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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 김윤후 Jul 02. 2019

슈퍼스타

슈퍼스타

고교시절 동경하던 사람들과 함께 공연하게 된 것은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들이게 무대 위에서의 재치와 여유를 배울 수 있다면 내가 배우로서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내 공연이 없는 날에도 극장으로 가서  공연을 모니터링했다.         

  그들은 공연장 안에서는 물론 공연장을 벗어나서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고민하며 떠올린 아이디어를 공연에 반영하곤 했다. 그러한 노력들이 공연의 퀄리티를 높여주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하루는 홍대 근처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가 식사를 하기 위해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저녁시간이라 손님들이 많아서 식당 안은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영국 배우를 닮은 개그맨 선배가 모습을 드러내자 갑자기 식당 안이 조용해졌다.

  “어머, 연예인들이 오셨네! 티브이에 나오는 분들 맞죠?"    

  서빙을 하는 아줌마가 기본 반찬을 세팅하면서 선배에게 실물이 더 잘생겼다고 칭찬을 했다. 그러자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로 답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도 회의를 계속했다. 잠시 후 다시 식당 안이 시끌벅적해졌다. 그러다가 조용해지고 시끄러워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왜 그런가 싶어 조심스럽게 주변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를 비롯한 후배들이 의견을 낼 때는 시끌벅적하다가도 그가 입을 열면 조용해졌던 것이다. 나는 그때서야 근처 테이블의 손님들이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역시 연예인의 삶은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멋있게 느껴졌다.  부러운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면서도 지금은 비록 무명 배우이지만 언젠가 꼭 성공해서 저 선배처럼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뮤지컬 프리즌(2011)

선후배 간의 규율이 엄격한 개그맨들이었지만 그들은 배우를 꿈꾸는 막내인 나를 무척 아껴주었다. 그중에서도 영국 배우를 닮은 선배는 나를 특히 예뻐했다. 그가 출연했던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제법 잘 흉내 내어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친형처럼 따랐다. 내가 진심으로 그를 존경하고 따르게 된 특별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공연 시작 10분 전. 늘 그랬듯 우리는 마이크 테스트를 한 후 무대에 모여서 파이팅을 외치고 대기실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지정된 시간에 중요한 입금을 해야 되는데 잊고 못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오프닝 멘트를 책임지고 있어서 지금 은행을 갔다 오기에는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150석의 절반이 넘는 관객들이 이미 입장해 있었다. 객석에서 들려오는 관객들의 소리가 우리를 더욱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모두 침묵하며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제가 금방 입금하고 오겠습니다."

  난감한 상황에서 내가 먼저 침묵을 깼다. 그러자 다른 선배들이 그의 오프닝 멘트 후에 바로 내가 도끼를 들고 메인으로 춤을 추어야 하기 때문에 힘들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은행까지 걸어서 15분 정도이기 때문에 뛰어가면 금방 갔다 올 수 있다고 그들을 안심시켰다. 고등학교 때부터 팬이기도 했고 그로부터 공연장 안팎에서 배운 것이 많아 이럴 때라도 힘이 되고 싶었다.    

 입고 있는 의상이 너무 눈에 띄어서 그 위에 티셔츠를 겹쳐 입었다. 그는 미안해하며 종이에 카드 비밀번호와 은행 계좌번호를 적어 주었다. 종이와 카드를 받은 나는 입금해야 되는 금액을 물었다

  "3백만 원이야. 차 조심하고 갔다 와."

  그의 말을 들은 순간 내 머릿속에는 3백만 원이라는 단어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공연의상 바지에 주머니가 없어서 한 손에는 카드를, 한 손에는 종이를 꽉 쥐고 대기실 문 밖을 나섰다.

  '3백만 원이라니...'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나에게 3백만 원은 만져본 적도 없는 큰 금액이었다. 극장을 나서는데 티켓팅을 하기 위에 줄을 서 있는 관객들이 보였다.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카드와 종이를 들고 은행으로 향했다. 

  혹시나 나로 인해 공연이 지연되는 건 아닌지, 그로 인해 관객들이 회사에 항의 전화는 하지 않을까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지만 카드와 종이를 확인하면서 최단거리 길로 은행을 향해 달렸다. 다행히도 은행 ATM 기계에는 사람이 없었다. 흘러내리는 땀이 ATM 모니터에 뚝뚝 떨어졌지만 나는 300이라는 숫자를 되뇌며 카드를 기계에 넣고 종이에 있는 계좌번호로 서둘러 입금을 시켰다. 입금을 마치고 다시 정신없이 극장으로 달렸다.

  '달려라, 내 다리야. 조금만 더 가면 극장이다.'

  다행히도 8분 만에 극장에 도착했다. 대기실로 들어가서 그에게 카드와 영수증을 건네자 그는 춤을 추듯 과장된 동작으로 나를 맞았다. 다른 출연자들도 수고했다며 나를 격려했다. 나도 숨을 고르면서 정시에 공연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의아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너 3백 원 입금했어."

  그는 그러면서 내게 영수증을 내밀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머릿속에 3백밖에 없던 내가 너무 긴장하고 급한 나머지 300만 입력하고 만원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입금을 했던 것이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에게서 카드를 낚아채고 곧바로 다시 뛰어 나갔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봐도 도저히 정시에 다시 극장으로 돌아오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그 순간 내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이를 악물고 달리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아까와 같은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계좌번호가 적힌 종이를 ATM 기계 위에 놓고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종이가 그대로 있길 간절히 바라면서 더욱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차라리 가만히 있을 걸 왜 내가 그랬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대학로 메인 거리를 거닐고 있는 다정한 연인들과 다른 공연을 보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는 대비 되게 너무 행복해 보였다. 문득 이번 일에 대한 책임으로 잘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달리면서 낙산공원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공연을 하게 된 순간까지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차라리 아르바이트나 계속할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간쯤 갔을 무렵, 정면에서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배우 친구가 웃으면서 손은 흔들며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졸업 후에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고 풍문으로만 들었던 친구라 그동안 나도 만나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야, 꺼져! 꺼져!!!"

  내 소리에 친구가 놀란 토끼눈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친구도 나처럼 막내 포지션에서 고생을 하고 있을 시기라는 걸 알지만 내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친구를 지나쳐서 다시 은행에 도착했다. 계좌번호가 적힌 종이는 그대로 있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4개의 ATM 모두 사람들이 사용을 하고 있었다. 3분 정도 후에야 자리가 났고 나는 이번엔 정확히 300을 누르고 만원 버튼을 누른 후에 입금을 했다.

  다시 극장으로 돌아왔을 땐 공연이 시작되고 10분쯤 지나서였다. 무대에선 그가 오프닝 멘트를 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30초면 끝날 오프닝 멘트였지만 그는 단독 콘서트처럼 개인기를 뽐내며 내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개그를 보며 관객들은 즐거워했고 다른 날보다 객석의 분위기는 훨씬 업 되어 있었다. 그를 바라보며 내가 어릴 적부터 이 사람의 팬이 된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 어떤 아이돌보다 이 사람이 내겐 슈퍼스타였다. 나는 하수(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고 오른쪽)에서 손짓 발짓을 하며 내가 왔음을 알렸고 그는 관객들의 갈채 박수를 받으며 퇴장했다. 퇴장하면서 그는 내게 수고했다는 말을 속삭이며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관객들의 분위기가 좋아서였을까. 그들의 힘을 받은 나의 도끼 춤은 그날따라 동작이 부드러웠고 유난히도 빛나는 내 도끼는 풍선을 단번에 터뜨리며 합판 가운데에 꽂혔다. 

  공연이 끝나자 친구 생각이 났다. 나는 아까의 일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을 하고 미안하다는 연락을 하기 위해 글을 몇 번이나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때

  ‘고생이 많다'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도 공연을 끝내고 내게 문자를 보낸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극장을 나온 후 지하철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집 앞에 내릴 때에야 겨우 답장을 할 수 있었다.

  '성공하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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