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N개 회사의 리얼 면접 프로세스와 비하인드 썰
(전 글 Ep 8. 비전공자 유학생의 실리콘밸리 UX 디자이너 취뽀기(1)에 이어서…)
대망의 UX 디자인 인턴 온사이트 인터뷰 날 아침!
제 인생에서 그 정도로 떨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내 생애 첫 디자인 현장 면접인데, 영어로 해야 한다고? 게다가 이렇게 준비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할 말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으면 어쩌지? 질문을 받았는데 못 알아듣는다면?’
‘그들이 나를 보며 “왜 이딴 영어도 못하고 디자인도 못하는 멍텅구리가 왔냐?”라고 하면 어쩌지? 그런데 그 말마저 못 알아듣는다면…?’
제가 긴장을 잘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진짜 청심환까지 먹어야 할 정도인 적은 없었거든요? 근데 이날은 어찌나 떨리는지 오바이트까지 해버렸습니다. 당장 약국에 가서 청심환을 사 먹고 싶었지만, 아, 여기 미국이지…
결국, 계속해서 스스로를 세뇌할 수밖에 없었어요.
‘I own it. I own it. I own it…’
회사 오피스는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중심가에 있었고, 심지어 제가 자주 지나다니던 익숙한 길에 있었어요. Product Designer 4명, Director of Product Design 1명, Head of Product 1명 앞에서 준비해 온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Q&A가 이어졌죠. 너무 다행히도 인턴 면접이기 때문인지 화이트보딩이나 앱 크리틱 같은 추가 인터뷰가 없어, 제가 전혀 준비하지 못한 분야에서 밑천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생각했어요.
‘아, 끝났다. 준비한 건 다 말했고, 질문도 못 알아듣지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은 첫 온사이트 인터뷰였어.’
막판까지 애써 높은 텐션을 유지하며 “Thank you for your time!” 인사를 하고 건물을 나서는 순간, 다리에 힘이 쭉 빠져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어요. 그러고 나니 몸이 심각하게 당 떨어진 신호를 보내서 근처 쇼핑몰에 가서 치즈타르트 3개와 아메리카노를 허겁지겁 들이부었죠.
정신을 차린 후, 노트북을 켜서 리크루터에게 Thank you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을 내줘서 고마웠다는 기본적인 내용 외에도, 인터뷰 중 받았던 질문 중 하나에 대한 추가 답변을 덧붙였어요. 인터뷰가 끝난 후 그 질문에 대해 더 생각해 보니, 이런저런 디자인 솔루션이 떠올랐고, 그것을 이렇게 테스트해보고 싶다는 내용이었죠. 그리고 그 메일을 인터뷰에 참가했던 팀원들에게도 포워딩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 작은 노력에서 간절함이 보였던 걸까요? 저는 바로 그날 오후 디자인 인턴으로 최종 선발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절박함 속에 허덕이고 있던 저는, 제게 주어진 단 하나의 동아줄을 붙잡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3개월의 인턴십.
한국이 아닌 곳에서 정식으로 돈을 벌어본 것도, 한국인이 아닌 동료들과 함께 일해본 것도, 소문으로만 듣던 실리콘밸리의 현장에서 일해본 것도, 그리고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달고 일해본 것도 모두 처음이었기에, 매일매일 바짝 긴장되면서도 마치 구름 위에 동동 떠 있는 듯한 신기한 기분이었어요.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다른 디자인 인턴 친구들과 함께 하나하나 새로운 걸 배워가는 재미가 쏠쏠했고, 제 멘토 디자이너들이 같은 문제에 어떻게 다르게 접근하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마치 실전 게임을 관전하는 것처럼 유익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이론으로만 배웠던 사용자 경험 디자인 프로세스의 모든 단계가 실제 회사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직접 경험하는 건 정말 흥미진진했어요.
인턴십 후 ‘처음 글로벌 환경에서 일해본 소감’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정말 다르면서도 어디나 똑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달랐어요.
저는 직장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직장 문화는 한국에서의 문화와 너무나 달라,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꼬꼬마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니, 오히려 제가 한국에서 배웠던 ‘사회생활’과 반대인 경우가 많아 더욱 혼란스럽기도 했죠. 여기서는 회의 시간에 고개를 끄덕이며 상사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예의 있는 직원이 아니라, 자기 의견이 없는 소극적인 직원으로 비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 늦게 퇴근하는 것이 성실함이 아니라 제시간에 일을 끝내지 못하는 무능력함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런데 또 정말 어디나 똑같았습니다.
적응 기간이 지나고 나니, 일이 힘든 것보다 사람 간의 관계가 가장 힘든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더라고요. 가장 걱정했던 디자인 스킬 자체는 어떻게든 키우고 익숙해질 것 같았지만, 상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다른 팀과의 책임 떠넘기기 줄다리기, 그리고 동료들과 친해지되 여전히 ‘직장’ 동료임을 잊지 않으면서 모든 루머로부터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균형을 찾는 것… 결국 가장 힘든 건 그렇게 사람과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짧았지만 많은 깨달음을 준 3개월의 인턴십은, 두 학기 뒤에 풀타임 직업을 구할 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산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었습니다.
여름 인턴십이 끝난 후, 석사 과정의 세 번째 학기(9~12월)는 한결 평화롭게(?) 보냈어요. 물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로 벼락치기 인턴십 준비를 했던 두 번째 학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요.
세 개의 수업 중 두 개는 'Visual Design Strategy'와 'Automotive UI'였는데, 포트폴리오에 넣을 만한 실전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수업이었어요. 그래서 이 두 과제에 집중했고, 틈틈이 여름 인턴십 때 했던 프로젝트들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하는 작업도 병행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학기(2~5월)가 찾아왔고, 본격적으로 풀타임 UX 디자인 직업을 구할 때가 되었어요. 실리콘밸리에서는 특히 3월부터 채용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저도 3월부터 지원하기 시작했죠.
1년 전, 벼락치기로 인턴십을 구하던 때와 달라진 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이력: 현지 디자인 인턴십 경험이 추가됨.
2. 포트폴리오: 프로젝트 내용과 비주얼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고, 각 프로젝트마다 강조할 부분이 명확해 짐.
3. 지원 방식: 단순 온라인 지원만이 아니라, 리퍼럴(내부 추천)도 적극 활용함.
이 차이점들이 결과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본격적으로 회사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한 것은 4월 중순쯤이었는데, 하루에도 수십 통씩 "Thank you for applying to 00. Unfortunately, we will not proceed~"로 시작되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슬프지도 않더라고요. 그저 저에게 관심을 보인 5%의 회사에 집중할 뿐이었죠. 사실, 이전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국 UX 디자이너 채용 프로세스는 굉장히 길고 단계도 많습니다.
1단계: 지원 (Apply)
2단계: 전화 인터뷰 (Phone Interview)
3단계: 디자인 챌린지 (Design Challenge)
4단계: 온사이트 인터뷰 (Onsite Interview)
(전편 Ep 8. 비전공자 유학생의 실리콘밸리 UX 디자이너 취뽀기(1) 참고)
어차피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죠.
가장 먼저 A사와의 인터뷰가 시작되었어요. 이 회사는 게임 개발자와 플레이어를 연결해 사용자들이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모바일 게임 플랫폼이었죠.
시니어 디자이너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과한 후, 디자인 챌린지 과제를 받았습니다. 과제를 받은 순간부터 4시간 이내에 제출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어요. 그래서 학교나 다른 일에 방해받지 않도록 평일 대신 토요일에 이메일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 시간에 맞춰 프롬프트가 도착했는데, 다음과 같았어요.
주어진 앱의 특정 화면 중 하나를 선택해 회사와 사용자 모두에게 유용한 주요 기능을 추가하라.
(Choose ONE of these screens and create your own major feature that you would feel can improve the product performance for both 00 and users in the selected section of the app.)
3일에서 1주일 정도를 주던 다른 디자인 챌린지에 비해 주어진 시간이 훨씬 짧아서 심리적 압박이 장난 아니었어요. 그래서 시간 분배를 더욱 잘해야 했죠.
과제를 제출한 지 약 2주 후, 온사이트 인터뷰 일정이 잡혔습니다. 일정은 꽤 빡빡했어요.
11:45 am-12:00 pm: 환영 인사 (Welcome!)
12:00 pm-12:45 pm: 과제 발표 (Homework Presentation)
1:00 pm-1:45 pm: 동료 패널 인터뷰 (Peer Panel)
1:45 pm-2:30 pm: 채용 매니저 면접 (Hiring Manager Interview)
2:30 pm-3:00 pm: 문화 적합성 인터뷰 (Culture Fit)
3:00 pm-3:30 pm: 시니어 디자이너 인터뷰 (Senior Design)
3:30 pm-3:45 pm: 마무리 (Wrap Up)
그 후 3주가 지나 다시 두 번째 온사이트 인터뷰가 잡혔습니다. 이번 일정은 좀 더 흥미로웠어요.
11:00 am-11:15 am: 환영 인사 (Welcome!)
11:15 am-11:45 am: 프로덕트 매니저 인터뷰 (Product Interview)
11:45 am-12:15 pm: 문화 적합성 인터뷰 (Culture Fit)
12:15 pm-12:45 pm: 재무 발표 (Finance Presentation)
1:00 pm-1:30 pm: 임원 면접 (Executive Interview, CEO)
1:30 pm-1:45 pm: 마무리 (Wrap Up)
특이했던 점은, 재무 팀의 매니저가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유치할 때 하는 재무 발표를 제 앞에서 진행했다는 거예요. 저는 솔직히 뭔 소린지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인터뷰 내내 제가 발표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에는 누군가가 저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해주니 좋더라고요.^^
두 차례의 온사이트 인터뷰와 CEO 인터뷰까지 진행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 제가 리크루터에게 먼저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며칠 뒤 리크루터가 전화로 더 경력이 많은 디자이너를 채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어요.
거의 두 달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였기에 아쉽긴 했지만, 그다지 큰 정신적 타격은 없었습니다. 그 긴 인터뷰 과정 내내 제가 얼마나 게임 산업에 관심이 없고, 자연스럽게 이 프로덕트 자체에도 흥미가 없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그 흔한 모바일 게임 앱 하나 없을 정도로 게임에 관심이 없으면서 면접에서 게임을 좋아하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그 거짓말이 긴 면접 과정에서도 드러났을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저와는 핏이 잘 맞지 않는 회사였던 것 같아요.
A사의 인터뷰 프로세스가 중간쯤 진행될 무렵, 미국 핀테크 기업 B사의 인터뷰도 시작되었어요.
리크루터와의 인터뷰 후 시니어 디자이너와의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날 바로 디자인 챌린지 과제를 받았습니다. 과제 프롬프트는 다음과 같았어요.
주어진 앱 중 하나를 선택해 유저 플로우를 설계하고, 사용성 테스트를 기반으로 디자인 개선을 제안하라.
(Please build user flows, conduct usability testing, and based on that, provide lo-fi design improvement suggestions on any one of the following apps.)
기한은 일주일로 주어졌습니다.
과제를 제출하고 2주 뒤, 온사이트 인터뷰 일정이 잡혔습니다. 스케줄은 이랬어요:
12:00 pm: 소개 및 대화 (Intro & Initial Conversation)
12:30 pm: 팀과 점심 (Lunch with the Team)
1:00 pm: 대화 계속하기 (Continuing the Conversation)
인터뷰 중 놀라운 일이 있었는데, 1년 전 인턴십을 했던 회사의 오피스 매니저 J를 B사에서 다시 만난 거예요.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에서 오피스 매니저는 사무실 운영, 간식 관리, 행정 지원 등을 담당하죠. J는 제가 인턴으로 일하던 회사를 떠나 B사로 이직한 것이었어요. 세상 참 좁죠!
J는 인터뷰가 끝난 저를 몰래 데리고 나가서 그 회사의 실상을 알려주겠다고 했어요. J의 말에 따르면, 그 회사의 CEO는 남녀 차별주의자에, 인종차별주의자에, 성격도 더럽고, 온갖 악의 군상이라 직원들이 모두 비참해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J도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어요. 생각해 보니 인터뷰 내내 직원들의 표정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았어요. J는 저한테도 합격해도 끝까지 다른 회사도 알아보라고 조언하더군요.
내부 비밀을 공유해 준 J에게 정말 고마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어요.
온사이트 인터뷰를 마친 며칠 후, 그 악명 높은 CEO와의 짧은 추가 전화 인터뷰가 끝났고, 또 며칠 뒤 드디어 Informal Offer가 날아왔습니다. 설렘과 긴장 속에서 연봉, 시작일, 비자 문제 등을 일주일 동안 조율하고 나서, 마침내 공식 오퍼 레터 (Offer Letter)를 받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오퍼 레터! 너무나도 긴 여정을 통해 이뤄낸 해외취업의 꿈!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오퍼 레터를 받아 든 순간, 기대했던 만큼의 기쁨이 밀려오지 않았어요. J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인지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이 남아 있었고, 왠지 또 다른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일주일 뒤 만료되는 오퍼 레터를 받고 사인을 망설이고 있던 그날, 정말 거짓말처럼 C사의 리크루터에게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