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집사 Aug 30. 2024

부지런한 귀차니즘

정리정돈



 일어나자마자 이불정리를 한다. 겨울엔 침대 위에 두꺼운 이불을 펼쳐두고, 여름엔 잘 개켜 한쪽으로 놓아둔다. 물론 냥이들은 이 꼴을 순순히 두고 보지 않는다. 기다렸다는 듯 침대 위로 올라와 보란 듯이 어질러놓는다. 그걸 봐도 그러려니 내버려 둔다. 괜히 손댔다간 이불정리 무한루프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눈 딱 감고 모른 척해버린다.



다음으로 냥이들 밥을 챙긴다. 방방마다 물그릇을 수거해 깨끗이 씻어 새물을 채워놓고 작은방으로 간다. 삼엄한 감시하에 화장실을 치운다. 꼼꼼히 치우지 않으면 온 방바닥에 모래 테러를 하므로 몇 번이고 뒤적거려 개미똥이라도 찾아낸다. 그동안 반려인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한다. 현관에 나가 그와 함께 하루치 무사와 파이팅을 기원하는 세리머니를 한다. 그리곤 안방 욕실로 간다.



젖을 수건을 바꾸고 세면대와 샤워부스 안 물기를 닦는다. 환기와 건조를 위한 선풍기도 돌린다. 눅눅한 발매트도 베란다에 널어 말린다. 격일로 청소기를 돌리며, 주 1회 대청소를 한다. 먼지나 냥털이 보일 때마다 돌돌이를 미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날씨가 좋으면 이불 빨래를 하고, 기분이 좋으면 수납장 정리를 한다.



설거지는 되도록 하루 한 번으로 끝내려 한다. 자연히 아침 점심은 모았다가 하는 편이고, 저녁엔 반려인 찬스를 이용한다. 할 때마다 그릇들의 물기를 모두 닦아 선반에 넣어둔다. 말리는 것보다 깨끗하고, 추후 건조대의 물때와 씨름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주 2회 정도 장을 보며 오자마자 바로 정리한다. 씻고 다듬고 필요한 만큼 소분해 그때그때 조리하기 편하도록 품을 들인다. 평소 식재료를 썩여 버리지 않도록 냉장고 지분이 50프로를 넘지 않도록 한다. 틈틈이 닦고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며, 분리수거도 그때그때 한다. 집안일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깨끗한 집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다. 몰아서 하면 큰일이 되어버려하기 싫어지므로 그리 하는 편이 안전하다.



집이란 공간은 나를 담는 그릇이다. 아무리 맛있는 요리도 고춧가루 묻는 접시에 담으면 망치게 된다. 단정한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스스로를 단정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믿고 있다. 해도 해도 티 안 나고 끝이 없는 일이라 귀찮기도 하지만, 평소 기도하고 수양하듯 야금야금 치우다 보면 어느새 평안한 마음에 가 닿는다. 정리정돈의 그런 점을 좋아한다. 몸을 움직여 주변을 깨끗이 하는 일은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전 10화 숨은 단골집 찾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