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0 춥고 안개 : 맑을 징조
* 1682일째 드로잉 : 보통의 가족. 8
- 새벽에 화장실에 갈 때마다 룽지가 따라 들어온다. 귀찮아서 불도 안 켜고, 잠이 덜 깨서 녀석을 내보낼 기력도 없다. 포유류의 은밀한 배변 활동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라고 한다. 가끔 어린 여자 아이들이 손을 잡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건 무방비 상태에서 서로를 지켜주기 위한 행동인지도 모른다. 그렇담 우리의 내적 신뢰가 그만큼 두텁다는 뜻인가?
… 사랑과 집착은 한 끗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기온을 어찌 알고 겨울 철새들이 돌아왔다. 한참 늦어버린 겨울이지만 대대로 유전자에 새겨진 저들의 달력은 인간보다 월등함을 보여준다. 추수도 끝나고 낙엽도 떨어지고 휑한 풍경에 적적해지려던 참이었는데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돌 그룹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환기를 시키려 열어둔 창문으로 들려오는 꽥꽥거리는 소리에 하늘은 올려다보니 기러기들이 V를 그리며 팬서비스를 해주었다. 순간 뭉클… 깃털 굿즈가 갖고 싶어졌다.
- 내심 해리스를 지지했지만 트럼프가 당선되고 말았다. 둘 다 잘 모르는 사람이고, 그쪽 분야엔 문외한이다 보니 단순하게 좋은 사람을 지지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관상은 과학이다. 때론 보이는 현상보다 순수하게 동물적 감각을 따라가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우리에겐 독을 감별하는 본능이 있으며 그 능력이 퇴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농사짓고 책방을 하는 대통령의 나라에 사는 건 나의 자랑이다.
- 아침 일찍 산책을 다녀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옆집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아직 컴컴한 거리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한밤 중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겨울은 달의 계절일까… 산책하는 웰시코키를 보며 귀여운 호기심이 생겼다. 걸을 때마다 이쪽저쪽 씰룩이는 엉덩이를 보니 왠지 방귀가 나올 거 같았다.
- 오늘의 할 일 : 실내화 한 짝 찾기. 장보기. 청소기 돌리기. 친구와 통화하기
* 뽀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