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우 김윤후 Jul 18. 2019

스물다섯 번째 생일

스물다섯 번째 생일

 배우의 삶에서 매력적인 부분 하나를 들자면 다양한 배역을 통해 여러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운 좋게 도끼맨배역과 토미 역까지 더해 두 개의 역할을 연기하면서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 즐거움과 더불어 훌륭한 시설의 극장과 많은 관객들, 그리고 동경하는 사람들과 연기를 하는 것은 학창 시절에 상상했던 행복 그 이상이었다. 금전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 덕분에 항상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공연에 임했다. 

  ‘저 많은 사람들 중에 오늘 내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도 있겠지.’

  혜화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관객들을 위해 후회 없는 공연을 해야겠다고 늘 다짐했다. 그날은 더욱더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생일 하루 전날인 10월 29일. 벅찬 마음을 한층 더 설레게 만들어 주는 청명한 가을날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극장으로 올라가자 스태프들이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다음 날이 생일이지만 자기들은 내일 출근이 아니라며 미리 축하를 해주었다. 수줍고 어색한 인사로 감사함을 표하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콜 타임보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몇몇 선배들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선배들도 생일을 축하한다며 조각 케이크를 선물로 주었다. 감사하게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하고 케이크를 대기실 한쪽에 놓아두었다. 스무 살 이후로는 생일에 대해서 큰 감흥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생일이 주는 알 수 없는 기쁨은 숨기기가 어려웠다. 스태프들은 생일은 쉬라고 말렸지만 특별한 날에 특별한 손님을 맞이하는 호텔 벨보이처럼 다른 날보다 더 열심히 관객 맞을 준비를 했다.  

  청소를 끝마치고 합판에 풍선을 달고 있는데 대표님이 오셨다. 

  "내일도 도끼맨이니까 도끼 잘 꽂아라."

  그리고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고급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무대 위에 내려놓고 극장을 나가셨다. 왜 두 잔인지 이해는 안 갔지만 일단 도끼를 던지는 연습을 하면서 한 잔은 마시기로 했다.

  그동안 주로 토미라는 역으로 공연을 해서 도끼맨은 꽤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연기는 자신감이 8할이라고 했던가. 도끼맨을 하면서 자신감이 붙자 토미 역을 맡아서도 신나게 춤추고 연기를 해 왔다. 그래서 풍선을 터뜨리고 도끼를 꽂는 일은 오랜만이어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만족스러운 연습을 마치고 남은 아메리카노 한 잔은 케이크 옆에 놓았다.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이 다른 날보다 더 뜨거운 호응을 해주었다. 덕분에 관객과 배우들은 하나가 되어 즐거운 공연을 만들어 나갔다. 나 역시 관객들의 반응에 힘입어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공연을 했다.  마지막 엔딩곡을 부를 땐 신이 나서 다른 날과 달리 관객들을 일으켜 세우고 점프를 유도하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북돋우었다. 공연이 끝나자 선배들은 이제야 나도 무대에서 놀 줄 알게 되었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근육질의 한 선배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내게 누구의 허락을 받고 그런 짓을 했냐며 화를 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고 그는 나에게 대기실로 올라가 있으라고 소리쳤다. 성격이 조금 괴팍해서 평소에도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웠던 그였다. 

  공연의 흥분을 다 추스르지도 못한 채 대기실에 올라갔다. 그런데 대기실에는 손님이 와있었다. 잘 웃기기로 소문난 개그맨이었다. 그는 표정이 굳어 있는 막내인 나를 가만히 두지 않고 통성명을 하더니 대뜸 개인기를 보여주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과 같이 웃고 있는데 어느새 그 선배가 올라와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면서 나는 웃음을 멈췄지만 날아온 주먹을 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선배의 욕설이 들리면서 갑자기 내 눈 앞으로 별이 번쩍였다. 주먹이 날아올 때마다 나는 신음하면서 별을 보았다. 살면서 처음 보는 별, 이럴 때 진짜 별이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이걸 왜 봐야 하는가 싶었다. 

  ‘젊었을 때는 하고 싶은 거 해야지.’

  그 정신없는 와중에 문득 교수님이 떠올랐다.  전과 서류에 사인을 받고 기뻐하던 나.

  '막내 때는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학교에서 들었던 슈퍼스타들의 성공담. 동트는 새벽에 옥상에서 꿈을 공유했던 동기들과 연락이 뜸해진 호스트 친구. 잘생겨서 떡볶이를 더 주신다는 단골집 이모. 배우인 내가 자랑스럽다던 고등학교 동창들. 가족끼리 케이크 먹어야 하니까 일찍 집에 들어오라던 부모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두 뺨이 감각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입술에서도 뭔가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말리는 사람들을 밀쳐 내고 날아드는 그의 주먹과 발이 내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너무 아팠다. 순간적으로 살기 위해서 반격을 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서 반격을 한다면 배우를 그만 둘 각오를 해야 했다. 

  배우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근처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던 선임 선배들이 대기실로 들어와 그를 멈추게 했다. 선임 선배들 뒤에는 스태프들이 있었다. 아마 그녀들이 데리고 온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엉덩이 밑엔 선물로 받은 케이크가 짓눌려 있었다. 모두가 걱정과 안쓰러움, 연민과 동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임 선배들이 내게 의상을 갈아입고 퇴근을 하라고 했다. 다른 출연진이 고맙게도 내 몫까지 청소를 해주었다. 축축하게 젖은 의상에서 풍겨 나오는 아메리카노 냄새는 나를 더욱 참담하게 했다. 고요함 속에 옷을 갈아입는 그 순간부터 극장 앞을 나가는 순간까지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못했다.

  극장을 나오자 선임 선배 세 명이 입구에 서 있었다. 특히 나를 아끼는 선배가 나를 꼭 껴안고 생일 축하한다며 용돈을 주려고 했다. 나는 고여 있는 눈물을 참으며 괜찮다고 했다. 

  "내일 뵙겠습니다."

  인사를 한 후 그들을 등지고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측은해하는 그들의 시선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엉엉 울게 될 것 같아서 무작정 극장에서 먼 곳으로 걸었다. 

뮤지컬 루나틱2016(배우 전보영, 박삼섭)

배가 고팠다. 편의점에 들어가 삼각김밥을 고르고 계산하는데 아르바이트생이 잔액부족이라고 했다. 부끄럽기보단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운이 좋게 주머니에 천 원짜리 지폐가 한 장 있었다. 

  편의점을 나오자 좀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로니에 공원이 떠올라 찾아갔지만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다행히도 마로니에 공원을 살짝 벗어나자 벤치가 있는 어두운 장소가  있었다. 앉자마자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온 전신이 아프면서 뺨이 쓰리고 터진 입술이 아려왔다. 그 와중에 배가 고파서 삼각김밥을 한입 베어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울면서 먹기 때문에 행여나 사레에 들릴까 평소보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을까. 관객을 일으켜 세우고 마음대로 무대를 휘저었던 것이 후배로서 주제넘은 짓을 한 걸까. 아니면 너무 빨리 좋은 무대에 서게 되어서 기고만장해진 건지도. 연극은 약속이다, 라는 규칙을 어긴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선배에게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앞으로 이런 일을 없게 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는 요즘 내가 해이해진 것 같아 정신 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니 너무 상처 받지 말라면서 내일 보자는 답을 보내왔다.

  '평온한 밤 보내세요.' 

  마지막 문자를 보내고 나니 모든 것이 허탈해졌다. 

  삼각김밥을 반 정도 먹었을까. 앞에 나와 나이가 비슷한 솔로 가수의 콘서트 홍보 차량이 홍보를 끝내고 주차되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씹던 것을 멈췄다. 목구멍에서부터 뜨거운 게 솟구치면서 정수리 끝까지 올라왔다. 호흡을 다듬고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나은 게 뭘까. 아무것도 없었다. 외모, 키, 노래실력, 인지도, 뭐 하나를 비교해 봐도 나은 점이 없었다. 나는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시계를 보니 11시였다. 혜화역으로 가서 교통카드를 찍었더니 잔액부족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놈의 잔액 부족은 왜 이렇게 겹쳐서 나를 괴롭히는지 한탄을 하면서도 근처의 지인에게 돈을 빌리거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혜화역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음악을 틀고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왕십리까지 걸어갔다. 11시 30분쯤 되자 어머니한테서 어디냐는 문자가 왔다. 조금 늦을 거 같다고 답장을 하면서도 너무 죄송했다. 이러려고 배우 한 거 아닌데.

  빨리 오라는 어머니의 문자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온몸이 아파서 걷는 게 힘들었다. 서러워서 배우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파트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면서 거울을 보았다. 입술이 터진 게 걱정이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어머니가 터진 상처를 보며 물었다. 공연을 하다 부딪쳐서 다쳤다고 핑계를 댔지만 내 표정과 기운 없는 모습에 안 믿으시는 눈치였다. 

  자정이 지나고 내 생일이 되었다. 가족들이 준비해준 케이크의 촛불을 끄면서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케이크를 먹는데 어머니가 지금 공연을 하고 있는 극장 이름을 물었다. 내가 대답하자 어머니는 놀라며 그 극장이 내가 어릴 적 자주 갔던 극장이라고 하셨다. 순간 초등학교 저학년 때 그 극장의 어린이 정기회원으로 분기마다 아동극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어린 시절 그곳에서 공연을 보던 내가 성장하여 같은 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생에 숨겨진 최상의 목적, 그 목적이 실현될 수 있도록 만물을 제공한다는 스피노자의 말이 떠오르며 운명을 느꼈다. 식구들은 신기하다며 지금 하고 있는 작품과 인연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내일 그 선배와 또 공연을 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다른 도끼맨 선배에게서 내일 대신 공연을 해줄 테니 쉬라는 연락이 왔지만 할 수 있다고 답장했다. 그 무엇이 와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문자가 와 있었다.  

  - 귀하는......’

  입영연기 불가 통지 문자였다. 



이전 08화 도끼 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