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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Sep 09. 2024

로망보단 낭만

거실



  3인용 패브릭 소파, 묵직한 테이블, 65 인치 tv, 4단 원목 캣타워가 있다. 평일 저녁에는 이곳에서 ott를 보거나 운동을 하고, 주말엔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휴식을 취한다. 야심한 밤에는 당연히 냥이들의 차지이다. 해가 들기 시작하면 꾸리는 엉덩이만 내놓고 테이블 아래에 들어가 있고, 낮에는 룽지가 관제탑 같은 캣타워에 올라가 스나이퍼처럼 나를 감시한다.



tv 선반과 테이블은 멀바우의 짙은 갈색 원목으로 검은색 철제 프레임 다리로 되어있다. 결혼 전 핑크빛 설렘은 접어두고 예산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때 안 타고 오래 쓸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한 것이다. 테이블 위에는 뜨거운 냄비를 올려놓았던 흔적과 무수한 냥이들의 발톱 자국이 있다. 첫 흠집이 났을 땐 속상한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추상화 같은 그 무늬를 보며 추억에 젖곤 한다. 소파 옆에는 발마사지기가 있고 테이블 아래 수납장에는 최근에 들인 마사지 건이 있다. 몸이 아프고 난 뒤 반려인이 구매해 준 것으로 매일 밤 씻고 나와 30분씩 그걸 타고 극락으로 간다.



애착 쿠션이 3개나 있는 소파도 원목 프레임의 세탁 가능한 패브릭이다. 이 역시 최대한 얼룩을 은폐할 수 있는 브라운 컬러로 관리에 대한 부담을 덜었다. 집 중심부에 위치한 이곳은 우리들의 아늑한 둥지이자 광장이자 쉼터 같은 곳이다. 낮에 체력이 바닥날 때면 소파에 기대 눈을 붙이기도 하고, 반려인이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나와 누워 있기도 한다. 일상의 노동에서 벗어나 잠시 환기를 시킬 수 있는 곳, 어찌 보면 지중해의 작은 섬과도 닮은 곳이다.



 마당이 있는 집이 로망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에 가깝다. 그만큼의 재력도 없거니와 어찌어찌 살게 된들,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다행히 거실 창을 열면 나무들이 한가득 내려다 보인다.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화단 사이로 냥이들이 좋아하는 비둘기도 다니고, 때때로 철새들이 오고 가는 것도 감상한다. 요즘 같은 폭염 시대에 동향이라 오히려 살만하다고 느끼며, 마음만 먹으면 자리를 옮겨가며 해가 뜨고 지는 걸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다. 그러니 가끔, 여행 왔다 최면을 걸고 낭만에 젖어들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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