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투어 2 : 우당탕탕 오키나와

하자 9 - 즉흥

by 하자윤


1편과 이어집니다.

09화 하자 투어 1 : 여행의 서막


사실 바가지는 수하물 부칠 때부터 줄줄 새고 있었습니다.


체크인 카운터 옆줄에 웬 양복 군단의 줄이 깁니다. 그 옆에 대포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몰려와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이댑니다. 김해공항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라 ‘누구지? 유명한 사람들인가?’ 하며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옆엔 파란색 짐가방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거기엔 SL이라는 이니셜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그들은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떠나던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이었다는 사실을요. 아, 그때 누구 한 명이라도 알아봤다면! 아는 척이라도 하고 사인 한 장 받아둘걸! 은행 근무 시절, 사직운동장 지점에서 스프링캠프 떠나는 롯데 선수들 환전 꽤나 해줬던 저였건만 야구 지식은 야속하게도 2010년대에서 멈춰 있었습니다.(아니 그래도 삼성라이온즈를 몰라봐??) 사장의 감각이 이토록 무디니, 이 여행의 앞날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셈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자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시누이가 야심 차게 준비했다던 맛집 리스트는 한국땅에 낙오되었고, 사진에서는 그렇게 맑을 수 없던 하늘은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먹구름을 안은 채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겨우 렌터카를 찾아 어색한 반대 운전석 핸들을 부여잡고 빗길을 달려왔건만, 10명이나 묵을 수 있다며 대용량을 자랑하던 우리 숙소에 허용된 주차 공간은 단 한 칸뿐이었습니다. 안내받은 공용 주차장은 걸어서 15분 거리. 아니, 이게 맞아? 황당해하고 있을 때 숙소 앞에서 비상등을 켠 소형 버스가 멈춰 섭니다. 말소리를 들어보니 한국인입니다. 그분들도 같은 숙소 투숙객이었는데, 두 대 주차가 가능한 다른 방을 예약하신 팀이었습니다. 버스를 대절해서 온 덕분에 주차 공간이 고스란히 남는 상황. 재빠르게 상황을 스캔하고 짱구를 굴립니다.

"저기, 혹시 저희가 실례가 안 된다면..."

셀프 체크인 기계 앞에서 헤매던 그분들께 먼저 헤맨 경력직 구원 투수로 등판해 체크인을 도와드리고 주차 자리 양해를 구하니 흔쾌히 그러라고 해주셨습니다. 숙소 예약 실컷 해놓고 원망 들을 뻔했는데 정말 다행인 순간이었습니다. 아, 여행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요 정말.


시누이가 한국 땅에 놓고 온 먹지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랜덤으로 들어간 식당들은 의외로 모두 성공적이었고(누가 오키나와 음식 맛없다고 했나요?!) 우연히 들른 마트 식품 코너에서 산 생선회는 갓 잡아 올린 듯 싱싱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 최고의 히트는 단연 샤브샤브였습니다. 무한 리필되는 고기 퀄리티가 어찌나 훌륭한지, 우리 네 식구(어른 둘, 아이 둘)는 홀린 듯 젓가락을 움직였고, 무려 36판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귀국 후 학교에 제출한 교외체험학습 결과보고서에 아들은 “일본인이 소식가여서 그런지, 우리 가족이 돼지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고기를 36판이나 먹었다.”라고 써서 글로벌 돼지 가족 인증을 해버렸습니다. (이 눔 자식)


3박 4일 내내 흐리고 춥던 바다는 돌아가는 날에서야 쨍하게 제 색을 내주었습니다. 거창하게 계획이라고 세워왔던 것들은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 나름 엄청나게 재미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우연히 만난 검술 하는 아저씨, 편의점에서 아무거나 집었는데도 맛있었던 오니기리,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던 고래 상어의 자태, 류큐무라에서 만난 옛 류큐 왕국의 경쾌한 노래, 모두 다 쓸어오겠다는 마음으로 쇼핑카트를 가득 채운 돈키호테까지. J(계획형)들이 본다면 기절 초풍할 즉흥으로 가득 찬 여행이었지만 원래 인생은 예상치 못한 '하자'가 생길 때 더 재미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드디어 비행기가 한국 땅으로 바퀴를 내리네요. 아쉽지만 이번 하자 투어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렇게 하자 투어는 폐업을...... 하려고 하는데 상품평이 도착하였네요.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하자투어 이용 후기★

남편 - 다시는 렌터카 타고 여행 안 하고 싶네요. (특히 반대방향 운전 X) 저는 휴양지를 선호합니다! 참고하시길...... 샤브샤브와 오키나와 소바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딸 - 고래상어 티셔츠 넘 예뻐요. 애니 굿즈 파는 곳 강추!

아들 - 샤브샤브 또 먹고 싶다......

시누이 - 그래서, 다음 여행은 또 어디로 갈까?


흠...... 상품평을 보니 폐업은 좀 더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사장은 허술하고 서툴지만, 하자가 생길 때마다 더 즐거워해 줄 준비가 된 분들이 계시니까요. 즉흥적 폐업 번복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하하하. 또 언젠가 계획 없이 떠날 여행을 기다리며. 이상, 하자가 있어 더 완벽했던 여러분의 하자 투어였습니다.




아들아...... 아니, 고객님......ㅋㅋㅋ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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