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무언가 걸렸습니다.

하자 6 - 절제

by 하자윤


매핵기 : 담(痰)의 기운이 몰려서 목구멍을 막았기 때문에 뱉아도 나오지 않고 삼켜도 넘어가지 않는 것

(『동의보감(東醫寶鑑)』내경편)



아, 불편합니다.

하루 종일 깊은 한숨이 나오고 목에 무언가 걸린 듯 이물감이 심합니다.

요 근래 매일 아침 챙겨 먹던 올리브 오일과 레몬즙 조합이 혹시나 역류성 식도염을 만든 것은 아닌가 싶어 그것부터 당장 끊었습니다.

목 주변 근육 때문에 그런 증세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어쩐지 왼쪽 승모근이 영 불편한 것 같기도 해서 근처 정형외과를 찾았습니다.

전문가라도 되는 양 인터넷에서 주워섬긴 나름의 원인을 읊어대는 나에게 대뜸 의사가

“아, 그거 잘 안 낫는데. 정신과 가야됩니더.”

흠, 인정할 수 없군요.


문을 나서 이비인후과에 갔습니다.

이번에는 얌전히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어 검사를 받았습니다.

“후두염 증세가 약간 있네요. 약 잘 드시고 다음에 한번 더 와 보세요.”

혹시나 하는 우려에 갑상선 수치 검사까지 하고 돌아 나오는 길, 문득 궁금했습니다.

“선생님, 죄송한데 정형외과 약을 먼저 먹어야 할까요, 이비인후과 약을 먼저 먹어야 할까요?”

아, 죄송할 것도 많지. 이 와중에도 일하던 시절 손님들 눈치 보며 몸에 밴 쿠션어가 튀어나옵니다.

가벼운 목 디스크 증세와 역시 경미한 후두염이 콜라보레이션을 했다고 믿고 싶었지만 처방받은 약이 소진된 후에도 불편함은 사라지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성격 유형 검사를 해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결과는 역시 내 짐작과 같았습니다.

아주 낙천적이고 충동적이며 낮은 완벽주의적 성향.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하나도 없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이 작은 열매는 내 목에 콕 박혀 빠져나갈 생각이 없는 것일까요.

하긴, 알면 진즉 시원하게 숨이 잘 쉬어졌겠지요.


가만히 앉아 마음의 어디에 구멍이 났는지 천천히 더듬어 보았습니다.

얼마 전, 남편과의 부부싸움이 생각났습니다.

남편은 잔소리가 많은 편이고 나는 거슬리는 것이 있어도 늘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상황을 생각하며 다시 검사 결과지를 들여다보자 최고점 가까이에 가 있는 '절제'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낙천적이고 충동적이며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허술한 사람이 절제를 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을 참고 사니까 하고 싶은 말도 누르고 그러다 보니 가슴 한켠이 막혔나 싶었습니다.


지난주, 시누이와 목걸이 원정대를 꾸려 백화점으로 놀러 갔습니다.

남들이 조금 이상하게도 생각하는 이 관계는 사실 알고 보면 꼭 필요한 사이입니다.

대문자 F인 내가 대문자 T인 시누이에게 감정이 덜 섞인 조언도 들을 수 있고, 어디 가서 절대 못하는 남편 욕을 해도 되니까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 해도, 내 팔도 결국 남편인걸요.)

목걸이 원정대답게 걸어보는 목걸이마다 예쁘다며 사진을 찍어주었고 매장을 나와서는 쇼핑 메이트의 본분, 냉철한 판단도 잊지 않고 해 주었습니다.


그거 홧병이다!

아이쇼핑의 끝에 걱정할까 조심스레 털어놓은 나의 증상에 격하게 알은체해 주며 시누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오빠한테 시집와서 고생이 많네. 당장 목걸이 사러 가자! 금융 치료해야지!” 순간이지만 목 안에 열매가 쑥 빠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라?)


유서 깊은 이 병의 진짜 처방법은 아마 이것 아닐까요. ‘참으면 병 되고, 지르면 낫는다.’

내 마음의 해방을 위해 일단 카드 명세서의 절제부터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고상한 절제보다는 시원한 플렉스가 필요했나 봅니다.

벌써 나도 40대인데, 참지 말고 이젠 좀 터트려도 되지 않을까요?


쇼핑백에 작고 반짝이는 줄을 들고 매장을 나옵니다. 왠지 굉장히 큰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아, 순간 숨이 막히는 것도 잊었네요.

와, 역시 이거였군요.






< 나만의 NO 절제규칙 >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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