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와 칼
오징어게임 시즌3은 시즌2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해서 편의상 시즌을 나누었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이번 편에서 주목할 것은 총격전을 펼치며 오징어게임 세력들과 대결을 주도했던 성기훈만 제외하고 대부분은 목숨을 잃는다는 점이다. 게임참가자들과 함께 게임에 참여했던 프론트맨 오영일은 결국 본색을 드러내며 원점으로 상황을 되돌린다.
오징어게임 진행요원 중 저격수가 된 노을은 과거 경석과의 인연으로 그가 죽을 상황에서 목숨을 살려준다. 그 일은 결국 장기밀매 세력들과의 조우로 이어지고, 노을에 의해 그 조직은 와해 된다. 결국 노을은 경석을 살리기 위해 자기 피까지 수혈하게 되고, 그 노력으로 경석은 게임 탈락자의 운명에서 벗어나게 된다.
<열쇠와 칼>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네 번째 게임이 시작된다. 열쇠와 칼이 상징하는 것은 수비와 공격이다. 수비는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 숨어있고, 칼을 든 사람들은 열쇠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게임이다. 그들이 싸워야 하는 전장은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 찬 인테리어로 인해 더욱 비극미를 고조시킨다.
이 게임에서는 공수의 상징인 칼과 열쇠가 자기의 성향이 다를 경우, 게임 시작 전 바꿀 수 있는 규칙이 있다. 칼은 공격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는 공격 무기로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살인을 해야하는 부담을 감수해야한다. 그런 반면, 열쇠를 가진 사람은 수동적인 위치에서 제대로 된 문만 찾아 공격자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수비만 하면 되기 때문에 게임의 부담이 덜하다. 이런 공수의 전환을 허용한 것은 극의 재미를 강화하기위한 방편으로 활용되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극 중에서 한 때 연인이었던 준희와 명기의 대화를 보면, 그런 공수의 전환이 얼마든지 극적 반전을 위한 장치로 활용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명기는 열쇠를 가지게 되었고, 준희는 칼을 갖게 되었지만 임신부인 준희를 배려해서 명기는 열쇠와 칼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준희는 어떤 식으로든 뱃속의 아이는 지켜낼 것이라면서 이번 게임의 무기인 칼과 열쇠를 바꾸자는 제안을 거부한다. 그러자 명기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꺼낸다.
"그럼 네가 나를 죽여. 게임 시작하면 너 찾아갈테니까 그 칼로 나 찌르고 여기서 나가. 그러면 너와 아이는 살 수 있잖아."
오징어게임의 비극성은 이처럼 죽음을 담보로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임의 규칙으로 인해 더욱 인간을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간은 가장 피해가 최소화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게 되지만 그조차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을 건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설사 게임에서 승리를 했더라도 살인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진정한 승자는 과연 누구인지 의문부호를 남길 수 밖에 없다. 오징어게임의 비극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게임을 통해 결국 소수의 일시적 쾌락을 위한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 게임 참가자들의 목숨이 마치 소모품처럼 소모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 또한 생계를 이유로 자유를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오징어게임처럼 살벌한 현장은 아니지만 현실 또한 그에 못지 않은 전쟁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오징어게임이 다소 극적인 요소를 가진 드라마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결코 과대포장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실제의 삶 또한 그런 비극성과 절박함에서 결코 뒤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