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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Sep 16. 2024

시간으로 사는 경험

지출



 집, 차, 옷, 가구, 가방, 그릇…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건 일정한 관계를 맺고, 지속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청소를 하고 엔진오일을 갈고, 빨고, 구두를 닦고, 그릇을 씻고… 기꺼이 정성을 들이는 수고를 즐길 수 있다면 소유는 만족으로 이어진다. 반면, 쓰지 않는 물건들이 무의미한 노동을 유발하는 경우라면 주객은 전도되고 만다. 도구로써 물건은 편의를 제공하지만, 소유로써의 물건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예전에 친구와 카페에 갔다가 독특한 모양의 테이블에 보고 반한 적이 있다. 친구는 이런 걸 자기 집에 둔다면 어울리지도 않고 엉망이 될 거라고 했다. 그 테이블은 그곳에 있어 좋아 보이는 것이었다. 예쁘지만 유행을 타는, 예쁘지만 내게 어울리지 않은, 예쁘지만 관리하기 어려운 식기나 가구는 그 시간 속에서 향유하고 온다. 그렇게 대리 충족된 마음이 되면 섣불리 착각에 빠져 물건을 사는 일을 줄일 수 있다.



 궁금한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살지 말지를 정한다. 실제로 집에 있는 책 보다 빌린 책을 더 잘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끔 빌려온 책 사이에서 영수증이나 메모 같은 게 나오는데 그걸 훑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집 저 집 여행하듯 떠돌았을 주인공을 상상하면 묘한 귀여움을 느낀다. 가지고 있는 책들은 전적으로 취향이 반영된 것들이다. 그림책, 만화책, 에세이, 사진집, 도록… 가독성과 효용가치를 떠나 그저 좋아하는 마음을 대변하는 것들이다. 당연히 대부분은 중고책들이다. 그럼에도 너무 많아 질리지 않게, 짐이 되지 않게 그 양을 조절한다. 1분 이내로 훑을 수 있는, 선반 2 줄 정도의 양이 내게는 적당하다.



 도서관 다음으로 공원과 미술관을 좋아한다. 평일 낮에 가면 한산한 공간과 평화로운 분위기를 오롯이 즐길 수 있다. 대부분 입장료가 무료라 돈 들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평일 낮 시간이라는 적지 않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 시간에 가능한 다른 경제활동과 생산성 있는 어떤 일과 맞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돈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물건이 아닌 경험을 사는 일은 현실 속 삭막해진 마음을 촉촉하게 만든다. 자본이 답이라는 세상에서 실은 답은 하나가 아니고 스스로 정하기 나름이라는 걸 증명받는 기분이다.



면허를 딴지 10년 정도 되었지만 자차가 없다. 반려인의 출퇴근용 차가 한 대 있긴 하지만 나는 거의 운전하지 않는다. 평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때에 따라 쏘카나 대중교통을 두루 이용한다. 사는 곳이 소도시라 교통이 불편하긴 하지만, 많아야 일주일에 한두 번이고, 주기적인 세차, 전검, 정비를 떠올리니 귀찮은 마음도 든다. 결국 자차 한 달 유지비가 공유차의 대여비를 비교한 뒤 후자를 선택했다. 쏘카도 저렴한 편은 않지만 사용빈도를 생각하면 여러모로 편리하고 훨씬 경제적이다.



 시대에 역행하리만큼 돈을 잘 쓰지 않는다. 직접적인 벌이가 없으니 쓰임이 줄기도 했고, 내가 가진 경험과 시간의 가치를 돈과 동등하게 여기게 된 까닭도 있다. 요즘처럼 광고 천국인 극도로 미화된 소비주의 시대에 결국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건 아마 밤낮으로 돈 돈 거리는 미디어에 중독되지 않으려 세상에서 한 발짝 뒷걸음질 친 건지도 모른다. 너나 할 거 없이 돈으로 부리는 허세 배틀에 끼는 것보다 100원의 가치도 소중히 여기는 궁상맞은 아줌마로 살아가고 싶다. 쓰는 만큼 버는 건지, 버는 만큼 쓰는 건지 모르는, 모든 길이 돈으로 통하는 현실에서 가끔은 다른 방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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