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6 코 앞에서 그친 비
* 1688일째 드로잉 : 보통의 가족. 14
- 새벽 4:00 잠에서 깼다. 창 밖으로 빗소리가 들렸다. 룽지는 배 위에 올라오다 미끄러진 채로 걸터앉아 골골송을 불렀다. 꾸리는 머리카락을 쥐어뜯다 내가 내는 방울뱀 소리에 토라져버렸다. 한동안 천국 같던 날씨는 나의 제주 여행을 알리듯 끝이 나버렸다. 빗자루 없는 날씨 마녀는 이불속에 웅크린 채 순간 이동 주문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아부라카타부라.. 수리수리마수리.. 카르페디엠.. 얍!!
- 아침 9:30, 순간 이동은 실패했지만 비를 그치게 하는 주문을 알아냈다. 비는 겨우 스쳤지만 빗자루 같은 장대 우산을 데려가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 청소를 하고 행주를 삶고 국을 끓이고.. 부지런히 집안일도 당겨 해치워두었다. 아침에 여유가 있어 유부초밥을 싸두고 떠나기 전 반려인에게 이것저것 메모를 남겨두었다. 밥도 든든이 먹고, 냥이들에게도 연차 쓴다고 보고 한 뒤 집을 나섰다.
- 10:30 짐을 줄인다고 줄였는데 가방이 피난 보따리다. 애착이불까지 챙기려다 꾸리가 집 나가는 거냐고 뜯어말리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아침에 친구에게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분다는 메시지는 받았다. 반려인의 커다란 배낭에 쫄쫄이를 챙겨 입고 털목도리까지 두르고 나니 무천도사가 따로 없다. 여기에 우산까지 펼쳤다면 난민이라는 의심을 피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 11:40 버스 환승하는 곳을 잘못 내려 조금 걷긴 했지만 일찍 출발한 덕에 느릿느릿 엉금엉금 공항에 도착했다. 그 사이 배가 꺼지고 허기가 져서 본능적으로 식당을 찾았다. 어디선가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물과 먹이를 찾는 본능 때문이라고 했다. 같은 맥락으로 화장실과 식당은 눈감고도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열무토토리묵밥을 시켜 먹고 카페에 자리가 없어 편의점에서 모과생강차를 사 대기 의자로 왔다. 손소독을 하고 핸드폰 충전기를 꽂고 차를 마시려는데 앞자리 아주머니들이 누룽지를 꺼내 드시는 모습이 보였다. 오독오독오독… 흑미 누룽지 같던데, 넉살 좋게 한입만을 외칠 뻔했다. 역시 본능이란…
- 오늘의 할 일 : 무사히 제주 도착.
* 뽀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