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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Sep 01. 2024

불금 이벤트

삘래와 대청소



 매주 금요일은 대청소를 한다. 아침 화장실 정리를 마치고 나오면 새로 부임한 가정부인 척 냥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곤 다용도실로 가 세탁기 앞에 조구려 앉아 빨래의 먼지를 턴다. 먼지의 80프로는 고양이털이다. 그렇게 속옷이며 양말을 분류하고 있으면 룽지가 바구니를 접수한다. 냥빨의 충동을 느끼지만 녀석의 앞다리를 잡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수건과 겉옷을 나누어 두 차례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가 다되면 아이들의 경호를 받으며 베란다로 간다. 커튼 뒤에 숨어있는 꾸리를 보고도 못 본 척 일주일치 빨래를 꾸역꾸역 넌다.



점심을 먹고 나면 집안 곳곳을 청소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둠칫둠칫 그루브에 몸을 맡기며 여기저기를 닦아낸다. 싱크대, 가스레인지, 식탁, 냉장고… 지지 않은 얼룩이나 숨어있던 묵은 때를 발견 시 청소용 칫솔을 가져와 노골적으로 이두자랑을 한다. 그런 다음 거실로 나와 구석구석 먼지를 훑는다. 테이블, tv 선반, 책상, 침대 모서리… 냥이들이 촘촘히 박아놓은 털들을 잡초처럼 제거한다. 이불도 털어 널고, 소파와 쿠션, 캣타워까지 차례로 돌돌이도 민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청소기를 돌린다.



이때쯤 되면 먼발치서 냥이들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노려본다. 굉음을 내는 청소기 소리에 까칠한 성격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소기와 탱고를 추며 온 방방을 다닌다. 핀조명 같은 선풍기 헤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목에 두른 스카프 아니, 수건으로 흥건해진 이마와 구레나룻을 닦는다.



수납장에서 밀대를 꺼내 오면 냥이들도 하나 둘 모여든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걸레질하는 곳마다 무늬처럼 발도장을 콕콕 찍어 놓는다. 가끔씩 도발을 하기도 한다. 요리조리 움직이는 걸레를 사냥해 보겠다며 육중한 엉덩이를 흔들며 말도 안 되는 스텝을 밟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연행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방청소가 끝나면 고무장갑으로 무장하고 화장실로 간다. 한 손에는 총 아니, 솔을 들고 락스를 뿌려둔 세면대와 타일, 변기를 철천지 원수인 양 사정없이 응징한다. 뜨거운 물을 틀어 씻어 내리고 마른걸레로 선반, 거울, 벽, 바닥 물기를 닦는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거울 속 블로브피시와 아이컨택을 한다.



이불을 걷고 한쪽으로 치워둔 냥이들 장난감과 스크래처를 원상복구 한다. 끝으로 쓰레기통을 닦고 걸레를 빨아 널어 둔다. 말끔해진 집안을 잠시 감상하며 소파에 뻗어 쉬다가 저녁을 준비한다. 이쯤 되면 오후 5시가 된다. 그렇게 불금의 회사원처럼 주방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는다.



주말이 코 앞이니 귀찮고 성가셔도 기꺼이 해낼 마음이 생긴다. 어디선가 맥주를 맛있게 마시기 위해 달리기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 역시 꿀 같은 토요일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노동에 낙차를 둔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제풀에 꺾여 퇴사하는 일 없도록 롤러코스터 타듯 일에 리듬을 만든다. 거창하고 대단한 일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하찮은 일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당연하지 않은 일에 정성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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