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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롱님 Nov 23. 2020

8살, 코로나 입학생 #37 주4회 등교 한 달의 기록

D+267  2020년 11월 23일


#학교는소중한곳이었다

코로나 19 중에 만난 엄마들은 한결같이 학교가 이렇게 소중한 곳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성적지상주의, 학교폭력, 경쟁구도 속 신경전만 난무하는 곳으로 느껴졌는데... 학교 없이 일 년을 보내보니 교실은 친구를 사귀고, 사회성을 배우고, 또 다른 8살 만의 세상을 만드는 공간이었다.


교육(敎育)이라는 뜻을 다시 찾아봤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인간의 잠재 능력을 일깨워 훌륭한 자질, 원만한 인격을 갖도록 이끌어 주는 . 좁은 뜻으로는, 학교 교육만을 가리키기도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내가 바로 좁은 뜻만 알고 있었던 이다. 이우학교의 철학을 엿보고, 김용택 시인과 윤구병 선생님의 책을 아무리 읽는 ... 지금  아이가 학교 안에 있지 않으니 교육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인생은성적순이아니잖아요

추석 연휴 이후 2월 신천지, 5월 이태원, 8월 교회&집회 발 코로나 대재앙이 다시 올 줄 알았다. 언론이 떠드는 더블 바이러스 공포 속에 우리 아이는 이 가을 동안 학교 문턱을 넘기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교육부는 학생 간 학습 수준 격차가 심각하다는 이슈로 등교 횟수를 늘리겠다 발표했고, 마침 사회적 거리두기도 1단계로 하향했다. 학교에서는 수요일을 제외한 4일간 반 전체 인원이 등교한다는 내용의 알림장을 보냈다. 좋아할 일인가, 싫어할 일인가... 마스크를 쓴 채 기다렸던 일상으로 돌아갔다.


홀수만 갈 때, 남녀 뒷번호만 갈 때... 열명 남짓한 아이들 중에 꽁이는 늘 선생님께 칭찬받는다고 말해왔다. ‘모두 모이면 어찌 될까?’ 드디어 10월 19일 월요일, 이산가족처럼 흩어져 있던 반 전체 학생 23명이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걔 중에 처음 본 친구들도 꽤 있어서 이름 기억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

 

23명이 모이면서 점점 아이들 간 줄 세우기 현상이 심해졌다. 선생님은 더 무서워졌단다. 아이는 하교할 때 유독 점수 얘기를 많이 했다. 오늘 받아쓰기나, 수학 활동지 후 자기는 몇 점 받았는지, 다른 친구들은 어떤지 알려주느라 숨이 찰 지경이었다. 틀리거나 못 푼 문제는 두세 번씩 공책에 써야 해서 다 못한 애들 기다리느라 다른 반 보다 하교 시간이 좀 늦는 거라고 했다.  


수학 시간엔 선생님이 집에서 엄마랑 수학 문제집을 따로 풀라고 하셨단다. 1학년 2학기 문제지 다 푼 친구는 2학년 문제지 풀어도 좋다며... 안경 점수인 100점을 맞은 날은 좋다고 자랑했고, 80점을 맞은 날은 아쉽지만 '뭐 틀려도 그래도 괜찮잖아!' 라며 나에게 얘기했다. 그렇지만 말썽꾸러기들은 오늘도 선생님께 혼났다며 못 말린다고 쯧쯧 한다.


아이 말에 흔들려 2학년 1학기 수학 연산 문제집을 구입하고 이참에 문장제 수학, 사고력 수학도 같이 해보려고 꺼내봤다. 성적으로 줄 세우지 않으려고 했건만 어쩌면 나는 내심 그런 태도를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앞으로 학교라는 사회에서 배우게 될 성적지상주의에 흔들리지 않길 바라면서 잘해나가길 기대하는 모순을 품고 있다. 엄마는 원래 이런건가.


가끔 2020년 1학년 꽁이와 1985년 1학년 내가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그때의 학교와 같은 분위기다. 복도를 뛰었다고 '다시는 복도에서 뛰지 않겠습니다.' 10번씩 쓰고, 문제를 틀리면 교실 뒤에 서있어야 하고, 잘한 친구의 성적이나 작품들을 보여주며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거나, 유독 선생님에게 자주 혼나는 아이가 있는 것도.


교실 속 이야기는 하교 때 아이를 마중 나온 엄마들과의 대화에서 증폭된다. 전지적'내 새끼'시점에서 들은 학교 생활들을 조각조각 맞춰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만든다.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말한 말속에서 빠진 배경, 의도, 결과 등을 알게 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아이에게 다시 어떻게 말할지는 부모의 역량에 달려 있다.


나는 아이에게 다시 되묻지 않는다. 궁금하지만 참는다. 대신 내 얘기를 들려준다. 나의 어린 시절 친구들을 얘기하며 사람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며, 성장 속도와 가진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 판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행히 어린이집에서 다문화가정의 친구와 장애를 지닌 친구들과 함께 4년을 생활해와서 그런지 아이가 느끼고 지키고 싶어 하는 어린이 인권은 꽤나 두텁다. 이럴 땐 참 고맙다.



분명 나는 성인이 된 이후 서울에서도, 경기도에서도 진보 정책의 교육감을 뽑았고, 교육을 포함한 이 사회는 꽤나 변화해왔다. 하지만 30여 년 전 나와 지금의 아이의 초등학교 생활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도 충격을 받았다. 학교라는 보수적인 집단 속에서 잘 어울리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부모가 획일적인 아이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윤구병 선생님은 같음은 배척, 다름은 흡수를 의미한다고 했는데... 아, 부모로만 살고 싶은데, 학부모로 살고 있다. 모든 게 어렵다는 얘기다.



#배려하는OO이가되겠습니다

어느 날, 학교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아이의 입에서 학교폭력이란 단어가 나올 줄이야! 애써 표정과 감정을 내려놓고 상황을 들었다. 화장실을 같이 간 남자 친구 3명 중 A가 B를 발로 다섯 대 때려 C가 선생님께 이른 것이다. 호랑이 선생님의 화는 끝까지 치밀러 올랐다고 했다.


또 하루는 남학생 D가 여학생 E를 좋아한다고 공개 선언했단다. 반 친구 모두가 이를 알게 되었고, 여학생 E 역시 D가 좋은데 당분간 비밀로 하겠다며 꽁이에게 몰래 얘기해줬단다. 그런데 그 말투가 '너 다른 애한테 말하면 죽-여-버린다.'였다고. 꽁이는 이 문장만 빼고 나에게 말했다. (사실을 알고 난 꽤 심란했다.)


최근 옆반 하교가 매우 늦어졌다. 뒤늦게 나온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선생님이 화가 나서 늦게 끝났다고 한다. "선생님이 왜 화가 나셨어?"라고 되물으니, 아이들은 한결같이 "내가 안 그랬는데요."라고 말한다. 차근차근 물어보니, 몇몇 친구가 급식으로 나온 바나나 껍질을 교실 바닥에 버리고 장난을 쳐서 ‘모두’ 혼나느라 늦게 나왔단다. 이제 선생님께서 화나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화가 난 이유로 '난 아니야'를 먼저 말하는 아이들, 비단 이번 상황에서만 나오는 행동이 아니다. 애들끼리 놀다가 다툼이 생겨도 이유를 물어보면 '난 안 그랬어' 먼저 말한다. 이 아이들 모두가 '난 아니야'라고 내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이 상황은 앞으로 10년 후 성인이 되어 사회의 구성이 될 때 기묘한 사회현상을 만들어 낼 것 같은 불길함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에베레스트산 높이만큼 키운 건 바로 부모들이다. 반성한다. 자존감 높은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일꺼다. 왜 친구의 입장에서 이해해봐야 하는지, 엄마나 아빠의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선생님의 화난 마음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이유를 그날 다시 찾았다.

 

선생님이 나 때문에 화가 나신 건 아니지만, 나 아닌 친구 때문에 화가 나시면 그 감정이 오롯이 반 전체 학생에게 전해진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함께 꾸중을 들어야 하는 그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사라진1학년다가오는2학년

불과 한달 전 아이가 자기 전에 울먹이면서 '꽁이의 1학년은 코로나야'라고 화를 냈다. 학교도 못 가고, 친구도 못 사귄 서러움에 얘기한 말이었다. 이제 전체 등교한 지 한 달 되는데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평소였다면 3월에 입학해 4~5월쯤엔 다 겪었을 일인데, 겨울방학을 앞둔 지금 일어나고 있다. 크리스마스 지나면 9살이 되고 2학년이라고 기뻐한다. 이 망할 코로나 19는 아이의 1학년을 모두 빼앗은 걸까? 아님, 새로운 환경 속에서 아이를 성장시킨 걸까?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의 안도감이 끝나고 1.5단계에서 바로 2단계로 격상되었다. 이제야 학교 좀 가나 싶었는데, 어제 오후 속보 기사와 함께 학교들은 발 빠르게 개정된 등교 안내 공문을 보내왔다. '아 다시 주 1회가 되겠구나.' 차라리 몰랐으면, 경험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초등학교 1학년 3반이었나 싶기도 하고, 반쪽짜리 친구들과 모여 남은 반쪽을 얼마나 그리워할까 싶은 마음에 밤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1학년 3반은 꽁이에게 반쪽이 아니라 온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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