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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빛사냥 May 06. 2022

[아들생활탐구보고서] - ⑥ 정치

너의 세계를 응원해!

4월 16일.

2호가 학교에서 노랑리본을 가져왔다.

선생님께서 가져가고 싶은 사람만 리본 가져가고 가방에 달고 싶거든 부모님께 여쭙고 달으라 하셨단다.

2호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가방 앞에서 한참을 조물조물하다 달았다.

1호는 자기네 반은 안 줬다며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마음에 노란 리본을 다는 게 더 좋은 거 아닐까?"

"칫. 엄마는 항상 그런 식이야."

"그게 진짜니까~"


며칠 뒤. 1호네 반 친구 엄마랑 우연히 얘기 나누다 리본이 없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에게 세월호 유가족과 연금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고...

혼란스러웠다.

추모 관련 언급을 딱히 바란 건 아니다.

'개인적 의견인데, 굳이 그날 아이들에게 돈 문제를 주제로 말씀하실 필요가 있었나?' 의구심이 생겼다.


사실 선생님은 줌 수업 중에도 몇 가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의견을 말씀하시긴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균형적이고 중립적 사고와 비판적 시각을 위함이라며 이승만 관련 책을 알림장으로 안내해주셨다.

이제 6학년인 아이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는 건 필요하니까.

그런데. 세월호는 다른 문제 아닐까?

중립적으로 봐줬으면 하는 사건에 대해 정치적 해석이 들어간 거 같아 불편했다.


1호는 세월호 관련해서 선생님 말씀에 별달리 기억나는 게 없다 했다.

(음... 뭐지. 수업시간에 뭘 듣고 있기는 하는 걸까. 1호의 학교생활 전반으로 걱정이 뻗어가려던 걸 겨우 참아냈다)

6학년 1학기에는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보니 역사 그대로의 수업이 아니라 재해석된, 선생님이 바라보는 안경이 아이에게 덧씌워질 것 같은 생각이 훅 들어왔다.


어. 떡. 하. 지?

램프 증후군이라 했던가.

상상의 꼬리가 순식간에 이어지더니 어느새 1호는 내 머릿속에서 전혀 다른 성인이 되어있었다. 아. 이런 미친 상상력.

램프 고만 문지르고, 초등교사인 1호의 친구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교사에겐 종교와 정치 중립이 요구되지만 교과서든 준비한 자료든, 그걸 어떻게 해석해서 수업을 하는가는 교사 고유의 권한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수업으로 인해 교사의 생각과 해석이 온전히 아이들에게 전달되는가? 그건 별개의 문제라고.


나의 초등시절이 생각났다.

월요일 조회시간마다 우렁찬 웅변 연설을 들어야 했고, 통일안보 글짓기 대회에 불려 나가고, 길거리에 뿌려진 삐라신고한다고 파출소로 앞장서 가지 않았나!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평화의 댐 모금활동까지, 반공 사상으로 점철된 나의 유년기였다.

그리고, 그 세계관이 깨진 건 고학년 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친구 오빠의 한마디 말에서 시작되었다.

"이승복 어린이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그게 진짜라고 생각해?"

학교에서 몇 겹을 쌓아 공고해진 나의 반공정신을 한 번에 찌르는 질문이었다.

진짜가 아닐 수 있다고? 학교와 TV에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라고 항변했지만 6학년과 고등학생의 반공 토론에서 난 철저히 깨지고야 말았다.


아마 그 시간 이후가 맞을 것이다. 사실은 왜곡될 수 있다는 걸, 내가 보고 듣지 못한 사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친구 오빠의 나이도 지나 대학생이 되어서야 '공산당 선언'을 읽었고 현대사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게 많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이후 역사가 재미있어졌다. 대학 친구 둘과 떠난 4박 5일의 경주 여행은 그 어떤 수학여행보다 값지게 각인될 정도였으니까. 비 오는 날의 그 웅장한 문무대왕릉을 어찌 잊으리!


역사에 대해 균형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서 다양한 역사적 관점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1호 담임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한다. 어쩌면 내가 선생님의 의견이 불편했던 진짜 이유는, 내가 해석한 세계관을 아이에게 주입하려 했던 오만한 계획이 틀어질까 염려되었던 거 아닐까. 내가 분개한 이유에서 나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부끄러웠다. 그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며칠 전, 동네 도서관에서 인문학 강의로 소크라테스 변명 대면 강좌가 있었다. 1호에게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아직 코로나 시국인 요즘 대면 강의는 귀하니까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여 함께 참가했다.

강의 가기 전 날, 예의상 책은 읽고 가야 하기에 먼지 케케묵은 책을 꺼내 읽었다. 몇 군데 줄이 그어져 있었다. 아마 고등학생 때 읽으면서 나름 줄을 그었던 거 같다. 강의 들으러 가는 길, 1호에게 말했다.

"엄마가 고등학생 때 책 읽고 나서 이번에 20여 년 만에 다시 읽어봤는데 놀란 게 있어. 그때 줄 친 부분이 이번에 읽을 때도 많이 와닿는 거 있지. 총 세 군데인데 글을 읽다가 딱 멈추는 부분이 바로 줄 친 부분이야. 이래서 고전은 고전인가 봐. 시간이 흘러도 고민하게 되는 가장 근원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게 고전인 거지~"

"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는데?"

"어?"

"엄마가 고등학생 때랑 지금이랑 변하지 않았다는 뜻이 자나."


그때 알았다. 1호에게는 1호 나름의 생각이 자라고 있다. 내가 굳이 고전의 정의를 설파하지 않아도 1호는 본인의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선생님의 세계관, 엄마의 세계관을 보고 듣는 가운데, 자신만의 세계관을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꼰대 엄마가 될 뻔했네. 조심해야지, 조심해야지.

걱정 지니는 램프 속으로 집어넣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아이의 세계관을 인정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임을 잊지 않기로.


시아버님 팔순 기념 현수막 신청하며 알게 되었다.

지금이 나의 두번째 20대라는 사실을.

책장 깊숙히 박혀있던 책들을 꺼내 들었다.

고전으로 다시 돌아가 나의 세계관 점검부터 시작해보자.

안녕, 오랜만이야!







p.s 책 뒷장에서 책 값 확인하고 놀랐다. 4,500원 5,800원.

아. 옛날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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