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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Sep 13. 2024

시간의 방

작은방



 현관에서 바로 보이는 이 방에는 결혼할 때 본가에서 가져온 책상이 있다. 15년 전, 처음 내 돈으로 샀던 저렴이 책상이다. 그 앞에 바퀴 달린 검은색 의자는 반려인이 오래전부터 쓰던 것이다. 엄마가 결혼할 때 샀던 여행가방과 법랑으로 된 반짇고리도 있다. 족히 40년은 넘은 물건들이다. 이사 왔을 때부터 이 방은 어린 시절 내 방처럼 꾸미고 싶었다. 농후한 버터향 나는 패스츄리처럼 지난 시간의 흔적을 켜켜이 담아내고 싶었다. 그 시절을 마냥 아름다웠다고 기억할 순 없지만… 그래도 살면서 간간히 떠올릴 행복의 스위치 같은 게 필요했다.



책장엔 반려인이 아끼는 소설책들과 냥이들의 애착 담요, 바구니, 라탄으로 된 숨숨집이 있다. 벽 쪽으론 낡아서 커버를 씌운 패브릭 소파가 있으며, 창가엔 비둘기 멍용 캣타워가 있다. 소파 맞은편 선반에는 레트로 스타일의 블루투스 스피커와 그림액자, 작은 새 모양 오브제가 있고, 아래쪽은 좋아하는 작가님의 만화책과 에세이들이 신전처럼 전시되어 있다.



예전엔 이곳에서 주로 작업을 했었다. 오후가 되면 커피와 간식을 가져와 인형도 만들고 형형색색의 동화 같은 그림도 그렸다. 그러면서 나중엔 이 방은 아이방이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현실은 예상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지금은 아이 같은 두 냥이들의 화장실 겸 놀이방이 되었다.



가끔 반려인과 격하게 싸우고 나면 이곳으로 잠수를 탄다. 이불과 베개, 충전기를 챙겨 와 문을 꼭꼭 잠그고 고슴도치처럼 틀여 박혀 있는다. 그렇게 며칠 각방을 쓰고 나면 그 시간들이 새로운 과거가 된다. 꼬인 매듭을 풀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타인에 대한 바람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아야지, 함께 있는 지금에 충실해야지 다시금 다짐하게 된다.



무수한 시간들을 담고 있는 이 방에 들어오면 자연히 미래도 그려진다. 앞으로 이곳에서 무엇을 또 하게 될까 …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척 상상의 풍선을 부풀린다. 예전엔 이런 마음을 꿈이라고 불렀던 거 같다.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들을 하나, 둘 그리며 달콤한 희망에 젖어본다. 입 속에서 금방 사라지는 솜사탕 같은 마음일지언정 그 순간만큼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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