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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Sep 17. 2024

귀여움은 필수

여유



 어릴 땐 성격이 급하고 덜렁거려 매일 사고를 쳤다. 그 탓에 야단을 많이 맞고 자랐다. 실내화 주머니나 도시락을 잃어버리는 건 예사였고, 손에 닿는 물건들마다 남아나지 않았다. 손이 베이기도 하고, 여기저기 부딪히거나 넘어져 멍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때마다 당연히 혼이 났다. 길바닥에서 엉덩이도 맞아보고, 손들고 벌도 서보고, 반성문도 참 많이 썼다. 지금에서야 그 모든 과정을 학습이라 우길 수 있지만, 당시의 실수들은 눈치와 루저의 마음만 가르쳤다. 부모님은 둘째인 내가 천천히 자라는 걸 기다려 주지 않으셨고 비교 대상이 언니이다 보니 뭐든 빨리 배워야 했다. 공부도 잘하고 스스로 앞가림도 잘해주길 바라셨지만 나의 성장은 사막 속 선인장처럼 가속이 붙질 않았다.



어른이 되었다고 실수가 없어진 건 아니었다. 빈도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일에는 어설프고 뚱땅거렸다. 누적된 실수는 쉽게 시도하지 않은 습관을 만들었다. 그만큼 신중해졌다는 의미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겁 많은 사자가 된 기분이었다.



 모든 성장은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나는 그 구멍의 매력을 귀여움이라고 부른다. 동물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다. 내가 가진 능력이 그들에겐 없고, 그들이 가진 능력 또한 내 것이 될 수 없다. 자연히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관계가 된다. 추구하는 삶의 모습도 다르고, 각자 주어진 조건들은 비교할 대상이 아니니 경쟁이 필요 없는 평화로운 관계가 된다.



세상 만물은 저마다의 귀여움을 가진다. 아침에 먹은 방울토마토, 산책하다 만난 강아지, 하늘에 떠있는 구름, 땅 속 지렁이에게도 있다. 밀림 속 악어에게도, 억척스러운 아줌마에게도, 이웃집 꼰대 아저씨에게도 분명 귀여움은 존재한다. 그 감정 안에는 상대의 결핍을 인정하는 마음이 있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그 결핍마저 존중하는 태도인 것이다.



시간을 이기는 것 또한 귀여움이다. 호호 아줌마, 하울의 성의 소피, KFC 할아버지…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이들의 공통 매력은 주름 완화 주사가 아닌 바로 귀여움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호감으로 만들어주는 건 조각 같은 완벽함이 아니라 블랙홀 같은 결핍이다. 약자에 대한 동정이 아닌 누구나 소수이고 약자임을 인정하는 마음. 어쩌면 이 감정은 어릴 적 스스로를 다독이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원하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더라도 스스로를 사랑하려는 노력은 결국 타인까지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먼 미래에는 고양이들이 지구를 정복하게 될 것이며, 귀여움이 결국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 가설은 인류가 멸종한다는 시나리오보다 훨씬 귀엽고 희망적이기까지 하다. 인구가 줄고 반려동물 가족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인간이 지구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현상이다. 자원을 일방적으로 독식하다시피 하는 종족이 다른 종을 받아들이고 공생을 도모하는 모습은 인류의 존속을 돕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 귀여움이란 부족하고 가지지 못한 자의 여유이자, 미래의 새로운 가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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