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0일 토요일, 미세먼지.
2, 30대의 내 모습을 반추하며 40대는 좀 더 아름답고 멋있게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자.
11월은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매주 어디를 다녀왔고, 한 곳에 머물러도 들뜬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가 20일간 나를 괴롭히더니 이제 겨우 떠나려 한다.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 난 원인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바로 자괴감 때문이다. 자괴감의 원인이 하나가 아니기에 알 수 없다고 그냥 쉽게 표현한 것뿐이다. 자괴감을 불러일으킨 근원까지 천천히 다가가느라 20일이나 결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근원은 무엇일까? 바로 게으름과 나태함이다. 게으름을 일으킨 원인을 또 찾다 보면 잘하고 싶다는,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과 마주한다. 그 욕심, 그 욕망에 예상치 못한 상처가 새겨지면서 나의 2021년, 11월의 3분의 2는 불안과 초조, 무기력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말았다.
어제였다. 겨우 늪과도 같은 무기력 속에서 벗어나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아주 조금이라도 더 움직였다. 그러니 다시 자신감이 생기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같은 증세를 경증 정도의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찾아보지도 않고, 상담을 받아보지도 않아 잘 모르겠지만 내 추측으로는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건 이 정도의 우울증은 세상 누구나 다 거친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조금 길게 지속됐지만 다행히 잘 벗어났으니 다시 힘을 내야겠다.
어제부터 밖으로 나가질 않았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인 미세먼지 때문이다. 겨우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는 것 빼곤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 산책도 이틀째 하지 못했다. 미세먼지가 내일까지 기승을 부린다고 하니 아마 내일도 힘들 것 같다. 집에만 있으면 균형 잡힌 생활이 무너질 수 있기에 최대한 일상처럼 보내려고 노력했다. 뭐 거창한 건 아니다. 평소보다 조금 늦었지만, 오전에 이부자리를 갰고 스트레칭을 하고 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 업무를 보듯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썼다. 지금처럼 일기도 쓰고, 최근에 봤던 영화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들도 적었다. 좀 근사하게 말하면 ‘리뷰’겠지. 영화 리뷰를 적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깨닫게 됐다. 역시 내 글솜씨가 형편없다는 걸.
블로그나 브런치를 찾아보면 다들 근사한 리뷰들을 올려놓는데 난 머릿속 생각들이 정리가 안 돼 겨우 몇 줄 쓰면 금세 글이 멈추니, 그 참담함이란. 그럼에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쓰려고 노력한 그 사실이 나를 살렸다. 아직 극본과 시나리오 수정에는 다가가지도 못했지만, 오늘을 잘 마무리하면 내일부터는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11월이 열흘이나 남았으니 열흘간 노력하면 11월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거다.
이달 초에 건강검진 겸 위‧대장 내시경을 받기 위해 1박 2일 동안 대전에 머물렀다. 오후에 버스를 타고 유성 시외버스정류소에 내려 갤러리아 백화점 부근의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다시 내포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대전, 하면 떠오르는 명소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진 않았지만 내 걸음이 닫는 모든 길이 새로웠다.
대전이란 곳은 내가 대학을 다니기 위해 2000년에 처음 간 후, 15년이 넘게 살았던 곳이기에 낯익은 곳을 다시 바라보는 행위만으로 콧등이 시큰거리는 뭉클함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 20대와 30대 중반의 삶이 대전이란 공간 안에서 이어졌기에 좋든 싫든 많은 영향을 준 곳이란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대전에 머무는 동안 일부러 많이 걸었는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지난날이 빠르게 스쳤다.
뭐라 표현해야 맞으려나?
공간은 정겨운데, 공간에 깃든 추억은 솔직히 불편한 양가적인 감정이랄까?
솔직히 지금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건, 좋든 싫든 그때의 내 선택과 결정, 그리고 행동이 지금의 나를 만든 자양분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거다.
40대에 접어드니 2, 30대의 철없고 서툴렀던 행동들이 생각날 때면 너무 부끄럽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그 부끄러움과 후회는 앞으로도 내가 껴안고 가야 하겠지.
일부러 생각하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릴 필요도 없이 자연스레 생각이 날 때마다 미소를 한 번 짓자. 그리고 2, 30대의 내 모습을 반추하며 40대는 좀 더 아름답고 멋있게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자.
2021년이 가기 전에 대전을 다녀온 건 분명 행운이었던 것 같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