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시가 될 수 있을까? 매일매일 반복되는 시시한 일상에서 시적 영감을 받을 수 있을까? 시라는 것은 무엇인가? 시인이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세상의 많은 것들처럼 정답은 없다. 영화 페터슨은 단지 이러한 질문만을 관객에게 툭 던지는 영화다.
소도시 페터슨에서 환승버스를 운전하는 생활인 페터슨. 그에게 조금 특별한 것이 있다면 시를 쓴다는 것, 말하자면 시인인 셈이다.
그런데 그의 시 또한 조금 다르다. 그의 시(詩)는 일상과 유리된 곳, 즉 말(言)의 사원(寺)에 유폐된 관념의 언어가 아니다. 페인트칠하는 아내의 뒷모습에서, 아내가 싸준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혼자 일어나 시리얼로 아침을 때우면서 그는 문득 시와 조우한다.
난 집 안에 있다 바깥 날씨가 좋다. 포근하다 차가운 눈 위의 햇살 봄의 첫날 혹은 겨울의 마지막 나의 다리는 계단을 뛰어올라 문 밖으로 달리고 나의 상반신은 여기서 시를 쓰네 <시>
일필휘지. 페터슨은 순식간에 한 편의 시를 완성시키는 세상의 천재들과 구별된다. 승객의 대화를 들으면서, 술집 주인과 체스 얘기를 하면서, 반려견을 산책시키며, 그는 시를 구상하고, 반복해서 다듬고, 아내에게 들려준다.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과도 같다.
소박하고 겸허한 삶. 사소한 일상으로부터 길어 올리는 삶에 대한 성찰. 일상과 예술은 서로 교감하면서 미적 초월의 순간순간을 만들어낸다.
영화에서 시는 일상의 풍경 어딘가에 잠복해있다. 삶 또한 그러하다. 영화는 거실벽의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 삶이라고 말한다. 컵케이크를 굽고, 반려견의 똥을 치우는 것이 시라고 말한다. 지루한 일상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하고 그것을 순금의 언어로 단련시키는 것. 페터슨이 시를 쓰는 방식이다.
그러나 얼마나 게으르고 가뭇없이 세상은 흘러가는가. 영화는 훼손되어 거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시의 파편들을 클로즈업한다. 페터슨은 '시란 그저 물 위에 쓴 낱말들'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한다. '물 위에 쓴' 흔적 없는 시, 강물처럼 잠시도 머물지 않는 시간.
일상은 언제나 시시하지만, 한 순간도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면에서 매 순간 치명적이다. 영화는 우리가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대체 그것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관객에게 묻고 있다.