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도가 무너지는 순간

I. 핵심

by leehyojoon ARCH

I. 핵심

밀도가 무너지는 순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느껴진다. 가슴이 먼저 안다. 눈으로 읽기 전에. 논리로 따지기 전에. 어딘가가 조여온다.

이 문장이 죽었다. 이 단락이 기울었다. 이 장면의 압력이 새고 있다. 보이지 않는데 느껴진다는 말을 사람들은 비유로 듣는다.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가슴이 조여온다. 실제로 호흡이 달라진다.



밀도가 무너지는 것을 나는 이렇게 안다.



읽히기 시작한다.



술술 읽히는 문장은 대부분 죽은 문장이다.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압력이 없다는 것이다. 압력이 없으면 독자는 미끄러진다.

미끄러지는 독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 그 매끄러움이 무너짐이다.

좋은 글이라고 느끼면서 사실은 이미 빠져나간 상태.



반대도 있다.



읽히지 않는다. 눈이 같은 줄을 두 번 간다.

뭔가 걸렸는데 무엇인지 모른다. 그것이 밀도가 살아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문장이 망가졌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작가의 감각이다.

걸림이 압력인지 오류인지. 그 판단은 논리로 하지 않는다.

가슴이 한다.



조여오면 오류다.

열리면 압력이다.



이것을 설명하면 이미 틀린 것이다.

가슴이 조여온다는 말을 읽는 순간 독자는 그것을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개념이 된 순간 감각이 아니다. 그래서 이 편을 쓰는 것이 위험하다.

밀도가 무너지는 순간에 대해 쓰는 이 문장들이 스스로 밀도를 잃어가고 있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을 알면서 쓴다.



가장 위험한 무너짐은 따로 있다.



보이지 않는 무너짐이다. 가슴도 조여오지 않는다. 읽어도 걸리지 않는다. 오히려 잘 읽힌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손이 비어있다. 잔여가 없다. 그때는 어디서 무너졌는지 찾을 수 없다.

문장 하나가 문제가 아니다.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압력이 빠져나간 것이다.



그 무너짐은 고칠 수 없다.



다시 써야 한다. 부분을 고치는 것으로는 되살릴 수 없다.

같은 내용이라도. 같은 인물이라도. 처음부터 다시.

두 번째는 다르게 간다. 아는 것이 위험하다. 결말을 알면 문장이 그쪽으로 기운다.

기운 문장은 밀도를 잃는다. 모르는 척해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처음 발견하는 것처럼.



그 연기가 진짜 쓰기다.



밀도는 작가가 모를 때 생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 이 문장이 다음에 어떻게 이어질지 모를 때.

그 모름이 긴장을 만들고 긴장이 압력이 된다.

알면 긴장이 없다.

긴장이 없으면 밀도가 없다.



그러니 매번 처음 가는 것처럼 가야 한다.



결말을 알아도. 인물을 알아도. 구조를 알아도.

그 앎을 매번 내려놓고 문장 앞에 서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가. 모르겠다.

어떤 날은 된다. 어떤 날은 안 된다. 안 되는 날 쓴 것은 다시 쓴다.



방법론이 없다. 감각만 있다.



가슴이 조여오는 그 신호만. 보이지 않는데 느껴지는 그것만.

밀도를 감지하지 못하는 글은 읽히고 잊힌다.

독자의 손이 비어있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다.



다른 기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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