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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Nov 07. 2023

43일만 버티면 돼

등교 거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졸업까지 남은 등교 일수를 세어 본다. 11월은 17일, 12월은 20일, 1월은 6일, 총 43일 남았다. 아이를 무사히 졸업시키기 위해 여러 경우의 수를 대입해 본다. 최선은 당연히 매일 등교하여 졸업을 맞이하는 것이지만, 요즘 다시 시작된 등교 거부로 최악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학 후 다시 등교한 지 한 달이 좀 지났다. 그동안 출근 후 일하는 틈틈이 카톡과 엄마를 통해 아이의 준비를 챙기고, 택시를 불러주고 학교에 도착하는 것까지 확인했다. 정시 퇴근하기 위해 집중 근무 한 뒤 지하철 3개를 갈아타고 녹초가 되어 집에 오면 잠시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아이를 태워 한 시간 거리의 학원에 가야만 했다. 그리고 두 시간을 기다려 집에 온 뒤 우울증 약을 챙겨주고 잠자리까지 봐줘야 나의 하루는 끝이 났다.


한 때 체력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과로엔 장사 없었고 만성 피로와 피부 트러블을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다시 등교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피곤함과 아이의 툴툴거리는 태도 모두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어떤 방법을 써도 꼼짝 않던 그때의 무력감에 비하면 뭐가 더 힘들 수 있을까.


그러나 다시 시작된 반갑지 않은 연락들...


"꼬마화가 준비 안 하고 방에 있어"

"어머님, 꼬마화가 출발했을까요?"

"어머님, 담임 선생님과 상담이 필요합니다."

"꼬마화가 자꾸 짜증만 내고 나한테 나가래"

"전화하지 말랬지? 왜 자꾸 전화해! 말 걸지 마!"


전학 후 잘 적응하는 줄 알았는데, 새로운 환경의 효과는 끝났고 아이는 다시 돌아가는 듯했다. 이미 흐트러진 생활 습관을 돌리기엔 힘들었고 늦은 취침 시간은 고스란히 등교 거부로 이어졌다. 차라리 이유가 졸려서만이라면 참 좋겠지만, 사실 그동안 벌어진 학습 격차와 새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함이 주된 이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을 닫고 꼭꼭 숨은 이전과 달리 푹 꺼진 목소리로 힘든 점을 이야기라도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이해하고 그래 오늘 쉬어라 하고 싶은 측은지심과 결석 가능 일수가 며칠 안 남았다는 사실이 마음속에서 어지럽게 싸운다. 결론은, 단호한 엄마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 힘든 거 엄마도 이해해. 많이 힘들 거야. 그래도 정말 잘하고 있어. 우리 벌써 한 달이나 잘 해왔잖아. 앞으로 두 달이야. 두 달만 잘 버티고 방학 동안 푹 쉬자. 그리고 예쁜 교복 입고 중학교 가서 새로 시작하자"


이렇게 설득하고 또 설득하며, 늦게라도 가서 얼굴 도장이라도 찍고 오게끔 하면 온몸에 기운이 다 빠진다. 그래도 출석처리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이런 일이 있은 날 저녁엔 본인도 느끼는 게 있는지 다음 날엔 학교에 잘 가겠다며 철석같이 약속을 하기에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 너무 당당히 학교에 안 가겠다며 버티니 모든 게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관자놀이가 찌르는 듯이 아프고, 눈앞이 흐려진다. 꽉 막힌 가슴에 호흡도 편하지 않다. 다시 시작된 건가...


그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밥 먹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어두운 얼굴로 여기저기 연락하는 내 모습을 보는 팀원들의 얼굴에도 걱정이 가득하다. 강하고 씩씩한 팀장으로 늘 방패막이가 돼주고 싶었는데 자꾸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43일, 잘 버틸 수 있을까? 무사히 졸업을 해도 중학교 가서 같은 일이 또 있을 수 있겠지만, 그땐 진로를 틀어보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초등학교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길 원하지 않는다. 그걸 알기에 어떻게든 졸업부터 시키려는 거다. 좀 더 자라서 다른 진로가 필요하다면 충분히 지원해 줄 의향이 있다. 아직은 너무 어리다.


늦게라도 가서 얼굴 도장을 찍는 것조차 힘들어진다면, 숙려제까지 고려하고 있다. 49일 간 학교에서 인정하는 상담을 받으면, 출석을 인정해 주는 제도인데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고 있다. 아이에겐 이런 옵션이 있다는 건 아직 얘기하지 않았다. 다시 집에 숨게 되는 걸 최대한 피해야 하니까.


그래도 숙려제를 쓰고 결석 가능 일수를 최대한 써도 졸업은 엄두도 못 내던 이전과는 달라 조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무너지지 말자고 마음을 굳게 먹어 본다. 너무나 힘든 시간 잘 버텨왔고, 조금만 버티면 우선 한 고개는 넘는다. 대청봉 13시간 등반 중, 정말 카카오헬기라도 있으면 불렀겠다 싶을 정도의 체력과 정신력의 고갈을 이겨내고 꿋꿋이 하산했을 때처럼 없던 기운을 끌어내야 한다.




날씨가 추워져서 인지, 퇴근길 지하철의 사람이 유난히 많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멍한 얼굴로 퇴근 후 주저앉아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오는 소리에 아이 방문 닫히는 소리가 연이어 들릴 줄 알았는데 터벅터벅 내려와 내 옆에 앉는다.


"엄마, 나 꿈에서 오로라 봤다. 엄마도 있었어. 그런데 오로라가 너무 예뻤어."

"와~ 오로라는 꽤 멀리 가야 볼 수 있는 건데, 꿈에서 봤으니 너무 좋은데? 부럽다~"


우리는 아무 일 없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할머니는 꿈에서 안 나왔냐며 엄마가 새초롬이 삐진 척을 하자 아이가 웃는다. 별일 없는 듯한 대화에 내 가슴속 체증도 어느새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에너지가 채워진다.


"꼬마화가, 아침에 왜 피곤한 거 같아?"

"난 13시간 자도, 7시간 자도 피곤해."

"엄마도 피곤해서 그 맘 알지. 너는 더 피곤할 거야. 엄마 세포는 늙어서 일을 잘 안 하는데 꼬마화가 세포는 한참 성장하느라 자는 동안도 바쁘거든. 그래서 엄마보다는 더 자야 할 거야."


그렇게 우리는 오늘부터 일찍 자기로 했다. 사실 한 없이 반복해서 하는 약속이긴 하다. 오늘 밤도 재우려고 하면 싫다고 문을 닫아 버릴 수도 있고, 내일 아침에 준비 안 하고 버틴다는 연락이 또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겠나. 나는 엄마니 믿어야지. 오늘 같은 날을 43일 버티면 졸업이다. 다 써버린 휴가도 충전될 테니 아이와 기분 좋게 여행을 떠나자. 버텨보자. 촌스럽지만 파이팅 한 번 외쳐본다.


출석 문제와 별개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드디어 아이의 상담 치료 동의를 받아내어 상담 치료를 빨리 알아볼 생각이다. 마음의 체력이 단단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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