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간 길눈이 좋은 사람이라도 그 집을 단번에 찾기란 쉽지 않다. 낙원상가에서 인사동길로 조금 올라가다 왼쪽 어디쯤에 그 집이 있는데, 비슷비슷한 골목길이 여기저기 얽혀있어 매번 헷갈린다. 길을 잘못 들면 피맛골이나 안국동으로 빠지기 일쑤여서, 오랜 단골이어도 그 집 가는 길은 늘 만만치 않다.
사람들은 그 집이 막다른 골목에 있다고 하는데 사실은 골목의 막힌 벽이 그 집의 담벼락이다. 나무판자 위에 ‘나가는 길 업씀’이라는 삐뚤삐뚤한 글자가 눈에 띄면 거의 다 왔다. 제대로 그 집을 찾은 것이다.
말이 도심이지 골목길은 인적조차 드물다. 골목에 들어선 집들은 한옥과 적산가옥을 땜질하듯 개량한 이상한 형태. 흐르는 시간에 용쓰지 않고 진작 체념한 듯한 느낌이다. 고작 눈에 띄는 것이라야 길가에 버려진 플라스틱 화분 몇 개. 가끔 떠돌이 개 한두 마리가 수상한 눈빛으로 낯선 행인들을 흘겨볼 뿐이다.
하지만 그 집 여닫이문을 여는 순간 세상의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잘 발효된 막걸리 냄새가 알싸하게 코끝에 스치고, 취흥에 겨운 십 수 명의 취객들로 실내는 왁자지껄하다. 지금은 오후 3시거나 4시, 이곳은 낮술의 천국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모'가 막걸리와 임연수 구이를 내온다. 다른 메뉴는 없다. 주전자에 담긴 술은 언제나 넘칠 듯 말 듯 출렁거린다. 우선은 주둥이를 입에 대고 몇 모금 급하게 들이켠다
구석에 앉은 초로의 사내가 ‘명태’를 부른다. 제법 불러본 솜씨다. ‘어느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허밍으로 흥얼거리던 근처 몇 명이 마침내 소리 내어 마지막 소절을 따라 부른다.
'그 작자의 문제는 감동을 강요한다는 거야!' 다른 테이블의 또 다른 누군가가 목청을 높인다. 젓가락으로 임연수 살집을 헤집더니 한 점을 어렵게 들어 올린다. '그 작품은 딱 이 정도 수준이야'. 말을 하는 사람은 서른 안팎으로 보이는 미모의 처자. 커트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터질듯한 엉덩이에 붙은 작은 리바이스 상표가 앙증맞다.
언젠가 친구 난희와 이 곳에 들른 적이 있다. 2차를 사겠다는 그녀를 따라 이곳에 왔는데, 알고 보니 녀석도 빈주머니였다. 술집을 나서면서 그녀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모! 가을이 가기 전에 갚을게요.
이 술집의 진짜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다. 상호가 적힌 간판 조차 없으므로 그냥 이름 없는 술집이다. 하지만 누군가 문 앞에 있는 전봇대를 떠올려 무심코 전봇대집이라 불렀고, 이후로 이 집은 전봇대집이 되었다.
골목길을 걷고, 두리번거리고, 헤매야만 겨우 찾을 수 있었던 낮술의 천국. 옛날 옛날 한 옛날 '낮은 어둡고 밤은 길'던 시절, 전봇대집이라 불리던 어떤 술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