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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 김윤후 Jul 11. 2019

도끼 맨

도끼 맨

  개그맨 선배들과의 공연에서 내가 맡은 배역은 도끼맨이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도끼를 휘두르는 배역은 그때까지 대학로에서는 유일무이했다. 그마저도 지금은 사라져 버린 배역이지만 내게는 추억이 서려 있는 소중한 캐릭터이다. 

  도끼맨은 오프닝 멘트가 끝나고 2분가량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음악이 끝나는 순간 합판에 걸려 있는 풍선을 향해 도끼를 던져서 풍선을 터뜨리는 역할이었다. 풍선을 터뜨리고 합판에 도끼가 꽂힌 후에 멋있게 암전이 되면 그날 공연은 도끼맨으로서 절반은 성공한 공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중간에 랩도 하고 엔딩곡도 불러야 하지만 대사 한 마디 없는 도끼맨은 이름 그대로 도끼를 제대로 꽂는 게 그만큼 중요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적당한 속도로 던지는 기술을 필요로 할 뿐만이 아니라 한번 꽂히면 나무들이 갈라지게 되어서 다시 근처에 꽂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합판을 두 달에 한 번 꼴로 갈아주는 식이어서 공연을 거듭할수록 도끼 꽂기는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차라리 풍선 터뜨리기도 실패하고 도끼를 꽂지 못할 경우는 머리를 쥐어 잡고  '오우 쉣'이라고 외치면 그래도 관객들이 웃었다. 그러나 풍선만 터뜨리고 도끼를 꽂지 않으면 분위기가 오히려 애매해졌다. 그래서 내가 도끼맨으로서 꼭 합판에 붙어있는 풍선을 터뜨리면서 도끼를 꽂아야만 공연을 임팩트 있게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무조건 힘으로만 던지다 보니 풍선만 터뜨리고 도끼가 합판에서 튕겨져 나가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다 보니 앞에서 말한 대로 항상 애매한 분위기에서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공연의 시작을 망쳤다며 선배들에게 혼나는 날이 많아졌다. 

  연기 때문이 아니라 도끼를 잘 꽂지 못해서 혼이 난다는 것은 배우를 꿈꾸는 나에게는 상당히 억울한 일이었다. 그래서 매일 공연 3시간 전에 와서 홀로 연습을 했다. 수백 번 던져도 확률이 30프로를 넘지 못했다. 연습을 하느라 도끼가 많이 부러져서 스태프들은 도끼 값이 감당이 안 된다며 말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공연마다 번번이 실패를 해서 공연이 끝나고 선배들에게 혼이 나는 날들이 반복됐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어느 날 나와 같은 배역인 선배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는 자기 공연에 찾아온 나를 기특하다며 가지고 있는 특별한 비법을 나에게만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동작을 크게 하면서 던질 때 손목에 힘을 주면 더 잘 꽂힐 거라며 시범을 보여 주었다. 정말 도끼를 던질 때마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합판 정중앙에 꽂히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호의에 감사를 표했다. 그날 밤, 선배가 보여준 장면을 떠올리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공연 당일, 오프닝 멘트가 끝나고 나는 다른 날보다 한층 비장한 마음으로 등장했다. 음악이 흐르고 박자에 맞추어 도끼를 들고 춤을 추면서 생각했다.

  '동작을 크게.'

  '손목에 힘을 주어서.'

  절정에 도달한 음악이 끝나면서 내 뒤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퇴장을 했다. 무대의 양쪽 끝에는 두 개의 조명이 비치고 있었다. 한쪽은 풍선이 달린 합판이 있었고 한쪽은 도끼맨이 던져야 하는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도끼맨의 자리로 옮기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선배가 가르쳐준 대로 동작을 크게 하고 손목에 힘을 주어 도끼를 던졌다. 던지는 느낌이 다른 날과 다르게 너무 좋았다. 도끼는 합판 가운데에 있는 풍선을 향해 회전을 하며 날아갔다. 나는 성공을 확신하며 풍선을 바라보았다. 어김없이 풍선은 시원한 소리를 내면서 터지고 곧 도끼가 꽂힐 순간이었다. 


도끼를 꽂지 못하면  그날 밤은 잠을 자지 못했다. (뮤지컬 프리즌2011)

 

똑!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도끼는 아주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손잡이가 부러져서 객석으로 날아갔다. 합판 아래에는 손잡이를 잃은 도끼의 쇠뭉치가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잠시 멍했던 나는 관객들의 웃음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객석 안으로 들어가 손잡이를 받은 후 무대로 돌아와 머리 잡고 '오우쉣'을 외쳤다.

  암전이 되고  관객들은 웃으면서 박수를 쳤지만 배우 대기실로 향하는 나의 마음과 발걸음은 무거웠다. 선배들이 오늘도 도끼를 못 꽂았다고 화를 내진 않을까 눈치가 보였다. 주눅이 잔뜩 든 나는 대기실 구석에서 다음 씬에서 나오는 랩을 조용히 연습했다. 

  "저번 도끼맨이 도끼를 너무 못 꽂아서 네가 들어온 거야."

  선배 중 한 명이 저번 도끼맨이 도끼를 못 꽂아서 잘렸기 때문에 내가 오디션을 통해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죄송합니다."

  그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지만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랩을 하는 장면에서도 입은 랩을 하는데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잡념들이 가득 차 있었다. 대사 한 마디 없어서 연기가 느는 것 같지도 않고 5개월 동안 도끼를 못 꽂으며 혼나기만 했는데 이런 생활을 계속하다가 잘린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차라리 잘리기 전에 내가 먼저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면 대표님에게 그만두고 싶다고 말해야지 마음먹었다. 

  마침 공연이 끝나고 대표님이 공연장에 오셔서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불러 회의를 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 회의를 하던 중 막내 도끼맨이 도끼를 잘 못 꽂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남의 역할을 쉽게 말하는 선배들이 야속했지만 내 편을 들어줄 다른 도끼맨 선배는 공교롭게도 스케줄 때문에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더욱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고 회의가 끝나는 대로 꼭 대표님에게 말씀드려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선배들은 왜 그 쉬운 것을 못 꽂느냐며 저마다 무대로 나와서 도끼를 합판에 던졌다. 그런데 단 한 명도 도끼를 꽂는 이가 없었다. 

  "막내 나와서 도끼 던져봐."

  대표님의 말에 갑자기 극장 분위기는 조용해졌고 눈치 빠른 오퍼는 오프닝곡의 끝 소절을 잽싸게 틀었다. 도끼를 들고 마지막 부분의 춤을 추면서 이제 곧 그만두니 긴장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고 던져야지, 생각했다. 음악이 끝나면서 나는 위치를 잡고 도끼를 던졌다. 도끼는 멋지게 합판 정중앙에 꽂혔다. 선배들은 웬일이냐며 수군거렸지만 나는 태연한 척 도끼를 뽑아 들고 대표를 향해 물었다.

  "다시 해볼까요?"

  대표는 이번에는 음악을 틀지 말고 다시 던져 보라고 했다. 나는 위치로 가서 도끼를 던졌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도끼는 보란 듯이 합판에 꽂혔다. 그렇게 대여섯 번 진행되는 동안 나는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대표님 앞에서 도끼를 꽂는 데 성공했다.

  "잘하네! 회의 끝! 해산!"

  대표님은 그 말과 함께 곧바로 극장을 나갔고 선배들은 대표님 앞에서만 잘 꽂는다고 나를 놀렸다. 선배들은 다시 무대로 나와 저마다 도끼를 던졌지만 여전히 성공하는 이는 없었다. 한 선배가 내게 어떻게 갑자기 잘 꽂게 됐냐며 물었지만 사실 나도 그렇게 잘 꽂게 될 줄은 몰랐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갑자기 잘하게 됐다는 게 나 스스로도 놀라울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어서 부담감 없이 힘을 빼고 던졌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대 위에서 릴랙스를 하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다.

  신이 나서 대기실 정리를 한 후 극장을 나서는데 입구에 대표님이 계셨다.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가려는 나를 그가 불렀다. 이곳에서 개그맨도 아닌 내가 막내로 생활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대사 한 마디 없지만 묵묵히 5개월 동안 열심히 해줘서 고생했다면서 다음 달부터는 도끼맨과 토미 역을 함께 하라고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의 동생 역할이고 대사도 꽤 많아서 연기를 몹시 하고 싶었던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대표님의 뒷모습을 향해 인사를 하고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야기를 부모님께 들려드리니 부모님께서도 나만큼 기뻐하셨다.

  목욕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그만둔다고 했으면 여기에서 끝났겠네, 버티다 보면 기회도 오는구나. '

  내일도 잡초처럼 버텨야지, 다짐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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