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핵심
사랑하는 장면이 있다.
쓰고 나서 안다. 이 장면이다. 공간만 남은 장면. 행위가 멈춘 장면. 인물이 말하지 않는 장면. 그 안에 압력이 있다. 내가 설계한 것이 아니다. 쓰다 보니 거기 있었다. 그 압력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압력이 아니라 장치였을 것이다.
나는 그런 장면을 사랑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독자가 이것을 알까. 이 압력을. 이 침묵의 무게를. 이 비대칭의 긴장을. 그 생각이 오는 순간 손이 간다. 문장 하나를 더 붙이고 싶어진다. 이 장면이 이런 것이라고. 여기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작가가 인물 앞에 서서 손을 든다. 여기까지다. 이것의 의미는 이렇다.
그것이 설명이다. 독자를 내 감정에 동기화하려는 강요다. 아무리 조용하게 붙여도. 아무리 자연스럽게 흘려도. 설명이 붙는 순간 장면의 동시성이 무너진다. 폭력이면서 동시에 욕망이었던 것이 하나로 고정된다. 살아 움직이던 것이 핀에 꽂힌다.
그런데 가끔 반대가 일어난다.
설명하고 싶어서 손이 가는 것이 아니라. 장면이 나를 앞질러 가버려서 손이 가는 것이다. 내가 설계하기 전에 장면이 먼저 간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깊은 곳으로. 더 빠른 속도로. 그 질주에 눌린다. 내가 만든 장면인데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속도로 가버린다. 그 순간 손이 간다. 멈추게 하려고.
이것도 설명이다. 다른 종류의 설명이다.
사랑해서 손이 가는 설명과 두려워서 손이 가는 설명은 다르다. 전자는 독자를 동기화하려는 욕망이고 후자는 작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망이다. 그런데 결과는 같다. 장면의 속도가 죽는다. 질주하던 것이 멈춘다. 설명은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칼집을 버린 여자를 쓰다가 그런 순간이 왔다.
전시된 여자. 대화방. 헌신에 대한 배신. 그 장면이 거침없이 질주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기 전에 장면이 먼저 갔다. 나는 숨죽였다. 멈추고 싶었다. 설명하고 싶었다. 이건 이런 의미다. 이 배신이 어떤 구조에서 왔는지. 이것이 폭력인지 욕망인지 그 경계에서 작가가 먼저 판정을 내리고 싶었다.
참았다.
참은 것이 옳아서가 아니다. 확신이 있어서도 아니다. 다만 장면이 이미 거기까지 갔기 때문이다. 내가 설명을 붙이는 순간 그 동시성이 사라진다. 폭력이거나 욕망이거나. 둘 중 하나로 고정된다. 그런데 그 장면은 둘 다였다. 동시에. 그것이 그 장면을 살아있게 했다.
그래서 눈을 감고 따라갔다.
작가가 장면을 통제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장면이 충분한 압력을 가지게 되면 작가는 추격자가 된다. 따라가거나 포기하거나. 설명은 추격을 멈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명을 참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장면이 살아있으면 설명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설명이 들어가는 장면은 이미 죽어있는 장면이다. 작가가 설명을 참아서 장면이 사는 것이 아니라 장면이 살아있기 때문에 설명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설명을 참는 훈련을 하는 작가와 장면이 살아있어서 설명이 들어가지 못하는 작가는 다르다. 전자는 방법론이다. 후자는 상태다.
설명하고 싶었던 것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진공이 생긴다. 그 진공이 독자를 끌어들인다. 독자는 거기서 자신의 것을 가져간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해석의 일치가 아니다. 감각의 걸림이다. 걸림이 사라지는 것이 실패다.
미래의 내가 이 장면을 다시 읽을 것이다.
손댄 흔적이 없기를 바란다. 내가 거기서 멈추려 했다는 흔적이. 부끄러운 친절이 없기를. 그냥 장면이 거기 있기를. 질주한 채로. 내가 숨죽인 채로.
아니다. 참는다는 말이 틀렸다.
그것이 내가 따라가는 이유다. 장면이 먼저 가기 때문에. 나는 추격자이기 때문에. 설명은 추격을 멈추는 것이다. 나는 멈추고 싶지 않다. 장면이 어디로 가는지 보고 싶다. 칼집을 버린 여자가 어디까지 가는지. 그 여자의 질주가 어디서 멈추는지.
그것을 알려면 내가 먼저 멈추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