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7 - 무지(無知)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건고사리가 나왔습니다. 시장에서 보던 오동통하고 탱글하게 잘 불어있던 자태는 간데없고, 비쩍 마르고 잔뜩 움츠린 것들을 설 명절을 앞둔 우리 집으로 옮겨왔습니다.
물에 불리는 건 알겠고...... 얼마나 불리고 어떻게 삶아야 하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챗지피티에게 길을 물어봅니다.
건고사리 불리는 법을 알려줘.
몇 초 지나지 않아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건고사리의 향후 행보가 촤르르 펼쳐집니다.
찬물에 8~12시간.
끓는 물에 20~30분.
불 끄고 그대로 1~2시간.
손으로 찢었을 때 쉽게 찢어지면 성공.
오케이. 일단 시키는 대로 해봅니다.
물에 담가 하룻밤 불리고 물도 중간에 갈아주고, 어느 정도 불은 고사리를 냄비에 담아 정확히 25분 삶아주고 (20분에서 30분 끓이라기에), 불 끄고 그대로 식혀줬습니다.
결과는,
나 - 오 마이 갓. 완전 죽됐어ㅠㅠㅠㅠ
지피티 - 아이고. 완전 죽됐다면 너무 오래 삶았거나 불 끄고 오래 둬서 흐물해진 것 같아요.
나 - 하하하ㅠ 볶는데 너무 걸쭉해. 진짜 죽 같아. (발음 조심!)
지피티 - 아ㅋㅋ 볶는데 죽이면... 그건 이미 고사리 나물이 아니라 고사리 페이스트 단계예요.(놀리냐??!!!!)
전화기를 들고 엄마에게 SOS를 날립니다.
엄마 - 어쩔 수 없지. 다음부터는 안 불리고 그냥 푹 삶아도 된다. 적당히 감을 보면서 해야지.
맞아요. 챗지피티는 정보제공을 해 줄지언정 ‘감’을 알려주진 않지요. 그저 입력된 값대로만 하면 성공하겠지 믿었던 제가 참 무지했습니다.
역시 경험에서 오는 지식은 챗지피티를 넘어서네요.
이미 망쳐버린 고사리는 뒤로하고 다른 음식들에 힘을 더해 봅니다.
동그랑땡은 백종원의 지식을 가져오고, 수육은 성시경의 맛을 빌려옵니다.
내가 좀 무지(無知)해도 되는 무지 좋은 세상입니다.
새해 아침, 상을 받으신 시아버지의 칭찬이 이어집니다.
아버님 - 다 맛있다. 특히 문어가 진짜 맛있네.
나 - 호호호. 감사합니다. 아버님^^
아, 문어는 샀습니다.
쉿.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