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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Feb 06. 2024

9개월 만에 알려준 네 이름, ADHD

내 아이를 힘들게 한 게 너였구나

드디어 아이가 진단을 받았다.

응급 입원에서도, 한 달 만에 보는 진료에서도 뾰족한 진단은 받지 못했었다. 입원 2주간은 아이의 안정이 우선이었고, 간간히 보는 진료에서는 아이의 상태를 세밀하게 살피기엔 텀이 너무 길었다. 중간에 ADHD 성향이 보인다며 검사를 제안받았으나 간신히 병원에 따라나선 아이를 자극시키는 불쏘시개가 되었을 뿐, 검사로 이어지진 못했었다. 그렇게 '주 적응장애, 부 우울장애' 진단을 받고 우울감을 낮춰주는 약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었다. 방안에 숨었을 때보다는 물론 나아졌지만, 아이는 늘 흐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다.


'아이는 흐렸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엄마로서 인내심을 끌어올려야 할 사건들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아이를 혼내거나 행동에 제한을 둘 수도 있었지만, 그 사건들을 기회로 삼기로 했다.


"너도 네 의지와 다르게 힘든 행동을 하고 후회가 될 거야. 국립병원은 멀고 상담도 힘드니 가까운 동네 병원에서 검사도 받고 상담받자. 우리 같이 노력해 보자"


유쾌한 반응은 아니었지만, 이제 더 숨을 곳이 없는지 상담과 검사에 동의를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진행했다. 그 기간이 짧았으면 좋았겠지만, 초진 후 2주 후 검사, 1주 후 추가 검사... 이런 식으로 약 한 달에 걸쳐 검사를 받고 ADHD 진단을 받게 되었다. 사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검사 없이 아이에게 약을 먹게 하는 것도(가능하지도 않겠지만) 내키지 않았고, 스스로 먹어야 하기에 아이도 이해할만한 상황이어야 했다. 그래서 9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ADHD란 진단을 받게 되니, 이제야 외출하려면 옷 입히는 것조차 힘들게 하던 과거가 이해된다. 학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온몸으로 힘든 티를 내던 그때가 이해가 된다.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던 그날들이 이해가 된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ADHD 성향이 보였으나 힘들게라도 일상생활을 하니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지하지는 못했었다. 사랑으로 키우고, 크면 다 좋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가 심한 스트레스 상황을 겪은 후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고, 등교 거부와 심한 우울증으로 발전했다. 어릴 때부터 약물치료를 하고 있었다면, 조금 달랐을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아직은 아이에겐 집이 가장 안전한 곳이다. 더 커서 집보다 밖에 재미를 알게 되었을 때가 아닌 게 어디냐며 위안해 본다.


ADHD 약을 처방받을 때 의사 선생님께 들은 바로는, 아이의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지만 전두엽이 잘 발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의학적 지식이 없어 이해한 대로, 제 표현으로 바꿔서 씁니다). 대학원에서 인지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된 전두엽, 당시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기에 얼른 커서 전두엽이 발달되면 편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참 발달해야 할 시기에 또래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아이 전두엽의 발달에도 영향이 있었다. 민감해도 늘 영특하고 또래보다 높은 지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던 아이의 인지 상태는 심각하게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약이 도움이 되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다행이다. 왜냐면, 주변에서 전두엽 발달이 심각히 의심되는 성인의 케이스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는 약 복용을 시작했다. 우울증 약은 자기 전에 먹는데, ADHD 약은 아침에 먹어야 한다. 왜 하루에 약을 두 차례나 먹어야 하냐고 아이가 거부할까 걱정되었으나 생각보다 순순히 수긍했다. 그리고 첫날, 아이 기분이 나아 보인다. 그리고 아이가 얘기한다.


"엄마, 나 이 약 좋은 것 같아. 훨씬 집중이 잘 돼."


아이의 흐림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 아이도 늘 흐린 상태에서 오래간만에 좋은 컨디션을 경험한 거다. 희망이 보인다.


그러나 아이의 약에 대한 호감과 반대로, 부작용이 나타났다. 식욕이 떨어질 거라 했는데 심각하게 속이 울렁대고 가슴이 뛴다고 한다. 수년 전에 친구 따라갔던 병원에서 처방 다이어트 약을 먹고 내가 그랬었다. 무서워 두어 번 먹고 다 버려버렸지만, 그 괴로움은 아직 생생하다. 얼마나 힘들까. 빈속에 먹어도 된다고 해서 마음 바뀌기 전에 깨자마자 먹였었다. 다행히 오늘부턴 간단히 아침을 먹이고 줬더니 덜 힘들다고 한다. 다행이다. 앞으로 최소 6년은 더 먹어야 한다고 하니 잘 적응해서 꾸준히 먹고 어른이 되어 스스로 이겨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약 때문인 건지, 아이가 많이 밝아졌다. 부모 입장에서 표현하자면, 사랑스러워졌다. 그리고, 낮에 맑은 정신으로 있어서 그런 건지 자는 시간도 조금 당겨지고 있다. 거의 밤을 꼬박 새웠는데, 새벽 4시에서 3시, 3시에서 2시, 이런 식으로 조금 짧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자기 방을 두고 내 방에 와서 잔다. 알게 모르게 엄마 품이 그리운가 보다. 슈퍼 싱글 침대라 둘이 자면 좁지만, 세상모르고 자는 아이가 이쁘기만 하다. 두 다리를 번쩍 들어 내 허리로 내리꽂았을 땐 별이 반짝했지만, 어릴 때 생각이 나 좋기만 했다. 침구 정리에 약간의 결벽증이 있는 내가 씻지도 않은 딸이 와서 마구 흐트러 놓고 가도 좋기만 하니, 나도 아이가 많이 그리웠나 보다.






아이와 함께 주 양육자인 나도 검사를 받았었다. 내 정신상태가 정상일리 없으니 안 좋게 나오면 약을 먹어야겠다 각오하고 있었는데, 결과는 의외였다.


'스트레스 상황에 울적함을 느끼고 있으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편이다. 주변에선 낙관적으로 보일 정도로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듯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있을 수도 있다.......'


요약하면, 힘든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일상생활을 한다는 거다. 사실 그게 맞고, 감정을 억누르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결과가 나쁘진 않으니 나쁜 상황은 아니다. 내가 멘탈이 강하긴 한가 보다. 감정은 꼭 표현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많이 아프지 않아서 또 다행이다. 요즈음은 다행 투성이다.




곧 입학이라 2월은 입학 준비로 설렌다. 아니 사실 불안하다.

그러나, 작년의 경험을 토대로 담담하게 엄마로서 내가 할 일을 잘 해내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놀라지 말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결심해 본다. 아이 치료를 1순위로 두고, 중요한 것부터 생각하자.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아이도 부쩍 자라 있겠지.


조금은 희망적으로 3월을 기다려 본다.



'등교 거부는 매운맛'에서 '등교 거부는 도와달라는 신호'로 매거진 이름을 바꿨다. 혹시, 누군가 아이 등교 거부로 힘든 경우 현재 상황만 보고 힘들어하는 게 아닌 멀리 보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나에게도 꽤 긴 시간이 될 듯하여 바꾸었다. 그래도 좋아지는 얘기로 가득 차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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