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과 철구 #7

단편소설

by 고귀한 먼지

카페 유리창으로 보이는 실개천에 조명이 켜지고 작은 분수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몇몇 외국인 노동자가 분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대부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저녁을 먹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었지만 카페 유리창 밖에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미영은 지금 철구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궁금한 만큼 보고 싶었다. 미영은 차창 밖을 바라봤다. 어둠이 깔린 거리에 가로등이 켜지고 상점 간판에 불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다 미영은 핸드백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카톡에 10개가 넘는 메시지가 있었지만, 미영은 카톡을 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인스타그램 앱을 눌렀다. 그리고 엊그제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미영 씨,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철구였다. 2년 전 서울로 함께 올라간 후 끊겼던 철구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자신의 인스타그램 주소는 어떻게 알았을까? 철구는 메시지와 함께 몇 장의 사진 파일도 보냈다. 사진 속에는 2년 전 충주 탄금대 조정경기장에서 인터뷰하는 미영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철구가 언제 자신을 몰래 찍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미영은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미영 씨,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잘 지내시죠? 저는 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2년이 됐군요. 집에 돌아오니 미영 씨가 생각났습니다. 아니 사실은 여행 중에도 미영 씨가 자주 생각났습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만나고 싶습니다.’




충주에서 서울로 가는 열차는 9시 36분에 출발하는 누리로호 열차 한 대뿐이었다. 그래선지 화요일임에도 역 맞이방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미영이 하루를 보낸 모텔은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모텔에서 역까지는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모텔을 나온 미영은 아침을 먹을까 생각했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마땅히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아 역 편의점에서 간단히 사 먹기로 했다. 미영은 편의점에서 바나나우유와 카스텔라 빵을 사서 역 앞으로 나왔다. 기차가 도착하려면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공기가 어제와 다르게 후덥지근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는 아침엔 제법 쌀쌀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햇볕의 열기가 그대로 몸으로 전달됐다.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지만 그리 싫지 않은 무료함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 별 볼 일 없는 풍경을 바라보며 미영은 이 작은 도시와 이별하고 있었다.

미영은 자신이 다시 이곳을 찾게 될까 생각해 봤다. 아마도 혼자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돌아가면 다시 시작해야지. 미영은 돌아가면 조금씩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언젠가부터 떠오른 제목이 있었다. ‘다시, 스물’이라는 제목이었다. 왠지 산문집 제목으로 그럴듯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미영은 철구를 생각했다. 철구를 만나 다시 다가올 스물을 맞아야지. 2020년에 맞게 될 마흔이란 나이는 두 번째로 시작하는 스무 살의 풋풋한 시절일 것이라고 미영은 생각했다.

잠시 뒤 맞이방에서 승차 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미영은 역 맞이방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 기형도 '정거장에서의 충고' 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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