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고영남 감독(1978) / 대한민국

by 정작가


세월이 흐를수록, 세상살이에 찌들어 갈수록 우리는 옛 시절을 그리게 된다. 순수한 동심으로 바라보았던 밤하늘의 별들, 귓가를 스쳐가던 바람 소리, 콧속을 자극하던 꽃향기 등 자연과 함께하던 기억들은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황순원의『 소나기 』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교과서에도 등재될 만큼 우리의 감수성을 한층 높여준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소설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 한 편 있다. 바로 알퐁스 도데의『 별 』이다. 지금에 와서도 이 소설을 쓴 작가의 이름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순수한 사랑을 소재로 한 소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알퐁스 도데의 『 별 』이 목동과 주인 아가씨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다룬 소설이라면, 황순원의 『 소나기 』는 도회지 출신의 소녀와 시골 토박이 소년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다. 이 두 소설의 공통점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주인공이 마치 무채색처럼 드러나지 않는 순수한 사랑을 통해 아름다운 사랑의 가치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는 데 있다.


이런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로 스크린에 담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소나기>는 원작을 그대로 살린 영화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이를테면, 원작에서 세밀하게 묘사되지 않은 학교생활은 순전히 영화적인 상상력에 기초하여 직조된 것이다. 구전설화를 재연한 장면에서는 다소 선정성이 가미된 부분이 있어 순수한 사랑을 모티브로 한 영화라는 의미를 반감시키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대화에 묻어나는 대사를 보면 원작을 충실히 재연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의 백미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다. 충북 영동을 배경으로 찍은 영상은 마치 소설 속의 공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극의 배경이 되는 산 속, 징검다리, 등굣길의 코스모스는 아직도 잔영으로 남아있다.


한 편의 영화가 주는 감동은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영화 <소나기>는 그 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추억, 순수함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세월이 흐르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 있는 아름다운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 <소나기>는 한 편의 영화라는 타이틀을 넘어서 우리의 정서에 내재되어 있는 지난 시절 추억의 원형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원작의 우수성을 토대로 뛰어난 영상미로 재연한 수작이라고 평가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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