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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Jan 30. 2024

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지금이라면 누구라도 될 수 있겠다


데이비드와 해리엇에게 인생의 기본은 행복한 가정이었다. 다복하게, 아이가 많아 북적북적하게. 행복을 위해서라면 주위의 시선 따윈 관계없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살기를 원하지만,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믿었다. 두 사람에겐 “행복 그 자체가 목적”(p29)이었고, 다른 것은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이었다. 심지어 배 아파서 낳은 아이마저도.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주위의 도움과 헌신이 컸다. 여러 개의 방과 무성한 정원을 가진 거대한 빅토리아풍 집은 행복을 위한 완전한 공간이었지만, 젊은 부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집이었다. 부모에게서 경제적 후원과 육아 도움을 받아 그럭저럭 유지했다. 하지만 다섯째는 무리였다. 해리엇은 다섯째를 임신하고 나날이 지쳐갔다. 흐느끼는 날이 이어졌다. 데이비드는 옳지 않은 생각인 줄 알면서도 “눈물과 속상함”은 행복을 깨뜨리는 행동이라고 여겼다. 그런 분위기를 느낀 해리엇은 ”데이비드가 자신을 거부”했다고 느꼈다.(p49)


다섯째는 배 안에서부터 심상치 않았다. 아이는 끊임없이 박차고 격렬하게 움직였다. 해리엇은 고통스러웠고, 아이가 원수처럼 느껴졌다. 해리엇은 진통제를 먹었고, 고통을 잊기 위해 부엌과 거실과 계단을 청소하고 창문을 닦았다. 다섯째 벤은 성나고 난폭한 괴물 같았다. “묵직하고 누르스름한 덩어리 같은 모습”(p69)은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했다. 벤은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사랑과 칭찬을 원하지 않았다. 길들여지지 않았다. 벤의 폭력성과 다름에 가정은 황폐해져 갔다. 벤은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차갑고 노르스름한 초록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 눈에서 벤의 마음을 읽은 사람은 없었다.


벤은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요양시설로 보내졌고, 가족은 물에 불린 종이꽃처럼 피어났다. 해리엇은 견딜 수가 없어서 벤을 떠나보냈는데, 떠나보낸 벤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해리엇은 벤을 데려왔고, 데이비드는 아이를 버렸다는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다. 부부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거리가 생겼다. 해리엇이 보기에 벤은 똑똑하지 않았고 사회성이 떨어졌다. 벤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주위 시선을 느낄 때면 해리엇 자신이 죄인처럼 느껴졌다. 벤은 다루기 어려운 아이일 뿐, 괴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날마다 벤과 씨름하는 해리엇은 미칠 것 같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해리엇에게 벤은 정상인이 아니어야 했다. 거인이나 도깨비처럼 다른 인종이어야 했다. 아무도 해리엇의 판단을 인정하지 않았다.


“저 앤 뭘까? 저 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애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p148) 해리엇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해리엇은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벌을 받는 거야. 잘난 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p158) 데이비드 생각은 달랐다. 벤은 우연히 나타난 유전자일 뿐이었다. 두 사람은 한때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되어갔다.


결혼한 지 20년이 흘렀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떠났고, 벤은 친구들과 어울려 바깥을 떠돌았다. 해리엇은 20년 세월의 흔적이 묻은 식탁에 앉아 과거를 회상한다. 식탁은 원래 정육점 판매대였다. 거칠고 금이 많이 가서 부부는 표면을 깎고 왁스칠을 했다. “그 이후로 수많은 손과 손가락, 소매들, 여름날 벗은 팔들, 아이들의 뺨들, 아장아장 걷던 아이들의 발들”을 거쳤다. 20년 세월이 어루만진 식탁은 비단결처럼 매끈한 표면을 갖게 되었다. 이 표피 아래에는 나무의 망울과 옹이가 깔려 있었다. 식탁에는 작게 패인 자국과 흠집들도 많았다.(p174) 식탁은 가족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파괴자 벤의 울부짖음까지도.


풍경이 하나의 의미로 굳어질 때, 풍경은 자신의 표정을 잃고 변해간다. 벤을 요양시설로 보냈을 때 셋째 아이 제인은 부모에게 물었다. “우리들도 보내실 거예요?”(p104) 행복에 대한 집착은 되려 부메랑이 되어 가정을 무너뜨린다. 행복에 대한 집착 너머에는 인간의 무력감이 숨겨져 있다. 무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 비극은 시작된다. 갓 태어난 아이는 대책 없이 무력하다.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꾸밈없이 웃는다. 그 웃음은 모든 벽을 허물어뜨린다. 해리엇은 식탁에 몰려 앉아 “항상 웃는 얼굴들”을 생각한다. “비판이나 불화를 수용”(p175) 하지 못한 잃어버린 웃음이었다. 해리엇은 지금이라면 어떤 누구라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손때 가득한 식탁처럼. 벤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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