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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Mar 10. 2024

PERFECT DAYS

일상을 견뎌낸다는 것의 숭고함

일본의 국민 배우 야쿠쇼 코지에게 제76회(2023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빔 밴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몇 해 전 감명 깊게 봤던 짐 자무쉬 감독 연출, 아담 드라이버 주연의 영화 ‘패터슨(Paterson)’과 닮은 듯 다른 영화다.     


패터슨이 일상의 변주가 어떻게 아름다운 시로 승화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퍼펙트 데이즈는 일상을 견뎌낸다는 것의 용기와 숭고함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까?    


두 작품 모두 일상은 반복되지만, 똑같은 하루는 없다는 점을 새삼 다시 일깨워 준다. 

맞다. 똑같은 파도가 없듯, 똑같은 하루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파도가 모여 바다를 이루듯, 우리의 삶 또한 비슷비슷한 하루가 쌓이고 쌓여 이뤄진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내 삶의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그건 내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 달려있다.     


도쿄의 공공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주인공 히라야마.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는 그는 나름의 생활 방식으로 일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식물을 정성스레 키우며, 점심을 먹는 공원 벤치에서 바라보이는 푸른 나무를 흑백 필름으로 담는다. 그리고 일을 마치면 공중목욕탕에서 정성스레 몸을 씻고, 수년째 찾는 단골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와 책을 읽다 잠이 든다. 또 휴일에는 작업복을 빨고, 일하는 동안 찍은 사진을 현상하고, 휴일에만 찾는 바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영화는 총 열두 번의 반복되는 하루를 보여준다. 열두 번의 날 모두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이어지고 그렇게 이어지는 날 전체를 통해 우리는 히라야마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히라야마는 홀로인 것 같아도 아주 가느다랗게 몇 개의 세계와 연결돼 있다. 그리고 그 세계가 히라야마를 살게, 혹은 견디게 해 준다.

영화에서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소재가 누군가 화장실에 놓고 간 빙고 칸이 그려진 쪽지다. 히라야마는 처음에는 이 종이를 쓰레기로 생각해 버리려 하지만, 잠시 생각을 한 후 빙고 칸을 하나 채우고 쪽지를 다시 있던 자리에 놓는다. 다음날 그 쪽지에는 누군가 빙고를 이어간 표시가 보이고 그렇게 히라야마는 누군지도 모르는 이와 빙고 게임을 한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 삶에 있어서 누군가와의 연결이 얼마나 중요한 지 감독은 말한다. 교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살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영화를 다 본 후, 다시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NS를 통한 연결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서로 마주 보며 만나는 그런 만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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