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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Oct 19. 2019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life goes on, bra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Life goes on, bra)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네 삶이 아름다운 여성의 브래지어 위에서 가볍게 머무를 수 있다면. 그녀의 깊은 가슴골에 얼굴을 파묻고 삶의 관능만을 탐닉할 수만 있다면. 사느라고 고생한다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후 혹시 몇 모금의 달콤한 모유라도 슬쩍 흘려줄지도.

하지만 삶은 브래지어 위를 흐르지 않는다. 하루키의 산문집 제목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는 명백한 착각이거나 의도된 오역이다. 비틀스의 ‘오블라디 오블라다’ 노래 가사에는 브래지어가 없다. 명민한 하루키가 그것을 착각할 리가 있겠는가. 그는 ‘삶은 계속되는 거야. 브라보!’라는 문장을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로 슬쩍 바꿔치기했다.  

고종석에 의하면 영어 브래지어 (brassiere)의 어원은 철자가 같은 프랑스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어 ‘브라시에르’는 특별한 형태의 조끼나 여성복을 가리키는 단어로, 브래지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말을 빌려간 영어 화자들이 다른 의미의 단어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브래지어를 ‘수타앵 고르주’라고 부른다. 가슴 받침대라는 의미다. 그들에게 브래지어는 가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 도드라지고 돋보이게 하는 물건인 셈이다. 그래서 ‘브래지어 같은 거짓말쟁이’라는 프랑스어 표현은 지독한 거짓말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며칠 전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빠 조국이 사퇴했네?’ ‘그랬더라. 근데 아빠는 그것보다 가수 S의 죽음이 더 충격적인데.’ ‘S가 죽었어? 왜?’ 부자지간의 대화는 늘 이런 식으로 어긋난다.

젊고 아름다웠고 재능 있던 가수 S. 그녀의 죽음 너머로 브래지어가 설핏 눈에 어른거린다. 그는 그것을 귀걸이나 팔찌처럼 가벼운 액세서리로 생각했다. 그날의 옷차림이나 기분에  따라 그것을 착용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논란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그녀는 그녀의 방식을 고집했다. 그 이유를 묻는 방송 진행자에게 그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싶었노라고 대답했다.

‘탈 코르셋‘을 주창하는 일부 페미니스트에게 브래지어는 억압의 상징으로 벗어 버려야 마땅하다. 다른 시각은 정확히 반대편을 향한다. 노브라는 ‘노출 증세’며 '관종' 혹은 성적 방종을 의미하므로 입어야 한다. 입어도 문제, 벗어도 문제인 이 논쟁의 한 복판에서 스무 살 넘은 한 성인의 취향과 세계관과 성적 자기 결정권은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우리의 심히 무거운 인생들은 아직도 아름다운 브래지어 위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P.S : 세네 번째 문단은 고종석 산문집 <어루만지다>에서 발췌, 인용


#무라카미하루키

#life_goes_on_bra

#고종석

#어루만지다

#브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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