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0 사막의 겨울
* 1712일째 드로잉 : 티타임.
- 친구와 김해에서 만나 밀양을 지나 경주를 넘어 울산 앞바다까지 왔다. 분명 오늘 아침에는 냥이들과 집에 있었는데 눈앞에 끝없는 수평선과 부서지는 파도들을 바라보니 감동에 겨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가는 내내 옆자리에서 귤을 까서 먹고 먹이며 촉새처럼 떠들었다. 밤이 되자 내 목은 성대결절이 올 지경에 이르렀다.
- 동해 바다가 훤히 내다 보이는 카페에서 캐모마일 티를 한잔 마시며 좋다는 말만 수십 번 옹알거렸다. 저녁으로 친구네가 추천해 준 전복돌솥밥을 먹고, 저녁 운동을 건너뛰는 대신 난생처음 코스트코를 다녀왔다. 거인들의 마트 같은 그곳을 꼼꼼히 훑으며 반려인이 좋아하는 웨하스도 사고, 대용량 오곡 누룽지도 구입했다.
- 모처럼 왕성한 활동량에도 낯선 곳으로 오니 역시나 잠이 오지 않았다. 우리 집보다 훨씬 따뜻하고 조용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대충 씻고 나와 애착잠옷으로 갈아입고 친구가 깔아준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컴컴한 어둠 속에 누워 달팽이처럼 얼굴만 내어놓고 새삼 감사한 마음들을 떠올렸다. 이토록 황홀하고 멋진 바다를 보여준 친구네도 고맙고, 혼자 퇴근하고 집안일을 돕는 반려인도 고맙고, 나 없이도 씩씩하게 지내는 냥이들도 고맙고, 춥지만 화창한 날씨도 고맙고… 역시 집 나오니 고마움 마일리지가 두둑하게 적립되었다. 최집사는 참 복도 많지.
- 탄핵 소추안은 가결되었지만 직접적인 대통령 수사에는 진전이 없다. 아침마다 뉴스를 듣고 틈틈이 보도를 접하지만 그분은 그곳에서 돌이 되었나,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친구가 차를 타고 가며 자기 남편은 틈만 나면 사과하는 버릇이 있다고 핀잔을 줬다. 그 습관에 이제는 자신도 아이도 물들었다고 했다. 문득 어른이란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못난 어른일수록 잘못은 감추고 자랑만 과시하는 법이니까. 여기 온 김에 나도 잘 물들어서 사과를 아끼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생일 화원은 받고 수사요청은 거부하는 그 사람을 보며 또다시 마음속 불꽃이 우뚝 솟았다.
* 오늘의 할 일 : 동네 닭 소리 들으며 아침산책. 친구와 어린 시절로 돌아가 경주 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