있는지 묻곤 했다.
처음엔 강훈도 알려줄 수 있는 선에서 친절히 말해주었지만 어느 순간 조금씩 이 주제를 불편해하고 귀찮아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은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등학교 동창의 부친상 때문에 장례식을 갔다가 친구네 회사 선배 와이프가 수인인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드문 이름은 아니었으니 재린이 아는 그 수인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다만 은영이 친구에게서 받았다며 보내준 사진은 조금 더 마르고 성숙해졌지만 분명 재린이 아는 수인이었다.
재린은 학창시절 내내 수능을 향해 달리다가 수능이 끝나고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던 것처럼 사고회로가 멈췄다.
백골사체가 수인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고 왜 그 백골이 수인인지 이유를 추적하고 있었는데
멀쩡히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는 수인을 보자 민망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우선 오랜만에 이렇게 우연히 소식을 접한 것도 인연이니 연락처를 받아 얼굴이나 볼까 했는데
막상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 지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런데 며칠 뒤 수인이 먼저 연락이 왔다.
[재린아~ 나 수인언니! 기억 나?]
그렇게 오랜만에 연락을 나누다 약속을 잡고 만나게 된 것이다.
거의 14년 만에 보는 수인은 살이 많이 빠졌고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이었다.
남편과 사내연애를 하다 결혼 후 수인은 퇴사하고 가사만 전담하고 있다고 했다.
남편이 회사 후임에게 들었다며 백골 사체 얘기를 했고 얘기를 타고 타고 전해 듣다가 재린의 소식까지 듣게 되어 연락처를 받았다고 했다.
재린은 그 백골사체가 수인이라는 소문도 있다는 걸 아는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수인은 백골사체에 관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자퇴나 공주얘기도 하지 않았다. 재린에게 특목고 붙었다고 거짓말 했던 것도 말하지 않았다.
수인이 얘기하지 않으니 재린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수인은 그저 자신이 회사를 다닐 때 에피소드나 재린의 남자친구 얘기를 궁금해 하거나 시댁 얘기를 할 뿐이었다.
가끔 가다 중학교 얘기도 나왔지만 재린과 학년도 달랐고 고등학교 이후부터 공통된 분모가 없으니 금방 주제가 바뀌었다.
수인과는 종종 만나자는 겉치레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재린은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우면서 거울에 비치는 창문틀을 바라 봤다.
요정 충신은 여전히 창문틀에 앉아 재린을 나른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공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재린은 그 동안 백골이 수인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동경하던 수인에 대한 당황스러운 감정,
알고 보니 수인이 멀쩡히 살아 있었고 그럼 자신을 동경한 사실은 재린의 망상이었는지, 그 동안의 수인을 따라다닌 소문들은 뭐였는지 확인 받고 싶었던 감정 등이 뒤죽박죽 섞여 답답했다.
수인을 만나기 전에도 만난 후에도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가 않았지만 그저 이 모든 일들을 몰랐던 때로 돌아간다면 쉬운 일이었다.
수인에 대해서 잊어버리기로 했고, 백골사체에 관해서도 더 이상의 추측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자신은 공주니까, 지금까지처럼 잘 살아가겠노라고 생각했다.
강훈은 식통을 통해서 수인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
재린에게 이 얘기를 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 재린이 먼저 연락이 왔다.
수인은 살아 있으며 친구네 회사 선배 와이프라고.
강훈은 안 그래도 자신도 막 그 소식을 접했다고 했고, 백골사체는 신원미상인 상태로 종결될 것 같다고 했다.
재린은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조만간 수인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사실 강훈은 더 이상 수인에 대해 궁금하지 않았다.
그 동안은 백골이 수인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 이것저것 알아봤지만 이미 관련이 없는 걸 알게 되었고
백골 근처에서 나온 명찰도 수인과 관련이 없음을 알게 되었으니.
다만 그 동안 수인에 대해 너무 몰두했다 보니 궁금했던 소문의 진위여부가 찝찝하게 남아 있었다.
재린이 수인과 만난 날, 재린에게 얘기는 잘 했는지, 백골이나 자퇴, 자살소문 등 중 하나라도 얘기한 게 있는지 물어봤지만 재린은 그저 최근 근황 얘기만 실컷 하고 헤어졌다고 할 뿐이었다.
강훈은 뭔가 허무했다.
사건조사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풀던 퍼즐이 마지막에 엎어진 기분이었다.
그래도 별 수 없이 잊어버렸고, 재린과는 다시 SNS
좋아요만 누르는 사이가 되었다.
동료였던 진성은 다른 서로 발령이 났고 진성의 자리는 충원이 되지 않은 상태로 몇 달이 지났다.
시간이 흘러 다시 찾아온 여름, 1년이 지났지만 작년
이맘 때 즈음의 사건을 기억하는 학부모들이 다시금 백골에 대해 민원전화를 걸었다.
강훈은 더 이상 밝혀진 것은 없고 신원미상으로 종결된 사건이라 대응했다.
진성이 다른 부서로 가며 남기고 간 인수인계 자료를 다시 꺼내봤다.
대부분 강훈에게 구두로 전한 내용이라 새로울 건 없었다.
가장 최근 자료까지 읽고 자료를 다시 덮으려다,
다시 펼쳤다.
증거품: 명찰(청운고등학교)
여기까지는 강훈이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명찰이 복원된 사진은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사진은 흐릿하지만 이름까지 적혀 복원되어 있었다.
[이수인]
아마 진성이 발령통보를 받고 추가된 기록이라 미처 강훈에게 복원 내용까지는 전달하지 못 했거나,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 생각해서 이름까지는 말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강훈은 익숙한 이름을 보는 순간 허무했던 기분이 조금은 도파민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수인과는 전혀 무관할 수 있지만 이렇게나 우연히 동명의 명찰이 나왔다는 것은 지금까지 추론한 내용들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강훈은 SNS 재린의 계정을 들어가 메세지 창을 열어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다시금 흥미로운 여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