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어제 보셨어요?”
침묵을 깬 것은 철구였다. 미영의 눈에 철구는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미영은 철구의 어떤 점에 자신이 끌렸던 것인지 궁금했다. 하긴 사람이 끌리는 데 이유 같은 건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카페에 앉아 말이 없는 철구의 그늘진 얼굴을 바라보며 몇 시간 전 함께 했던 시간을 생각했다.
탄금대에서 철구는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생각보다 훨씬 무더운 날씨 탓에 배 위에서 포즈를 취하는 선수들이 대놓고 짜증을 낼 정도로 철구는 여러 포즈를 요구했다. 미영은 장애인체육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소식지 표지에 장식될 사진이라고 감독과 선수들을 달래며 겨우 사진 촬영을 이어갔다. 철구는 취재가 끝날 때까지 최고의 작품을 찍으려는 것처럼 쉬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특히, 유망 장애인 선수를 인터뷰하는 사진을 찍을 때 더 열정적이었다.
미영은 지난해부터 철구와 함께 일을 해오고 있었다. 미영은 첫 만남부터 이상하게 철구에게 친근함을 느꼈다. 뭐랄까.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내면을 알아볼 수 있고, 티 내며 위로하지 않더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철구를 처음 본 순간 들었다.
미영은 서울로 돌아가려는 철구에게 내일 새벽에 같이 가자고 말했다. 너무 태연하게 말해 자신도 조금 놀랄 정도였다. 미영을 잠시 바라본 철구는 말없이 미영을 태우고 역 앞에 있는 모텔에 가서 방을 잡았다. 모텔로 향하는 동안 철구의 차 안에서 바라본 충주의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시내에 자리 잡은 건물들에는 세월의 피로가 쌓여있었다. 그 건물들을 배경 삼아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네?”
“어제, 그거 보셨어요?”
“뭘요?”
“기념식이요.”
“기념식이요?
철구의 뜬금없는 질문에 미영은 약간 당황했다. 기념식? 갑자기 뭔 기념식, 하던 찰나 미영의 눈앞에도 뭔가가 스쳤다.
“아, 네. 봤어요.”
“어땠어요?”
“음…….”
미영은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본 건 맞지만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철구는 미영의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꽤…… 신선했어요.”
“그죠. 꽤 신선했죠.”
미영은 철구의 물음에 어제 열렸던 기념식 모습을 다시 머릿속에 그려봤다. 여러 장면이 한 번에 떠올라 조금 어수선했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대통령의 연설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자신이 태어난 날 아버지를 잃은 딸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그리고 대통령과 서로 뜨겁게 부둥켜안는 모습 등 신선한 충격이라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 대통령의 기념사를 그렇게 주의 깊게 듣는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보면서,”
미영은 혼잣말처럼 나온 말을 급하게 멈추며 눈물이 났다는 말을 입속으로 감췄다.
“네. 저도요.”
철구가 미영이 입속으로 숨긴 말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짧게 대꾸했다. 철구의 대답에 이어 둘 사이에 다시 적막이 흘렀다. 말이 없는 동안 미영은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어제 기념식을 지켜보는 내내 떠올랐던 기억이 철구의 물음으로 다시 선명해졌다. 철구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영은 철구의 얼굴을 바라보며 점점 자신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