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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Sep 10. 2024

셀프 재부팅

욕실



주로 안방 욕실을 이용한다. 창이 있어 환기가 잘 되고 샤워부스 덕에 여기저기 물이 튀지 않아서 좋다. 예전에는 클렌징 오일부터 트리트먼트까지 두루 구비해 두고 썼지만, 코로나 이후 올인원바 하나만 사용하고 있다. 관리가 쉽고 편리하며 경제적이고 환경에 도움이 되며, 무엇보다도 제품을 찾고 선택하는 품을 덜 수 있다. 반면 치아 건강을 고려해 칫솔 외에 죽염과 치실, 두 종류의 치약을 두고 쓴다. 슬리퍼와 발매트는 없지만 수건 세장을 겹쳐 만든 발수건이 바닥에 깔려 있다. 샤워 후 나오자마자 발을 닦을 수 있고, 세탁기에 넣고 돌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평소 건식으로 사용하며 장마를 포함한 여름에는 선풍기를, 추운 겨울에는 작은 난로를 가져다 놓는다.



현관과 욕실에 진심이다. 그중에서 욕실은 가장 더러워지기 쉬운 곳이자, 가장 깨끗했으면 하는 공간이다. 신체의 노폐물을 처리하는 곳이며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리셋되는 곳이다. 매일 운동 후 샤워를 하고, 일일일쾌변의 희열을 맛보고 싶은 장소이다. 그러니 평소 신성한 마음으로 재단 모시듯 애지중지 대할 수밖에 없다.



 결혼을 하고 청소 독박을 쓰게 되었을 때 욕실만 들어가면 욕이 늘었다. 습기 가득한 좁은 공간, 누추한 차림의 망나니꼴로 조구려 앉아 변기와 바닥의 물때를 철천지원수인 양 응징했다. 어쩌다 귀찮음에 청소를 건너뛰면 곧이어 곰팡이 테러로 보복당했고, 졸지에 그날은 변기솔의 마음이 되었다. 대체불가한 절대적 공간이지만, 그만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은밀하고 시끄러운 이곳은 나를 더럽히는 동시에 새로 태어나게 하는 곳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매일 간단히 청소를 한다. 되도록 더러운 꼴은 보지 않겠다는 의지로 아침마다 화장실을 정리하는 일은 일종의 수련이자 수양이 되었다. 20년이 넘은 오래된 집이니 요양보호사의 마음으로 가꾸지 않으면 금세 낡고 늙어버린다. 이제와 새것처럼 반짝거리게 할 순 없지만, 앞으로 단정하고 곱게 세월을 맞이하게 하고 싶다는 바람이 크다.



샤워부스 안에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즐거워서 그렇다기보다 즐거워지고 싶어서 하는 자가 독려 행위이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 사이로 흩어지는 멜로디의 공명을 듣고 있으면 스스로의 가창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없진 않지만, 그런 류의 작은 착각은 정신건강에 도움을 준다. 자연히 기분 좋은 비움을 통해 다시 파이팅 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욕실 청소는 싫어하지만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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