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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Nov 26. 2024

카톡 선물, 주고받지 않은 지 1년

그렇게 한 이유

24년을 맞이하며 몇 년 간 벼르다 실행한 게 있다. 바로 카톡 선물을 받지도 주지도 않겠다는 것.

연초에 시작하게 된 것은 내 생일이 2월이기 때문이다. 나부터 안 받아야 주지 않아도 말이 될 것이기에 연초가 적당했다. 2월이면 고맙게도 많은 선물들이 온다. 커피, 케이크, 화장품, 상품권... 바쁘게도 온다. 고마운 마음이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지만, 어느 순간 선물보다는 '의무'의 느낌이 더 크게 느껴졌다. 선물을 받으면 고마운 마음과 함께 이 선물이 누구에게, 얼마인지 기억해야 한다. 비슷한 수준 이상으로 보답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나부터도 어? 내가 선물했는데 말이 없네? 하며 깜빡했을 수도 있는 친구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어느 순간 선물의 의미가 희미해졌고, 기념일에 꼭 선물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안 그래도 나이가 들며 진정한 관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이 드는 참이었다. 온라인으로 주고받는 선물이 없다고 끊어지는 사이라면 진정한 관계가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부터 실행해 보기로 했다. 


생일 즈음에 카톡 프로필에 '마음만 받을게요'라고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김칫국 일 수도 있지만 분명 생일을 기억하는 지인들이 있기에 일부러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역시, 메시지를 보고 동조하며 이해하는 지인, 그럼에도 선물을 보내는 지인들로 나눠졌다. 선물을 보내는 지인에겐 거절하기 힘들어 그냥 받을까? 생각도 했지만 일관성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거절하기' 전 거절하는 의도와 고맙다는 인사를 충분히 전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선물이 '의무'가 되는 것에 경계심이 들었고 나 조차도 의무감으로 선물을 보내고 있었기에 변화가 필요했다. 




카톡 선물을 멈추고 난 뒤

연초의 내 선물을 거절하는 것은 난이도로 치면 하위였다. 더 어려운 것은 지인들의 기념일에 선물을 보내지 않는 것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선물을 보내지 않는 게 많이 힘들었다. 물론, 따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긴 했지만 혹시나 서운하지 않을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챙길 게 많은 나이이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서로 주고받는 선물의 비용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기적인 시도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비용의 부담이 준다면(마음의 부담도 함께) 결론적으론 좋은 거 아닐까? 앞서 가본다.


이 글을 쓰게 된 건, 가장 친한 친구의 생일이 어제였기 때문이다. 오랜 친구지만 서로 생일 선물을 챙기진 않았는데 우연히 친구의 생일 즈음에 만나게 되며 내가 선물을 준비했던 게 시작이 되었다. 매번 서로의 생일 때 만날 순 없으니 온라인으로 축하를 전하게 되었다. 우리는 정확히 얼마의 상품권을 주고받아야 하는 사이가 아닌데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내가 먼저 깨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보내지 않았다. 친구가 내가 올 초에 선물을 거절한 걸 기억하지 못한다면 서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 주에 만난다. 생일선물로 늦었지만 맛있는 걸 사주려 한다. 함께 해야 진짜니까. 




부득이하게 특정 서비스를 언급했지만, 온라인 선물의 대표 서비스이기 때문에 언급한 거지 특정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표현한 건 아니다. 분명 온라인 선물이 주는 이점이 있다. 직접 선물을 들고 가기 힘든 자리, 가볍게 인사를 전해야 할 곳엔 온라인 선물이 주는 이점이 크다. 그러나 나는, 가까운 사이에서 온라인 선물이 의무처럼 되는 것과 온라인 선물로 인해 진정한 축하와 선물의 의미가 퇴색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나부터도 그랬으니까... 여하튼 1년 동안 선물을 주지도, 받지도 않아 본 결론은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끊어진 인연도 없으며, 필요 없는 핸드크림이 쌓이지도 않았다. 내가 언급한 건 온라인상 의무가 돼버린 선물이었고,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선물이 필요한 상황에 그때 그때 유연하게 대응하면 될 것이다. 








사진: UnsplashJoanna Kosin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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