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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Aug 28. 2024

궁극의 주전부리

간식



 30년 넘게 과자 킬러로 살았다. 치토스, 바나나킥, 꿀꽈배기, 홈런볼, 오예스, 칙촉, … 칸쵸, 빼빼로, 쿠크다스, 초코송이까지. 다수와 돌아가며 문어발 연애를 문란하게도 저질러왔다. 그중 도라에몽 쵸코우유와는 절절한 사랑을 나누었고, 하리보 젤리와는 평생을 약속했다.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샵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느지막이 무인 편의점 주인이 되고 싶다는 꿈도 가졌다. 길거리 편의점을 지나치는 걸 내 안의 소녀는 용납하지 않았다. 그 시절 연약한 자아를 알아봐 주고, 다방면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다독여 주는 건 극강의 단짠단짠 슈퍼 스낵뿐이었다.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없을 만큼 아프게 되면서 그들과 이별을 해야 했다. 메로나엔 멜론이 없고, 꽃게랑엔 꽃게가 스치기만 한다는 걸 뒤늦게 인지했다. 변성전분, 분말셀룰로스, 화이버졸, 합성착향료, 유화제, 팽창제, 안나토색소…. 과자 봉지에 새겨진 외계어 같은 성분들을 훑으며 나도 외계인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결국엔 반강제적인 결별을 해야만 했고, 한동안 헛헛함에 풀이 죽어지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처럼 쿨하게 헤어졌다. 그럼에도 한동안 미련이 남아 추억에 젖어 마트 과자 코너를 기웃거렸다. 그들이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금연은 평생 하는 거라는 말처럼 한번 맺은 연은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이젠 지난 이야기처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결코 끝이 아니라 새로이 나아가는 길이라 걸 알게 되었고 좋은 추억만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X주전부리를 정리했으니 그것들을 대체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매일 같은 시간 함께했던 습관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고, 대상을 바꾸는 쪽이 합리적이었다. 결혼 전 연애경험은 많을수록 좋다는 말처럼 그동안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내게 맞는 상대를 고를 수 있었다. 결국 그간의 시행착오는 궁극의 반려간식을 만나기 위한 과정 인 셈이 되었다. 이왕이면 건전하고 유익한 관계로 오래 지속되길 바라며, 심사숙고 끝에 맞이한 친구들을 소개한다.



1. 떡

 밀가루를 줄이기 위해 선택한 방법 중 하나이다. 주로 경단이나 바람떡, 찹쌀떡을 즐겨 먹는다. 특히 여름에 찹쌀떡을 얼려먹으면 찰떡아이스 느낌이 나고, 겨울엔 가래떡을 구워 조청과 유자청을 섞어 찍어 먹는다. 자극적이지 않는 만큼 뒤 탈이 없는 깔끔한 스타일이다.



2. 고구마

 전기밥솥에 쪄먹기도 하고 가끔 오븐에 구워 맛탕을 만들어 먹는다. 숭덩숭덩 썬 고구마를 오일에 살짝 버무려 노릇하게 오븐에 구운 뒤 꿀과 시나몬을 뿌려먹는다. 무해하고 고급진 맛이 난다. 예전엔 고구마를 잘 먹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것 만한 게 없다.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무궁무진한 아이라는 생각 한다.



3. 오트밀쿠키

구독 중인 유투버의 영상을 보고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고 바나나만 으깨어 반죽하면 되기에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유일한 쿠키틀인 고양이틀을 이용하는데 어찌 보면 목적은 여기 있다고 할 수 있다. 말린 과일이나 견과류를 넣으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작게 부수어 과일과 함께 요거트에 넣어 먹어도 좋다.



4. 제철과일

요즘처럼 고금과시대에 좋은 과일을 다양하게 섭취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하루 한 컵은 과일을 챙겨 먹으려 한다. 장날을 이용하거나 마트 세일, 온라인 직거래를 적극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발품을 팔고, 세척하고, 관리하는 과정이 너무 귀찮아서 덕질하는 거라고 최면을 걸어야 하지만 그만큼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는 지속되기 쉽지 않은 종목이다.



5. 보리커피

몸이 아프고도 한동안 커피를 끊지 못했다. 병원에서 하루에 원두커피 한 잔 정도는 괜찮다는 말에 위안 삼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오히려 죄책감은 치료가 끝나고 밀려왔다. 언제까지 마실 수 있을까 막연한 슬픔이 잠겼고, 결국 그 마음을 놓아주기로 했다. 그렇게 환승연애하듯 뒤도 안 돌아보고 보리커피로 갈아탔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미 임산부 커피로 많이 알려져 있어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오전에 한 잔씩 두유와 섞어 보리라떼를 먹는다. 때에 따라 꿀을 조금 넣기도 하고 미숫가루를 섞어 토피넛 라떼인척 말아먹기도 한다.

 


6. 작두콩차

반려인의 비염 완화 목적으로 구입한 차다. 티백 없이 유기농으로 재배된 것이라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 생각보다 맛도 고소하고 염증완화에 탁월하다고 하니 부지런히 즐기고 있다. 점심 먹고 나면 하루 한 조각씩 텀블러에 띄워 미지근한 물로 여러 번 우려서 마신다.



7. 매실녹차

커피를 끊은 이유 중 하나가 콜레스테롤 때문이었는데, 반대로 녹차는 그 수치를 줄여준다고 하니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지리산 하동에서 제배된 녹차를 구입해 이것 역시 티백 없이 거름망에 우려 마신다. 밤마다 싱크대 옆에 세팅해 놓고 자면 다음날 일어나 바로 마실 수 있다. 날씨가 더운 날엔 잘 우린 녹차에 매실액을 타서 차갑게 마신다. 어느 고급호텔 웰컴티 저리 가라 하는 맛이 난다. 은은한 녹차향과 새콤한 맛이 잘 어울려서 탄산수 없이 마시는 에이드 같다.



8. 바나나두유

과일이 비싸지만 그나마 만만한 바나나는 항시 구비되어 있다. 그럼에도 요즘같이 덥고 습한 날엔 금방 익고 물러버려 아쉬운 경우가 많다. 바나나 상태를 주기적으로 관찰하다가 세상 하직할 안색이 되면 껍질을 벗기고 소분해 냉동실에 얼려둔다. 입맛이 없거나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싶을 때, 두유와 함께 믹서에 갈아 마신다. 딸기나 블루베리를 넣어도 맛있다. 스무디처럼 걸쭉한 식감에 포만감도 있고 건강한 단맛이니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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