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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 김윤후 Jul 25. 2019

울지 마

울지 마

 시간이 흘러 군 입대 날짜는 다가오고 나의 마지막 공연도 끝나게 되었다. 지난 1년간의  시간들이 내겐 정말 소중하고 돈 주고도 못 살 값진 경험이었다. 공연팀이 나의 군 입대 쫑파티를 마련해 주었다. 놀랍게도 그 자리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콤비 개그맨 선배님 중 한 분이 오셔서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나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훌륭한 뮤지컬 배우입니다 "

  그는 내 눈빛이 살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눈빛을 잃지 말라며 포기하지 않는다면 장차 훌륭한 배우가 될 거라고 말했다. 같이 공연했던 선배들과 스태프들도 내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무사히 마치길 기원해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나는 26살의 늦은 나이에 군 복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군 복무 중에도 나와 함께 공연했던 사람들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 국영방송에서 하는 개그 프로그램과 종편 방송국에서 하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그들이 맹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그방송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전우들을 보며 내심 그들과 함께 공연했던 시간들이 자랑스러웠고 뿌듯했다. 반갑고 흐뭇한 마음으로 방송을 보고 침상에 누워 잠이 들 때마다 나는 제대 후의 미래를 그리며 꿈을 키워 나갔다.


군입대 전 쫑파티 때 적은 낙서들 (2012년 초의 어느 실내 포장마차에서)

 나 없이는 안 될 것 같던 세상은 너무나도 잘 돌아갔다. 더디게만 느껴졌던 국방부의 시계도 쉬지 않고 흘러 어느덧 2년이 지났다. 군 복무를 마친 나는 다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오디션을 볼 때마다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느냐는 말을 들었다. 병장 때 열심히 관리를 했지만 짧은 머리와 그을린 피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운이 좋게 오디션에 합격하여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게 되었다. 

  혜화역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극장이었다. 제대 후 첫 작품이기에 기대 반 우려반 속에서 열심히 연습에 참여하였다. 같은 작품에 출연할 동료들은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었음에도 군인 티를 벗지 못한 나를 잘 챙겨 주었다. 저마다 개성이 강했지만 밝은 성격의 소유자들이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연출은 배우 출신 작가로 배우 경력보다 작가와 연출의 경력이 긴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강조했다. 본인은 연기를 못해서 작가와 연출로 빠진 거라는 말과 함께.

  작품의 내용은 방송국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남자 PD와 인기 여자 아나운서의 사랑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였다. 나는 운이 좋게 남자 PD 역을 맡게 되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국장과도 한 판을 불사하는 스타일의 PD였는데 28세의 나에게는 조금 버거운 역할이었다. 다른 후배 배우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주인공의 과거의 연인이자 스폰을 잡아 성공한 인기 여자 아나운서, 그녀로 인해 밀려난 여자 아나운서, 권력 휘두르기를 즐기는 방송국 국장, 기회주의자 선배 PD, 고아 출신 편의점 여자 아르바이트생과 그녀의 친모 등등 20대 중반의 나이로 감당하기 어려운 배역들이었다. 그래서 연습을 하는 동안 연기가 마음에 안 든다며 연출에게 혼이 많이 났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서로 힘을 합쳐서 열심히 연습을 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연출이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답답하다며 같이 술 한 잔 하자고 제안했다. 연습이 끝나고 우리는 근처에 있는 작은 치킨집으로 모였다. 파란색 플라스틱으로 된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배우들은 그간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연출은 자신과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부터 유명 공모전에서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가 안타깝게 떨어진 비운의 작품이라는 사실까지 털어놓았다.

뮤지컬 한 여름밤의 꿈 (2011년)

 우리가 괜찮은 반응을 보이자 그는 평소와 달리 여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함께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한 유명한 배우 이야기부터 자신의 와이프가 배우이며 아들이 사립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 등등. 그러나 내용이 점점 지루해지면서 배우들이 시계를 보는 빈도수가 잦아졌다. 나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연출에게 연기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연기 철학을 신나게 떠벌였다.

  "요구하시는 연기가 너무 옛날 스타일이에요. 요즘 누가 그렇게 연기해요? 영화 안 보세요?"

  연출이 일장 연설을 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남자 후배 한 명이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축구 중계 소리가 명확하게 들릴 만큼 치킨집 안이 고요해졌다. 그 짧은 순간에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해보라는 후배들의 눈빛을 읽었다. 나는 웃으며 옆에 있는 친구가 집안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연출에게 말했다. 내 말에 이어 후배들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한 마디씩 보탰다. 다행히 연출도 엎드려 자는 친구를 보며 술이 약한 것 같다는 말을 할 뿐 화를 내지는 않았다. 잠시 후 회식자리가 마무리되었다. 연출이 계산할 듯이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결국은 N분의 일로 각자 계산을 하였다.  

  취해서 실언을 한 후배와 비슷한 방향이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습에 참여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더 큰 걱정은 부모님이 배우 일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 거라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에게 울지 말라고 했다. 나이만 두 살 위일 뿐 갓 제대한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울지 말고 힘내자는 것밖에는 없었다. 연습을 할 때는 밝은 모습이어서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아침 열 시부터 밤 열 시까지 가족보다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의외로 서로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싶기도 했다. 

  그로부터 한 달가량 지나는 동안 배우들도 연출과 좀 더 가까워지고 그가 원하는 연기가 무엇인지도 대략 파악하게 되었다. 다들 무대 위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그런데 공연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연출이 갑자기 할 말이 있다며 배우들을 불러 모았다.

  “안타깝지만 우리 공연은 취소하기로 했다.” 

  우리는 귀를 의심했다. 공연이 취소되다니. 그래서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연출은 담담한 표정으로 우리 작품에 대한 투자가 취소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연습하던 연출 소유의 극장은 다른 사람에게 대관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해오던 아르바이트도 중단한 채 연습비 한 푼 받지 못하고 열정을 쏟아 부운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연출은 어쩔 수 없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던지고는 극장을 나갔다. 

  절망감에 빠진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가장 연장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고심 끝에 연출을 설득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끝낼 순 없었다.

뮤지컬 미추홀에서 온 남자(2015년)


수소문을 해서 연출이 살고 있는 곳이 청량리역 근처에 있는 아파트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실의에 빠져 있는 후배 배우들에게 모두 다 같이 찾아가서 연출을 설득해보자고 했다. 내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였지만 두 명의 배우는 해봤자 안될 것이라며 그만두겠다고 했다. 붙잡고 싶었지만 그들의 선택이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다 함께 혜화역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두 후배 배우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한 달 반을 함께 보낸 그들을 그렇게 보내는 것이 슬펐지만 나에겐 나머지 배우들도 중요했다. 그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도. 

  연출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나는 연출에게 집 앞에 있는 놀이터에 배우들이 와 있으니 잠시 나와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벤치에 앉은 배우들은 이따금 부모님들에게 몇 시에 들어가는지 연락을 하는 것 외에는 모두 조용히 연출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0분 정도 지나서야 연출이 놀이터에 나타났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그를 설득했다. 모두들 그동안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이 허무하게 소멸되는 게 싫었다. 돈을 받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연출은 아무리 우리가 집 앞까지 찾아와서 얘기해도 정해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극장은 연출님 거잖아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나는 격앙된 어조로 그에게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연출은 극장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나머지 투자비용은 직접 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우리의 간절한 애원을 뿌리치고 매정하게 돌아섰다. 이것도 경험이라는 말과 함께.

  연출이 사라진 후에도 나는 그에게 생각을 바꿀 때까지 계속 기다리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내 앞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몇 명의 여자배우들과 화를 내며 연출 욕을 하고 있는 남자 배우들. 분노와 절망에 휩싸인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동안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졸업을 하고 처음 대학로 무대에 서게 됐다며 즐거워하던 친구, 피아노가 전공이지만 연기를 하고 싶었다는 친구, 경력이 아동극밖에 없어서 성인 무대에 서보고 싶다던 친구, 핸드폰을 팔다가 배우를 꿈꾸게 된 친구... 각자 꿈을 가지고 모였던 그들이 내 앞에서 절망하고 있었다.

  나보다 어린 그 친구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경력 두세 줄의 배우인 자신의 무력감만 절감하게 될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 겨우 입을 열어 울고 있는 여자 배우들에게 울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열심히 경력을 쌓아서 더 훌륭한 배우가 되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될 거라고 위로했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오늘을 잊지 말자고. 

  울고 있는 후배들 중 한 명이 내게 물었다.

  “도대체 경력은 어떻게 쌓는 거예요? 뽑아 주지를 않는데 어떻게 경력을 쌓아요?”

  아무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조차 당장 내일부터는 오디션 원서를 넣고 서류합격 여부부터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까.

  우리가 시끄러웠는지 경비아저씨가 나타나 놀이터에서 나가라고 했다. 나는 간곡하게 10분만 있다가 떠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그는 그 후에도 계속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면서 돌아갔다. 

  나는 그들을 달래서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결국 우리는 아무런 소득 없이 아파트를 나섰다. 여자 후배들은 부모님이 찾아와 차를 타고 귀가했다. 남은 사람들은 백화점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아직 많은 버스가 운행 중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늦은 시각이어서 자동차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적막 속에서 남자 배우 중 한 명이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자 나를 제외한 모든 후배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문득 군 입대 전 혼자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때를 떠올렸다. 그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면 따뜻한 위로라도 해 주고 싶었다

  "울지 마."

  과거 선배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 한 명 한 명을 안아 주었다. 오늘을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열심히 해서 경력을 많이 쌓고 훌륭한 배우가 되자고 하면서. 

  모두들 자기의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가 오자 조만간 꼭 보자는 약속을 하며 버스에 올랐다.

  “포기하지 말자!”

  버스를 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 진심으로 다시 만나길 빌면서. 

  마지막으로 술 마시고 연출에게 실수를 했던 후배 배우와 둘만 남아 버스를 기다렸다. 그는 아버지가 노래방을 운영하셔서 오디션 준비를 하려면 그곳에서 해도 된다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음 작품 회식 때는 술 먹고 실수하지 말라는 조언을 하고 먼저 버스에 올랐다. 홀로 남아 손은 흔들며 내게 인사하는 그를 보는 게 마음이 아팠다.

  버스 제일 뒷좌석 구석에 앉았다. 한 달 반 동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연습했던 시간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가면서 이제야 눈물이 났다. 나도 정말 슬펐다. 제대를 하고 어렵게 붙은 오디션이기에 정말 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같이 고생했던 그들의 힘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밖의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류장 앞의 다른 가게들은 불이 꺼져 있었지만 그 가게만 유난히 밝은 빛을 내며 영업 중이었다. 찐빵과 만두를 파는 집 같았다. 주인은 새로 만든 찐빵을 진열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에도 장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는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지 마'

  집으로 가면서 나 자신에게 말했다. 나만 힘들게 사는 게 아니니까. 열심히 해서 경력을 쌓고 좋은 배우가 돼야지 다짐했다. 

  '언젠가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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