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에서 톨스토이의 논조는 미학설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된다. 상류 계급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한 신앙을 상실하고부터 예술에서 얻는 쾌락이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재는 척도가 되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예술의 목적이 미의 표현에 있다는 이론 또한 재고의 여지가 있다는 언급도 있다. 특히 여기서 등장하는 선(善)의 개념은 문맥상으로는 미(美)보다는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선과 미에 대한 우위 논쟁은 인식하는 주체에 따라서 분류될 수 있음을 주지시키기도 한다.
톨스토이는 미학이라는 새로 발명된 학문이 오래전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있었던 것처럼 곡해된 사실을 지적한다. 미학론과 예술론은 일견 비슷한 개념 이론처럼 여겨지지만 톨스토이는 베나르의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후계자들의 미학》이란 저술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며, 그것이 전혀 다른 개념으로 쓰이고 있음을 고찰한다.
세밀히 조사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미학론과 예술론은, 플라톤과 그의 모든 후계자들의 경우에서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서도 완전히 구별되어 있다.
톨스토이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고대의 예술론과 현대의 미학론이 일치되기는커녕 오히려 모순되어 있다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사슬러가 쓴 《비판적 미학사》 내용을 인용하고 반박하며 미에 대한 학문은 단 한 번도 소멸된 적이 없었다는 견해를 펼친다. 톨스토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예술관을 선과 미를 구별하지 못하다는 관점에서 에둘러 지적의 메스를 들이대기도 한다. 18세기 사람들에 의해 고안된 바움가르텐 미학 이론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돌출된 톨스토이의 견해다.
이런 미학 이론의 토대조차도 톨스토이는 비난의 화살을 날린다. ‘현학적인 용의주도함’,‘근거의 취약함’,‘전혀 억지고 설명하는 바가 증명되지 않았음에도’라는 표현을 살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정설처럼 굳어진 진, 선, 미에 대한 개념 인식 또한 ‘완전히 공상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톨스토이는 기술한다. 톨스토이에게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선(善)이다.
선은 우리 생활의 영원한 최고 목적이다 … 선은 근본적 ‧ 형이상학적으로 우리 의식의 본질을 이루는 진정한 관념으로서, …
이 구절을 보면, 톨스토이에게 미(美)의 가치는 선(善)과는 감히 대응할 수도 없는 일천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진(眞)에 대한 관점은 더욱 박하다.
상상으로 조작해 낸 삼위일체의 이 일위(一位)에 대해서는 선과 미와의 일치는 고사하고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조차 매우 어렵다.
다만 진(眞)이 선(善)에 이르는 수단이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선(善)도 아니고, 미(美)도 아니라는 사실에는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이런 인식을 토대로 진선미의 미적 개념을 ‘세 개의 관념을 제멋대로 하나로 뭉쳐 놓은 기초’라고 표현할 만큼 낮은 위치에서 평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톨스토이의 새로운 미학관은 예술이 오직 저급한 쾌락을 위한 예술로 전락했다고 경고하는 관점으로 결론짓는다.
이런 톨스토이의 선(善) 중심의 미술관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진선미의 관점을 해체한다는 측면에서는 혁명적인 시도로 볼 수 있다. 선 중심의 사고관은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보편적인 가치를 취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미(美) 중심의 가치관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자인이 끼치는 영향력만 보더라도 그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는 진(眞) 중심의 미학관이 새로운 미적 판단의 토대를 쌓아야 할 시점인지도 모른다. 인간과 기계의 창작 대결이 새로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는 오히려 과거의 선미(善美) 중심의 미학관보다는 오히려 진선(眞善)의 가치가 부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미학관은 선을 기준으로 미의 가치를 판단하고 진을 이를 위한 보조수단으로 보지만 미적 기준이 뛰어나더라도 그 진위성이 의심받는다면오히려 그 판단은 유보될 수밖에 없다. 얼마전 일본에서 주최한 ‘제42회 사이타마현 사진 살롱’에서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작품 ‘내 머리야!’가 인공지능(AI)으로 제작된 이미지라는 의혹으로 수상이 취소된 것은 이런 가치를 더욱 배가시키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톨스토이의 선-미-진 중심의 미학적 가치관을 현대적 관점에서 진-선-미 중심으로 재전환해야 하는 이유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초기 사회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고로 한 시대에 도그마처럼 통용되던 미학적인 관점조차도 새로운 시대의 조류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