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쓰기의 물리
장면을 잃을까 봐 두렵다.
쓰기 전에 장면이 보인다. 두 사람의 위치. 공간의 배치. 빛의 각도. 그 안에 어떤 긴장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아직 문장이 아니다. 문장이 되기 전에는 불안정하다. 흐려진다. 다른 것으로 바뀐다.
그래서 서둘러 붙잡는다. 행위를 먼저 쓴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했는지. 그 행위가 골격이 된다. 골격이 서면 장면이 증발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습관이 문제를 만든다. 행위를 먼저 쓰는 순간 장면은 진행으로 읽힌다. A가 B를 눕혔다. B가 숨을 삼켰다. 이것은 서사다. 서사가 시작되면 독자는 다음을 기대한다. 진행을 따라가는 독자는 압력을 느끼지 못한다. 흐름을 탄다. 흐름을 타는 것은 미끄러지는 것이다.
나는 흐름을 원하지 않는다. 상태를 원한다.
그런데 행위를 먼저 쓰면 상태가 아니라 진행이 된다. 장면을 잃지 않으려고 행위를 먼저 쓰는데 그 순간 장면은 상태에서 진행으로 바뀐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지된 긴장인데 내 손이 만드는 것은 움직이는 서사다.
그래서 쓰고 나서 고친다.
행위를 먼저 써서 골격을 잡고 그 다음에 진행을 정지시킨다. 시점을 옮긴다. 행위 중심에서 공간 중심으로. A가 B를 눕혔다가 아니라 매트리스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침대 프레임이 벽에 붙어 있었다. 두 사람의 무게가 그 낮은 쪽으로 쏠려 있었다. 겹침은 있다. 하지만 진행은 없다. 상태만 있다.
불안에서 시작해서 조정으로 끝난다.
처음부터 상태로 쓸 수 없다. 행위를 먼저 확보하지 않으면 장면이 흐려진다. 그래서 일단 붙잡는다. 붙잡고 나서 옮긴다. 그 옮김이 진짜 쓰기다.
머릿속 장면은 이미지다. 이미지는 불안정하다.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다른 장면과 섞인다. 문장이 되어야 고정된다. 그래서 서둘러 문장으로 만든다. 급하게 만든 문장은 대개 행위 중심이다. 행위가 가장 빠르게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긴장은 관계에서 온다. 관계는 행위에서 드러난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하는가. 그 행위가 권력의 기울기를 만든다. 권력의 기울기가 긴장이다.
그래서 행위를 먼저 쓴다. 긴장을 먼저 확보하고 싶어서.
그런데 진짜 두려움은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장면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기울기가 불명확해지는 것. 누가 위에 있는지. 누가 선택권을 갖는지. 그것이 흐려지는 순간 나는 장면을 잃었다고 느낀다. 행위를 먼저 쓰는 것은 그 기울기를 빨리 확정하고 싶은 욕망이다.
비효율적인가. 모르겠다.
처음부터 상태로 쓸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할 수 없다. 행위 없이 쓰면 장면이 흐려진다. 흐려진 장면은 밀도가 없다.
그런데 비효율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행위를 먼저 쓰고 나서 공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장면이 달라진다. 처음 의도와 다르게 간다. 행위 중심일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공간 중심이 되면 보인다. 매트리스의 기울기. 벽과 침대 사이의 거리. 빛이 들어오는 각도. 이것들이 새로운 압력을 만든다. 내가 설계하지 않은 압력.
행위를 먼저 쓰는 것은 장면을 통제하려는 욕망이다. 하지만 그 행위를 공간으로 옮기는 것은 통제를 놓는 것이다. 장면이 스스로 드러나게 두는 것.
불안으로 시작했는데 발견으로 끝난다. 그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도 완전히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