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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Dec 21. 2023

다시 멈춘 이야기

어쩌면 다시 시작

아이가 다시 아프다.

따뜻한 가을이 준 선물이었을까. 새 학교 전학과 새 친구들, 새로운 배움에 기분이 나아진 아이는 잘 적응하는 듯했으나 여러 자극들로 다시 우울의 늪에 빠져 들고 있다.


불안이 높은 기질은 우울증에 걸리기 취약하고, 괜찮다가도 스트레스성 사건 하나에도 우울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여러 이론서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마음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아이도 나도 많은 노력을 했지만, 완전히 나아지지 않은 불안한 상태에서 작은 자극도 아이에겐 큰 스트레스였나 보다. 다시 무기력과 대인기피, 씻지 않음 등 이전에 고통스러웠던 때로 돌아가고 있다.


요 며칠 다시 시작된 현실이 버거워 많이 힘들었다. 아이가 원했던 미술학원, 학습격차를 줄이기 위한 과외 수업 등 벌려놓은 것이 많은 상황을 수습하느라 바쁘기도 했다. 그 와중에 무너져내리는 내 마음도 추스리기 힘들었는데 무엇보다 아이가 안 좋은 생각을 하게 될까 무서웠다.


재밌게 읽던 소설책의 이야기도, 넷플릭스 드라마의 이야기도 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에겐 남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우리의 이야기를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울증 공부

어쩌면 꽤 오래 우울증과 씨름해야 할 것 같다. 소아우울증 관련 책을 잔뜩 사두고도 아이가 좋아졌기에 들여다보지 않았었다. 귀찮았다기보다는, 다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다시 밝아진 아이를 응원하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와 생각하니 너무 성급했었다.


한 자도 읽히지 않는 책들을 내려두고 다시 우울증 관련 책을 집어 들었다. 두 번째 발병이라 책의 글귀 하나하나가 마음에 꽂힌다. 병원 치료도 적극적으로 받겠지만,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가 많이 아프지 않도록, 삶에 대한 의지를 갖도록 나도 공부해야 한다.



우리는 또 떠난다

우울증은 계절을 타는 것일까. 올여름, 아이가 한참 방에 숨었을 때는 장마철이었고 지금은 한파에 잠깐의 외출도 아이에겐 힘든 일이 되었다. 다행히 여행만큼은 아이도 긍정적이기에 다시 떠나기로 했다. 여름의 오사카 일주일 여행처럼 방에만 있다 올 수도 있지만, 밝은 햇살과 따뜻한 날씨가 아이에게 긍정적인 요소가 될 거라 기대해 본다. 집에 있으면 더 심해질 뿐, 나아질 수가 없다.


휴양지는 심심할 것이고, 방콕 같은 대도시는 아이에게 힘이 들 것 같아 주위의 조언으로 '치앙마이'로 결정했다. 최대한 빠른 날 가려다 보니 비행기도 비싸고 호텔은 환불 불가 옵션에 몇 개 남지 않았지만, 다행히 우리 모녀 일주일 간 있다 올 곳을 예약할 수 있었다.


어릴 때처럼 수영장에서 깔깔대고, 수영장 냄새가 밸 때까지 물놀이를 하지는 않겠지만, 아이와 예쁜 수영장에 몸을 담그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좀 좋아진다. 조금이나마 나아지면 좋겠다는 희망만으로 또 무리하게 떠난다.



치료는 적극적으로

아이가 본인이 우울증임을 인지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얘기해 보니 기분이 불안정해서 약을 먹는 걸로 알고 있었다. 내가 의사가 아니니 함부로 사실은 우울증이라는 걸 말하진 못하겠다. 다음 주 예약되어 있는 진료에서 요즘 아이가 안 좋아진 상황들을 얘기하고 치료 방법을 의논해 볼 생각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가깝고 상담 치료를 쉽게 받을 수 있는 병원도 예약해 두었다.


그날은 아이의 졸업식, 우리가 졸업식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 치료가 더 중요하기에 졸업식은 못 가도 병원은 꼭 데려가려 한다.


꼬마화가가 힘들겠지만, 그때만큼은 엄마를 따라나서주길 바랄 뿐이다.




가을 동안 그래도 학교에 잘 간 덕에(그렇게 보내기 위해 힘들었지만) 남은 결석 가능 일수를 며칠 남겨두고 졸업은 가능한 상태이다. 그래서, 이 상황에 억지로 가봤자 힘만 뺄 뿐, 어떤 설득에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등교에 대해선 내려놓은 상황이다. 우선, 졸업이란 목표는 달성했다.


이젠 아이가 아프지 않도록, 아니 우울증은 재발이 쉽기에 조금 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족들이 많이 도와줘야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억울하고 버거워 짜증도 난다. 그러나 아이는 아프다. 아직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우울증, 내가 그 병에 대해 더 잘 알고 이해해야 한다.


어쩌면, 평생 힘들 수도 있는 우울증.

내년은 우울로부터 아이를 멀리 떼놓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 딸, 내가 지켜내야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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